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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라는 거울

나 자신과의 만남을 시작하다. 

벌써 20년 전이다. 군대에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심리학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친한 동기와 함께 상담심리학 수업을 들었다. 심리학의 다른 전공 수업들은 대체로 매우 과학적인 내용으로 이뤄진다. 아마도 문과대학 전공 중 가장 많은 통계학 지식을 배울 것이고 뇌의 구조나 신경생물학적 지식을 많이 배운다. 당시에는 심리학이라는 과목이 그리 대중화되기 전이고, 그나마도 프로이트나 융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인지도가 높았던 시절이다 보니, 그런 기대감을 갖고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뜻하지 않은 과학적 접근에 당황하곤 했다. 그런데, 상담심리학은 그런 당황감을 조금 덜어주는, 다분히 인간적인(그렇다고 과학적인 접근이 비인간적이라는 건 아니고, 반대로 상담심리학이 비과학적이라는 것도 아니지만) 내용으로 진행됐다. 


단적으로,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분석학은 대부분의 다른 심리학 수업에서는 등장조차 하지 않지만 상담심리학에서는 어느 정도 등장했다. 매슬로우의 욕구계층이론 같은 것들도 상담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면서 인문학적인 색채를 더한다. 수업 내용 중 '전이'와 '역전이' 같은 개념을 배울 때는 매우 호기심이 자극됐던 기억이 난다. 상담자가 내담자와 적절한 거리를 두지 못하고 과도하게 공감해 버리면 발생하는 문제상황으로, 어떤 면에서 요즘 유행하는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과 연결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생들끼리 조를 이뤄서 서로 상담을 해주는 일종의 실습이었는데, 나는 상담자 역할을 맡아서 같은 조였던 선배를 상담했다. 학생들끼리 실습인데 깊이 있는 상담이 진행될 리 없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꽤 깊이 있게 진행됐었다. 상담 전에는 마냥 밝고 활발한 성격인 줄만 알았던 선배의 다른 면모에 대한 상담이 이어지면서 상담이라는 것이 지닌 묘한 매력에 몇 주간 푹 빠진 기억이다. 너무 매력적이었던 나머지, 이 시기에 내 진로를 심리상담 쪽으로 풀어가 볼까 고려해보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상담가가 되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고 몇 가지 자격증을 따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방향으로의 진로를 더 이상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게 됐다. 


이런 배경을 지니다 보니 나는 심리상담의 효과에 대해 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상담을 추천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덧, 내가 그 어려움을 겪는 입장이었고, 내가 심리상담소를 찾는 입장이 됐다. 반감이 들거나 받아들이기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나 스스로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 심리상담적인 접근을 해왔기 때문에, 기대만큼 효과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우려가 있었다. 그 우려는, '나 자신이 잘하고 있는데 상담을 받아봤자 뭐 해'라는 식의 냉소라기보다는, 심리상담을 했는데 효과가 없으면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절박함에 가까웠다. 


그렇게 처음 찾은 상담센터는,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심리상담 플랫폼에서 예약이 가능하면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여러 군데를 찾아보고 비교하면서 가장 좋아 보이는 센터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상담이라는 게 음식점이나 호텔처럼 리뷰 데이터가 많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최대한 빨리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집 근처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상담센터에서 첫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가 선생님은 아마도 50대로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차분해 보이는 눈빛과 표정에서 어딘가 모르게 연륜과 관록이 느껴졌다. 상담을 시작할 때 보통은 내담자,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나 자신의 '문제'를 정의하는데에서 시작하는데, 나는 문제가 명확했다 보니 시작이 수월했다. 


번아웃,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 증상의 해소. 


당연한 얘기지만, 그때, 그러니까 첫 상담에서 내 얘기를 시작했던 그 시점은 내 증상이 가장 심했을 시점이다. 당연한 얘기인 이유는 그 모든 회복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인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냥 상담소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에서 몸이 위축되고 손을 꽉 쥐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말 한마디를 할 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마치 잘 움직이지 앉는 관절을 힘겹게 움직이듯 말을 해야 했다. 그렇게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이나 감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통 상담은 내담자가 말을 시작하면 상담자가 그 말을 바탕으로 또 다른 질문을 해서 내담자가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되도록 자세하게 서술하게 유도한다. 나 역시 그렇게 증상이나 감정, 그 배경에서의 경험, 그 경험을 했을 때의 감정 등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다가, 그 배경을 얘기하다 보니 그보다 이전의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얘기하게 되고, 그 감정의 배경을 얘기하다 보니 또 그 이전의 일을 얘기하게 됐다. 4번의 스타트업 창업에 이은 큰 조직의 조직장 역할. 그 이전 인디 음반 프로듀서로 음악을 하던 시절. 그 이전 첫 직장 생활과 또 그 이전 군대, 대학생활. 또 그 이전의 학창 시절과 더 이전의 유년시절. 어느덧 약 20여분 분량으로 축약한 내 인생사가 돼버렸다. 


40년 인생사를 관통한 키워드는 '인정욕구'였다. 새로울 건 없었다. 인정욕구가 강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스스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던 참이었으니까. 꼭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욕구이기도 하니까.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던 나 자신의 모호했던 생각과 느낌을 말로 정성 들여 풀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치유력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 20년 전 수업시간에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니까. 그래서 내 얘기를 쭉 들으시던 상담사 선생님이 "그러니까 40년 평생 동안 인정받기 위해 사셨던 거네요."라고 말씀하실 때 까지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저 예상했던 대로 무난한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완만했던 감정의 곡선이 급격한 기울기로 뒤집힌 전환점은, 그 뒤에 덧붙여주신 짧은 한마디였다.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 8 글자짜리 한마디에, 나는 마치 40년 동안 나도 모르게 쌓아왔던 무언가를 지탱하던 둑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왈칵 눈물을 쏟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고 호흡을 챙기느라 아무 말 없이 몇 분이 지났던 것 같다. 고단했다. 실제로 나는 너무 고단했다. 상담사 선생님이 그 고단함을 알아줘서 눈물이 쏟아진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고단한 건 아니었다. 늘 무언가를 신경 쓰고, 버텨내려 하고, 짊어지려 했던 건 나 자신이고, 그로 인해 피로했던 것은 당연하다는 걸 나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아내와도 자주 얘기하고, 주변 지인들과도 종종 하던 얘기였다. 


그 한마디의 뒤에 깔려있는 '측은함'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40년 동안 고군분투해 온 나 자신에게 가져보지 않았던 그 측은함이었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 사이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에게 측은함을 가진 적이 없고, 그 한마디를 통해 나 스스로에게 아주 옅게나마 측은함을 갖게 됐고, 그러고 보니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가 나를 측은해해 주길 바라왔던 게 아닌가. 40년간 목말라했던 내가 바랬던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닌가. 


한 스포츠 스타의 어머니가 했던 인터뷰였던 기억이 있다. 경기를 하고 있는 자식이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을 부담감과 온몸의 근육에 가득할 팽팽한 무게감이 너무나도 고스란히 느껴져서, 부모로서 차라리 내 자식이 지금 경기를 포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이었다. 내 딸이 경기장에 있고 내가 관객석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면 똑같이 느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굳으며 매정하게 말라있던 두터운 둑이, 한순간 무너져버린 것이다. 



상담의 본질적 기능은 내담자가 이미 갖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정성 들여 꺼내보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상담가들이 '대부분 이미 답은 내담자가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 말 자체는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다만 나는 그 말이 옳다고 믿어온 나머지 그 이면에 있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상담이라는 과정에 대해 마치 거울을 보듯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거울 건너편의 나에게 나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관점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만 생각했지, 나 자신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또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않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눈물을 쏟게 했던 나 자신에 대한 측은함은, 용어적으로는 '자기 연민'에 해당한다. 이 단어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자기 연민을 꽤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담에서의 그 한순간을 통해, 머릿속에서 '자기 연민을 가져야지'라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을 체험하게 됐다. 내가 알아차림에 실패했던 것처럼, 마치 블로그를 통해 운동하는 법을 머리로만 받아들이고 실제로는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기 연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심리상담이라는 거울은, 나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스스로에게 보여주기도 하는, 그러니까 자아 속에서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첫 상담에서의 그 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 후로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도 상담치료 과정 중에 있다. 다만 그 순간은 번아웃 극복 과정에 있어서도 확실한 전환점이었을 뿐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살피는 방식, 그러니까 나와 나 자신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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