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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Nov 23. 2021

2020년 2월 24일


어젯밤에  잠에 빠져들고 있던 즈음 남편이 자리에 눕고 나서는 '비단이 보고 싶다. 비단이 보고 싶어'라고 담담하게 말하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슬쩍 보니 비단이 사진을 보는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낸 건지 궁금했다. 스스로 먼저 그런 말을 꺼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비단이 생각나?라고 물으니 남편은 항상 생각하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거야 그렇지라고 말하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그냥 잠들었다. 더 이상 어떤 말이고 하면 눈물이 쏟아져서 분명 잠을 못 자게 될 것 같았다. 잠자는 중간중간 남편의 뒤척임을 느끼곤 했는데 왠지 잠자기 전에 꺼낸 말 때문에 그런 건지 신경이 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남편에게 어제 비단이 생각 많이 났어? 하고 물으니 맨날 생각하지 그런데 이 얘기 어제도 똑같이 한 거 같은데라고 말하고 나는 그렇지 하고 대답하고 더 이상 대화의 진전은 없었다. 


남편은 비단이가 언제, 왜 생각났으며 생각나서 지금 나의 기분이 어떻다 같은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항상 내가 먼저 말을 꺼내고 그것에 대해 남편은 동의하고 나를 위로해 주거나 별 말이 없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나도 말하지 않게 되고 이렇게 끄적이는 거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게 되었다. 글로 적는 것도 가끔 적을 뿐 머릿속에 연속해서 다가오는 비단이의 모습에 대한 생각들과 느낌들을 일일이 적을 순 없다. 아직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비단이의 흔적이 나온다. 얼마 전엔 강급용으로 썼던 동물용 젖병의 실리콘 뚜껑이 싱크대 그릇 속에서 2개나 나왔다. 비단이 장례 치르고 바로 버린 물건들 중에 하나였는데 아직도 이렇게 남아있다. 강급은 개나 주인이나 괴롭다. 정말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좋은 추억이 생각나는 물건은 아니다.  


아직도 비단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분노는 많이 없어졌다. 분노는 나를 굉장히 지치게 하는 감정이었다. 분노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서야 내 모습이 조금씩 보이는가 싶기도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비단이에 관해서만은 굉장히 예민하게 굴었다. 비단이는 나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이고 나와 비단이 사이에 누구도 끼어드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남편 이외에는.  


난생처음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남편이었다면 나의 모든 사랑을 아낌없이 쏟는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게 해 준 존재는 비단이었다. 어떤 대가도 필요 없이 그저 내 옆에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 기분을 느끼는 게 좋았다. 결국엔 이것도 인간의 이기적인 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랑을 쏟는 데 있어서 어떤 불안이나 걱정이 없다는 건 이 존재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한 거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남편을 더 좋아한다거나 하는 건 상관없었다.  비단이는 비단이로써 존재하는 거니까  나의 사랑도 변함없었다.


20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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