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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Nov 20. 2021

2020년 2월 9일


집 앞에 새를 보러 나갔다가 산책하는 시추를 만났다.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길래 조심스럽게 머리를 만져줬더니 꼬리를 더욱 세차게 흔든다. 털이 북슬하게 자란 모습에 조금 꼬질했는데 머리털이 비단이 보다 풍성한 느낌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길래 잘 가라고 인사하고 얼른 돌아섰다. 머리를 쓰다듬던 왼손을 주먹 쥔 채 주머니에 쑥 집어넣고 오는데  자꾸만 손을 꺼내 냄새를 맡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혹시라도 개 주인이 그 모습을 보면 오해할까 봐 얼른 집으로 와서 손바닥 냄새를 맡아봤다. 내가 기대하던 냄새는 없었지만 왠지 따스하고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비단이 보구 싶다'라고 입 밖에 내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글로만 쓰고 생각하고 입 밖으로 낼 용기가 없었나 보다. 입 밖으로 내어 버리면 정말 비단이가 너무 보고 싶어질 것 같고 비단이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명확해지는 것 같아서 그러면 또 너무 울어버리니까.

아까 시추를 만나고 와서 그런지 오늘은 그 말을 삼킬 수가 없어서 입 밖으로 뱉어버렸다. 남편은 조금 동요하는 듯 보였는데 말없이 그냥 안아주고 가만히 있었다. 슬프지만 막상 입 밖으로 뱉어도 괜찮았다. 매일 울어도 되는 걸까. 매일 울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걸까. 사람들 앞에서 꾹꾹 참고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또 그렇게 참으면 안 되는 걸까. 아무래도 집에서만 울어야겠지. 슬픔은 전염되니까 내가 슬프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슬퍼지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남편 앞에서도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단이가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들을 이렇게 써버리면 안 될 것 같은데 집중이 잘 안된다. 그림에 집중하고 앞으로 할 일들에 집중하면서 똑바로 살아야 하는데 모래성마냥 틈만 나면 흐트러진다. 힘내자.


20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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