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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Nov 30. 2021

2020년 3월 21일(2)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종교적 세계관까지 들먹이며 구구절절 알지도 못할 말을 늘어놓는 나의 모습이 껄끄럽게 느껴졌다. 이건 또 뭐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마 꺼내놓기 힘든 마음속 깊은 곳의 욕망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란 걸 바로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좀 더 내밀하게 생각해 보면 내가 있었다.



나는 힘들었다. 시간에 맞춰 약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간식과 보조제를 먹이고 하는 것들.  이런저런 수술이나 질병들로 특별 관리할 때만 빼면 그리 힘들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낫는 것들이었고 비단이도 금세 금세 회복했었으니까. 아마 시작은 심장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비단이가 약 12살쯤 되던 해 여름, 저녁에 산책을 조금 오래 한 날이었다. 집에 와서 씻고 말리고 하면서 비단이는 많이 지쳤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비단이가 뭔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목 쪽이 경직된 듯한 모습이었다. 잠깐 그러고 말겠지 했는데 그치지 않아서 동네병원에 갔더니 심장이 안 좋으니 자세한 검사를 해보고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후로 2년 반. 비단이는 떠나던 날까지 목에 심장약을 삼켜야 했다.  


심장초음파를 보기 위해 2차 병원에 처음 방문했다. 비단이가 눈을 감은 병원이기도 하다. 동네 병원과 2차 병원을 방문하며 심장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노쇠의 길을 걷기 시작한 비단이와 보살핌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나의 힘든 여정이 펼쳐졌다. 비단이는 입맛이 떨어졌고 약을 거부했고 나는 무얼 먹여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시간에 맞춰 약은 억지로라도 먹였다. 2주 정도 지나고 비단이 상태가 호전되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점점 약에 적응하여 나도 비단이도 다시 좋아지는 듯했다. 

그해의 가을, 추석 명절부터 남편과 나는 집을 비울 수 없게 되었다. 비단이 약 시간에 맞추기 위해 교대로 명절을 보내던지 몇 시간만 앉아 있다 후딱 일어나서 와야 했다. 처음엔 가족들이 서운해하는 게 느껴졌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에겐 너무 소중한 비단이지만 다른 친정과 시댁 식구들에겐 개 약 먹이는 건 대수롭지 않고 본인들과의 시간이 개 보다 못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병약한 개를 돌본다는 게 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자유로운 활동과 주어진 시간에 어떤 제약이 하나씩 늘어간다는 걸 의미했다.  


네 달쯤 지난 후 비단이의 목 쪽 떨림이 다시 시작되고 동네 병원은 약을 증량하고 비단이의  증상은 다시 나아지지 않았다. 한 달쯤 아픈 비단이를 돌보다 심장전문병원이라는 곳을 알게 됐다. 호의적으로 지냈던 동네병원에 변명을 해가며 병원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동네병원과는 전혀 다른 치료 방향을 얘기했다. 목 쪽 떨림은 심장과 전혀  관련이 없을뿐더러 약을 증상에 비해 너무 많이 먹고 있다고 했다. 심장약으로 인해 신부전 1기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또한 동네병원에서 먹이라고 권해줬던 비싼 보조제들은 먹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동안 병원 선택에 대해서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내가 병원의 진료 수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단이가 낫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하나하나의 선택이 비단이에게는 건강에 바로바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갑자기 너무나 큰 부담감이 밀려왔다. 먼 곳에 있는 병원에 다니느라 자가용이 없는 우리는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처음엔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비단이나 우리나 너무 힘들었다. 병을 고치려다 병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택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들은 취향대로 개에 대해 호감을 보이거나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을 오고 가는 내내 왜인지 눈치를 보게 됐고 그건 스트레스가 되었다. 아픈 개들은 자주 씻지 못한다. 꼬질꼬질하고 냄새도 날 수 있다. 비단이는 몸에 기름이 많은 편이라 냄새가 좀 나는 편인데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 냄새가 더 역하게 느껴질 것이다. 심장은 주기적인 검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병원 가는 날이면 우리 모두 긴장을 했다.    


  

나는 이제 그렇게 힘들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고 비단이가 떠난 건 너무 슬프지만 나도 고생에서 해방되어 기쁜 마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지도 모르겠다.  

한 생명을 끝까지 보살펴줬다는 뿌듯함과 함께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제는 편하게 자유를 누려도 된다는 기쁨. 

이제 내가 할 일은 커다란 슬픔을 안고 그 슬픔에 행복했던 기억들이 짓눌리지 않게 다듬는 것이라고 느낀다.


20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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