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윤희 Dec 07. 2021

2020년 4월 13일

아침으로 냉동실에 있던 단호박 퓌레를 데워 먹었다. 아직도 냉동실에는 고구마 퓌레 한 봉지와 단호박 퓌레 한 봉지가 있다. 이것들은 비단이를 위해 만든 것들이었다.


얼마 전에는 냉장고에 있던 비단이 간식들을 버렸다. 비단이 유골함 앞에 놓으려고 버리지 않고 있었는데 버렸다. 어차피 개봉한 지 몇 달이 지난 간식이라 이젠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먹을거리다. 그래 버리자. 이것도 큰 결심이라고 생각하면서 버렸다. 버릴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왠지 비단이 유골함 앞에 간식을 놓는 행위가 아무 의미 없는 텅 빈 행동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나를 위로하려는 행위였을 텐데 별로 위로되지 않았나 보다. 


지금도 비단이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내가 비단이를 제대로 보살펴줬는지 돌아보게 된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이런 생각들로 자꾸 빠져들게 되니까 머릿속을 환기하는 연습을 매일 해야 한다. 며칠 전에는 비단이 사진으로 되어있던 대화창 프로필 사진을 다른 이미지로 교체했다. 프로필 사진은 나에겐 안 보이고 타인들에게 보이는 사진이라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한 지인분께서 비단이 사진을 알아보시길래 나도 그제서야 눈치챘다. 


사실은 조금 신경 쓰고 있다. 세상을 떠난 개에 대해 집착과 미련을 굉장하게 보이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타인들은 그런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대해 쉽게 지쳐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짧은 공감은 가능하지만 지속적이고 깊은 공감을 하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모두 자신들의 삶을 마주해야 하니 이렇게 에너지가 드는 타인의 일은 바라보기를 꺼려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도 나의 이런 감정들로 인해 타인들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내 삶일 뿐이다. 


2020.4.13

작가의 이전글 2020년 4월 12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