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비단이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고 있지만 가끔, 아니 자주 인지도 모르겠다. 비단이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하고 눈물이 나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슬픔에 빠져 지내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조금의 우울감은 있지만 원래도 나는 가벼운 우울감을 늘 지니고 있었다. 아직은 비단이와 함께 지낸 12년 5개월이란 시간이 그저 과거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게 좀 억울하다. 내가 따로 계산하지 않으면 그 시간은 순간 너무 옅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소중했던 비단이가 옅어진다는 게 너무 싫다. 이런 걸 견디는 게 산다는 거겠지.
어릴 때 목욕탕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아프게 때 미는 것이 싫었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도 숨 막혔다. 싫었지만 안 하면 혼나니까 싫어도 했다. 도저히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 나에게 그런 일은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일이었다. 세상에 지고 무릎 꿇은 느낌. 그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 비단이가 더 이상 없다는 건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20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