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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Dec 30. 2021

2020년 8월 23일

요즘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떤 분이 키우던 반려견이 병으로 갑작스럽게 떠났다는 글을 올렸다.

8년 동안 둘째 자식처럼 키우던 강아지가 2주 전에 떠나서 그리워하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사진에는 해맑은 모습의 강아지가 주인 품에 안겨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댓글에는 본인이 반려견 병 수발하는 사람이라면서  글쓴이를 비난하고 있었다. 주인이 잘 돌봐주지 않아서 죽은 거 아니냐며 화를 내고 이런 글을 쓰지 말라며 위로받을 자격도 없다고 쓰여 있었다.

그 글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고 화도 났다. 다행히 나와 같은 걸 느낀 어떤 분이 댓글에 항의하는 글을 쓰며 언쟁 중이었다.


가장 상처 받았을 글쓴이는 그것마저 이해하는 듯했다. 사실 나도 이렇게 심한 말을 하는 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반려견을 병 수발하다 보면 심적으로 굉장히 지치게 된다. 병 수발에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일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온전한 이해를 받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 부분에서 더욱 상처를 받고 힘들어지고 아픈 강아지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면서 나만의 고통에 빠져들 수도 있다.  


나도 비단이를 갑작스럽게 보냈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가 병 수발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약을 시간 맞춰 먹이고 외출에 제한을 받고 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정도를 가지고 병 수발이라고 하진 못하겠다. 비단이가 떠나기 전 3달이 내가 겪은 병 수발이었다. 물론 마지막 3달을 겪기 전에는 그것도 병 수발이라고 생각했고 적응하는데 조금 지치긴 했다. 하지만 먹고 자고 싸고 걷고 숨 쉬는 것이 온전하지 않아 지자 삶에 현기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너무 빠르게 흐르는 강아지의 시간을 감당하자니 그전의 삶이  평온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힘들게 보내온 분들에겐 짧은 병 수발이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마음을 보듬을 줄 알아야 타인의 상처도 터트리지 않게 된다. 나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20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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