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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Nov 29. 2021

2020년 3월 21일(1)


지난번 글을 쓴 후 뭔가 마음이 후련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시간이 흘러서 그런 건지 머릿속이 정리가 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 눈물 고이는 횟수도 많이 줄어들고 비단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덜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했다. 집안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이제 머릿속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일까.

그동안 내가 굉장히 비단이에게 몰입이 되어 있었고 외부의 어떤 간섭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였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너무 내 슬픔에 빠져서 주위 사람을 상처 주거나 힘들게 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그전에는 그저 내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서 주위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데. 시간이 저절로 흘러줘서 고맙다. 



이상하게 개미를 보면 비단이와 간식이 저절로 떠오른다. 사라진 줄 알았던 개미는 어디선가 한 마리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미가 보이지 않던 기간 동안 비단이 간식을 다시 놓을지 어쩔지 여전히 고민만 하고 막상 전혀 간식을 놓고 있지 않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내 생각의 모호함이 많이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간식을 놓았던 이유를 생각해 봤다. 생전에 비단이가 간식을 마음껏 못 먹었다는 생각, 커다랗게 비어버린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서,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비단이를 돌보던 습관을 버리기 싫어서, 내 마음의 위안, 비단이를 지금도 잊지 않고 사랑하고 있다는 어떤 표현, 비단이를 잊을까 봐 무서우니까, 어떤 변명. 

비슷하면서도 다른 자잘한 이유들이 떠올랐는데 가장 신경 쓰이는 이유는 비단이의 영혼이 간식을 먹어줄까 봐 나 영혼이 된 비단이가 배가 고플까 봐 같은 이유들이다. 이런 이유들은 앞에서 나열했던 이유들과 많이 다르다. 앞에서 나열했던 이유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나를 중심으로 말했었다면 나중에 언급한 이유들은 영혼의 존재와 저승이라는 세계관을 전제로 한 비현실적인 이유들이다.  


내 머릿속은 이런 상태에 대해 어떤 정리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개들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가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말도 흔히 하고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 마음 편히 아무 생각 없이 믿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편한 생각으로는 흐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또한 윤회사상도 너무 인간 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죽어서 다시 뭐로 태어나고 뭐로 태어나고 근데 여기서 무언가라는 것에 등급이 있고 사람은 높은 등급 미물은 낮은 등급. 생각만 해도 숨 막힌다.  거기에 나나 비단이가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혼의 존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어떤 종교나 미신을 근거로 한 이유들은 나에게 설득력이 없을 뿐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머릿속을 정리해야 할 만큼 고민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이후다. 과연 내가 원하는 사후세계란 무엇인가? 하는 커다란 물음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게 어떤 세계든 나와 상관이 없을 때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떠도는 말들에 대해 의문도 품지 않고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비단이가 죽은 지금은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비단이의 유골함 앞에 간식을 놓는 행위는 이렇게 복잡함을 담고 있었다. 


20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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