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불안장애에 뜨개질이 필요한 이유
뜨개질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자전거 얘기로 돌아가보자. 한 시간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조이고 돌렸던 자전거를 통해 맑은 머리와 평안해진 마음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나에게 무언가 이런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허구한 날 자전거를 풀었다 조일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비슷한 속성을 지니면서도 또 다른 속성을 지닌 활동을 찾고 싶었다.
그러한 치유력을 가진 속성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본다. 땀을 뻘뻘 흘린 점은 무척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속성은 이후 따로 자세히 쓰겠지만 운동을 하면서 채워지는 속성이므로, 꼭 땀이 날 정도로 체력을 쓰는 활동이어야 할 필요성은 배제하는 게 좋겠다. 게다가 그렇게 체력을 많이 쓰는 활동이라면 아무래도 공간에 제약이 있을 것이고, 아무 때나 수시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아무 때나 수시로 할 수 있는 속성을 자전거 조립에는 없었으나 반드시 필요한 다른 속성으로 지정해 두자.
땀을 흘렸다는 점 외에 자전거 조립이 지녔던 또 하나의 중요한 속성은 몸의 감각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볼트 너트를 조이고 렌치를 돌릴 때 힘의 균형이나 방향을 잘못 맞추면 잘 돌아가지 않거나 힘이 엇나가게 된다. 꽤 정교한 작업인 셈이다. 감각에 많이 집중해야 했을 것이고, 그 집중한 만큼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서 피어날 여지를 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찾아야 할 활동은 아마도 손을 많이 써서 무언가를 만드는 방향에서 찾아야겠다. 손발을 같이 쓰는 활동이 더 좋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손을 쓰는 범주에 속할 것이고, 발만 써서 뭔가를 만드는 활동은, 물론 찾아보면 있기야 하겠지만, 굳이 염두에 두지로 않기로 하자.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결과물의 방향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계속 머리를 써야 할 것이다. 자전거 조립의 미덕 중하나는 소위 '멍 때리기'의 상태에서도 수행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그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너무 멍을 때려서 30분에 끝날게 1시간 반이 걸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긴 하지만, 어쨌든 그만큼 멍을 때릴 수 있는 범주의 활동이었다는 얘기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몸의 감각에만 집중한 채 다른 생각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이면서, 멍을 때릴 수 있으면서, 아무 때나 수시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나에게 약간의 로망이 있는 목공예를 생각해 봤다. 몇 년 전 회사를 옮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솔캠, 그러니까 혼자서 캠핑을 갔던 적이 있다. 그게 마지막이었던 이유는, 정말 심심하고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외로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들기 전까지 휴대폰만 보고 있기에는 솔캠의 취지와 너무 어긋나는 것 같아서 장작 하나를 쪼개서 칼로 뭔가를 깎은 적이 있다. 시간을 재보진 않았는데 한 30여분 깎았던 것 같다. 아무 목적 없이 그저 모난 부분을 둥글게 하고 거친 부분을 매끄럽게 하다 보니, 나무젓가락보다는 조금 두툼하고, 실제 젓가락 용도로 쓰기에는 짧고 둔탁한 무언가가 완성됐다. 이후 그 물건은 한동안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 커피가루를 한번 뒤섞는 용도의 막대기로 사용됐는데, 암튼 만드는 과정이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손가락 끝에 나무가 만져지는 감촉, 그 감촉을 통해 모나거나 거친 부분을 찾아내서 칼을 든 손의 엄지로 적당한 각도와 적당한 힘을 찾아 날을 밀어내면 나뭇결이 둥글게 말려 올라가면서 깎여나가는 그 손맛이 어딘가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목공은 구체적 실행 단계에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제약사항을 드러냈다. 목공에는 종류가 많겠지만 일단 거대한 장비가 필요한 종류의 목공예는 '아무 때나 수시로'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큰맘 먹고 양보해서 테이블쏘 같은 장비를 들인다고 해도 집에 놓을 곳도 없었다. 그보다 좀 더 수공예에 가깝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건 대체로 '조각'의 범주에 들어가는 활동이어서 자전거 조립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멍 때리기에는 어려워질 것이었다. 그 외 어떤 형태로든 가루나 조각이 날리고 흩어지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집에서 수시로 하기에 현실성이 떨어질 것 같았다. 흙을 써서 뭔가를 만드는 것들, 예를 들면 자기나 옹기 같은 것도 좋아 보였지만 비슷한 이유로 장비 문제와 접근성 문제에서 배제됐다.
다소 좁혀진 후보들의 면면은 얼추 비슷한 방향이었다. 라탄 공예, 마크라메, 뜨개질, 바느질 등 뭔가를 '짜는' 활동들이었다. 상대적으로 장비가 적고 그 장비의 크기도 작은 편이며, 부산물이 나오지 않고, 정해진 패턴 속에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다들 어느 정도 적당해 보였다. 이 중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지 고민하다 간단하게 인풋과 아웃풋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인풋은 재료가 될 것이다. 대체로 실이나 천을 마련해야 하는 나머지들에 비해서 라탄 공예는 재료를 사고 보관하고 다루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조금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부피가 크고 구하는 경로도 제약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웃풋은 그 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기준에서 마크라메를 제외시켰다. 뜨개질이나 바느질은 가방, 주머니, 의류 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데에 반해 마크라메는 그런 실용적인 물건들보다는 장식품의 비중이 커 보였기 때문이다.
후보는 바느질과 뜨개질로 좁혀졌다. 마침 아내가 취미로 치앙마이 바느질을 배우고 있어서 집에 재료와 자재들은 있었다. 또, 아내가 대바늘 뜨개질을 하고 장모님께서 코바늘로 수세미를 짜셨던 적이 있어서 집에 뜨개실과 대바늘 코바늘 등의 자재들이 이미 마련돼 있었다. 그냥 하나 골라서 해보면 되는 편리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뻗어 거머쥔 것은 코바늘이었다. 이유는 정말 하찮은 것들인데, 바느질은 잘못하면 피가 난다는 점이라든가, 바느질을 중간에 실패하면 재료들을 버리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비해 뜨개질은 언제든 다시 풀면 실타래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라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왜 대바늘이 아니라 코바늘을 먼저 선택했는지는 더욱 하찮은 이유에서인데, 대바늘보다 코바늘이 생긴 게 예뻐 보여서였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코바늘 뜨개질이 시작됐다. 주로 유튜브를 보고 기본적인 사슬 뜨기, 짧은 뜨기, 긴뜨기, 한길긴뜨기 등의 기본기를 익혔다. 처음에 약간의 진입장벽이 느껴졌다. 코바늘은 '코 수를 센다'라고 표현하는 개념이 있는데, IT종사자인 내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자면 일종의 픽셀그리드 체계에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물론 픽셀그리드 체계라는 말이 어떻게 쉽게 이해하자는 말인 건지 어처구니없어하실 독자분들이 많이 계실 것으로 사료되지만, 하나의 '코'가 하나의 픽셀을 이룬다고 봤을 때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결과물을 가로와 세로로 배열하여 내가 지금 뜨는 부분의 좌표가 어떻게 되는지를 헷갈리면 완성품의 모양이 산으로 갈 공산이 큰 방식이었던 것이다. 뜨기 방식에 따라 한번 뜨는 게 1개 코를 만드는 경우도 있고, 1개의 코가 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 주어 2번을 떠야 1개의 코가 되는 경우도 있고, 한번 뜨면 2개나 3개 코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처음에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래서 초기에 만든 컵받침들은 대체로 모양이 자유분방하게 찌그러져있다.
그런데 이미 내가 픽셀그리드라는 말을 쓴 점에서 예상할 수 있듯,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니 코바늘 뜨개질은 내 성격,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막상 쓰려니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내 커리어와 잘 맞는 취미활동이었다. 코바늘은 상당히 IT 내지는 이과적인 특성에 호응하는 기하학적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이 체계를 대략 이해하고 나면 꼭 도안을 보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대략 이렇게 해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감을 잡아놓고, 실제 실행하는 과정에서 망치면 망친 부분만 다시 풀고 방법을 바꿔서 다시 이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며칠 지나니 '코 수를 세는' 것에도 조금 익숙해져서 이제 슬슬 컵받침에서 벗어나 사이즈가 큰 것들을 만들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구니, 와인 캐리어, 가방, 모자 등을 시도하면서 다른 세계로 접어들게 됐다. 말하자면 좀 더 진한 코바늘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이야기는 취미를 선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마음 챙김과 우울증 치유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이 진면목은 바로 '지루함'으로 시작한다.
코바늘로 큰 물건을 짜는 건 지루하다. 지루하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계속 주의를 돌리는 ADHD 성향에 정말 취약한 속성이다. 결과물이 완성되려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지 뻔히 보이는 상태에서 한코 한코 손목을 돌려 실을 감아 빼서 겨우 한코 늘리는 과정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처음 시작 할 때는 되도록 진도가 빠른 방식으로 뜨곤 했다. 예를 들어 두 길 긴뜨기라는 방식은 한 번에 4개 그리드를 채우는 방식이어서 짧은 뜨기보다 4배 가까이 빠르게 진도를 뺄 수 있다. 그리고 빼곡히 채우기보다는 그물 형태로 중간중간을 비워 만들면 속도를 더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초창기에 뜬 와인캐리어나 가방은 대체로 두 길 긴뜨기를 그물형으로 짠 형태로 뜨여져 있다. 코바늘도 ADHD 스럽게 짠 셈이다.
그렇게 진도를 빨리 빼고 싶은 마음은 아주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된다. 빨리 결과물을 완성하고 싶은 것이다. 빨리 와인 캐리어를 만들어서 와인병을 담아보고 싶고, 가방을 만들어 어깨에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실제로 그렇게 빨리 진도를 빼서 완성한 후 와인병을 담아보고 어깨에 걸어보면 적지 않은 성취감이 많은 심리적 보상을 안겨줬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의 늪에 빠져있었을 때, 이런 보상은 소소하나마 무언가를 할 동기를 부여해 줬다.
그러다 문득 이 활동의 전반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됐다. 밤에 아이와 아내가 잠이 들고 나서, 혼자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코바늘을 뜨고 있다 보면, 마치 자전거를 조립했을 때처럼, 머릿속이 비워지면서 가볍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음악에 너무 집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뜨개질 자체에 너무 집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잡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오묘한 밸런스 속에서, 우리 집이라는 공간의 안정감과 소파의 편안함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내가 코바늘을 선택한 건 당장 필요한 와인 캐리어가 있어서도 아니고, 아이패드를 담을 주머니가 꼭 필요해서도 아니고, 그저 이렇게 나의 마음에 드리워진 그늘을 조금씩 닦아낼 무언가가 필요해서였을텐데, 그걸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끝내려는 것이 어딘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그렇게 빠르게 와인 캐리어 하나를 완성하면 '아, 다 만들었다.' 하는 순간적인 희열감을 느낀 후 괜스레 병을 담에 어깨에 한번 매 보면서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다음으로 하는 행동은 그다음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일단 첫 코를 뜨는 것이었다.
이 것은 어떤 면에서, 프롤로그에 언급했듯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시포스 신화와도 일맥상통하는 시각이었다. 바위를 끝까지 밀어 올리는 순간이 목표가 된다면, 그 영원한 반복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 부조리 가운데에서도 그저 있는 힘을 다해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위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까뮈가 말하고자 했던, 내가 동경했던 그 태도 아니었을까. 뜨개질을 완성했을 때의 희열과 한 코를 뜨는 과정에서 느끼는 평온함 중 무엇이 나에게 더 중요한 걸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답이 명확해졌다. 나에겐 한 코 한 코에서의 평온함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소중했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뜨개질을 할 때 지금 뜨는 것을 빨리 끝내고 싶은 조바심이 줄어들고 한코 한코를 뜨는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빨리 끝내려는 의도가 줄어들다 보니 좀 더 큰 물건을 좀 더 촘촘하게 짜게 됐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에는 대체로 그물패턴이었다면 이후에는 꽉 차있는 패턴이거나, 또는 그물패턴이더라도 속도가 아니라 더 보기 좋은 모양을 만드는 데에 신경을 쓴 패턴을 선택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의 완성도가 높아져 오히려 완성했을 때의 희열감도 더 커졌다.
그러다가 이 생각은 한 번 더 확장하게 됐다. 이 건 사람이 살면서 하는 행동 모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는 일을 할 때에도 지금 하는 일을 되도록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서 좋은 피드백을 빨리 받기를 기대하며 일했다. 여행을 할 때에도 지금 하고 있는 일정이 끝나면 다음 일정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준비하고 즐길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내 머릿속은 늘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끝난 시점에 가 있었던 셈이다. 흔히 말하는 마음 챙김의 핵심인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과 완전히 상충된다. 이런 습관 속에서 살다 보면 또 한 가지 부작용이 있는데, 끝이 없거나 모호한 일을 기피하게 된다는 점이다. 끝이 없는 일이라는 건 예를 들면 집에 있는 사물들을 정리 정돈하는 것 같은 일이다. 어차피 정리정돈을 해두어도 생활을 하다 보면 다시 어질러지니까, 일상적인 정리정돈을 마치 매우 비효율적인 행동처럼 치부하게 된다. 오히려 맘먹고 하는 대청소는 열심히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고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거나, 양말을 차곡차곡 가지런히 쌓아두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성향에는 분명히 ADHD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즉각적 보상이 기대되지 않는 행위에는 관심이 없고,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 여기의 일상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외에 다른 것으로부터 동기를 찾는 것이다.
이런 습관이 뜨개질로부터 얻은 깨달음에 의해 조금씩 바뀌어 갔다. 한 코 한 코를 뜨는 것에 비견할 수 있는 모든 일상적 반복적 행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에 효율/비효율이 아닌 또 다른 가치를 체감하면서 머릿속은 점차 지금, 여기에 머물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일을 할 때에도 결과보다 과정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무의미해 보였던 일들의 의미가 다시 보이게 됐다.
증상이 많이 호전된 지금은, 문득문득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올라오려는 낌새가 보일 때, 그래서 머릿속에 잡생각이 자리 잡으려는 신호를 느낄 때 바로 코바늘과 실타래를 찾는다. 손에서 예민하게 느껴지는 실의 장력과 촉감, 이를 파고들고 지지해 주는 코바늘의 단단함을 느끼면서 그런 잡생각이 자리 잡기 전 한숨 날려 보낸다.
여행을 가거나 캠핑을 갈 때에도 실타래와 코바늘을 챙겨가곤 한다. 그리 크지도 무겁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든든한 느낌을 주는 준비물이다. 코바늘을 뜨면 분명 시선은 코바늘에 꽂혀 주변을 못 보게 되지만, 역설적으로 어떤 공간에서 뜨개질을 한창 하고 나면 그 공간이 주었던 느낌은 오히려 더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코바늘 한 자루가 나에게 끼친 영향은,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이렇게나 더 큼지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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