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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Nov 24. 2021

2020년 2월 26일

며칠 전부터 개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미 약을 구석구석 놓아도 어딘가에서 계속 나타나곤 했었는데 이번엔 단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걸 보니 뭔가 근본적인 처치가 있었나 보다. 여러 세대가 사는 건물이라 내 집에 나타난 거 없애봤자 다시 줄지어 나왔었는데.

개미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비단이가 생각났다. 다시 비단이 간식을 놓을까. 그때는 뭐라도 했어야 했고 뭘 해도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을 나도 모르고 내 행동을 나도 컨트롤하기가 힘들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안정됐다.  


어느 팟캐스트에서 누군가가 집안에 안 쓰거나 고장 난 물건은 정리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는데 그 말이 신경 쓰인다. 우리 집엔 안 쓰는 물건 투성인데. 지금 계속 생각 중이다. 안 쓰고 고장 난 물건들을 간직해도 되는 이유를. 추억이 많이 담긴 물건들은 남겨야겠지. 나는 버리는 걸 잘 못한다. 이사를 자주 다니지도 않는다. 사소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에서도 자꾸만 쓸모를 찾으려 한다. 당장 쓸모가 찾아지지 않으면 쓸모가 생각날 때까지 그냥 둔다. 냉장고와 냉동실, 주방 서랍엔 아직 비단이 간식들이 남아있다. 어느 정도까지가 좋은 걸까. 내가 비단이를 추억하는데 어느 정도까지의 사물들이 필요한 걸까. 비단이가 쓰던 옷, 담요, 방석들에 베여있던 냄새들은 진작에 모두 사라졌다. 아직 비단이의 어떤 냄새를 간직하고 있는 건 유리함에 보관하고 있는 털 뭉치뿐이다. 비단이가 조금 아련해진 느낌이다.


20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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