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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퇴원

세 가족이 함께하는 첫 귀가

2박 3일간의 입원이었다. 새벽 3~4시경 입원해서 오전 11시에 퇴원을 했으니 꽉 채운 만 이틀을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늘 상대적인 것이어서, 한 생명이 탄생하고 우리 '가족'의 또 한 명이 된 이 이틀은 그 나와 아내의 인생 그 어느 때의 이틀보다 밀도가 높았다. 못해도 2주 정도는 병원에 머문 듯한 기분이었다. 


이틀간, 아내의 회복 속도는 무척 빨랐다. 보통 자연분만을 한 경우, 특히 자연주의 출산 방식으로 분만한 경우 산모의 회복이 빠르다는 얘기는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빠른 것은 단지 그것 때문 만은 아닌 것 같았다. 임신 기간 동안의 식습관, 아내가 꾸준히 해온 요가와 스트레칭, 무엇보다도 장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등등이 복합적인 작용이었으리라. 아내는 분만한 당일 오후부터 어느 정도 설 수 있었고, 다음날 아침부터는 혼자 걸어 다녔다. 누가 보면 어제 아이 낳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딱 한 가지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집중관리를 받았던 부분은 약간의 탈수현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만 당일에 저녁 식사 후 아무것도 먹이 않은 채로 진통이 시작돼 입원을 했고 그대로 분만을 했기 때문에, 거의 12시간 가까이 식사는커녕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던 것이다. 증상이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진통과 분만 과정에서 이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었다는 사실이 남편으로서 죄스러웠다. 다행히 아내는 입원기간 중에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다. 


아이도 첫날밤을 신생아실에서 지낸 이후로는 건강했다. 다만 젖을 물리는 데에 다소 애를 먹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아이가 잠에 푹 들어있는데 젖을 먹일 시간이 됐을 때였다. 이 조막만한 아이가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고 억지로 깨워서 젖을 물리는 건, 초보 부모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금만 있다가 깨우자는 생각으로 있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서, 신생아실 간호사들의 책망 어린 말을 몇 차례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쓴소리 듣는 거야 별 문제가 아니지만, '부모가 될 준비'가 덜 됐다는 자책감은 묵직했다. 특히, 보충 수유를 위해 신생아실로 아이를 맡길 때가 되면, 어느 정도는 휴식시간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자책감이 더 커진다. 그 와중에 속싸개를 싸거나 기저귀를 가는 손놀림이 굼뜨면 자책감이 또다시 상승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런 자잘한 것들은 높은 집중력으로 익히려 노력했다. 뭐 하나라도 아내보다 능숙한 게 있어야 덜 미안할 것 같았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아마도 내 평생 가장 조심스러운 운전 끝에 집에 도착했다. 평소 답답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운전은 안전하게 하자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하던 대로의 운전은 너무 위험하게만 느껴졌다. 다행히 임신 기간에 미리 붙여둔 '아기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가 차선을 바꿀 때나 전용도로에 진입할 때 은근히 효과를 지니는 듯했다. 


아내는 임신기간부터,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오기로 했었다. 금전적인 부분도 무시 못할 일이었지만, 간호사 출신이신 장모님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조리원을 찾기 힘들 것 같다는 이유가 컸다. 나는 임신과 출산에 관련해서는 아내의 선택을 무조건 따르자는 입장이기도 했지만, 아내와 장모님을 생각할 때 매우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막상 아내와 아이와 함께 집에 들어와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조리원에 가서 또 아이를 그 조리원 옷으로 갈아입히고 낯선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어야 하는 것보다, 처음으로 세 가족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이 기분이 좋았다. 다행히 아내의 회복도 빠르고 특별히 불편한 부분도 없었고 말이다. 


미리 사두었던 아기 침대에, 미리 세탁해둔 아기 담요를 깔고서 아기를 눕혔다. 임신 중 아내와 밤마다 '이제 곧 저 침대에 아기가 누워있겠지?'라고 말하곤 했던 것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었다. '대기'상태였던 아기 용품들을 수납했던 수납함과 지퍼락들이 '활용'상태에 접어들었다. 얼마나 클지, 작지는 않을지 가늠할 수 없었던 배냇저고리와 속싸개 등이, 이 작은 아이에 비해 얼마나 큰 것들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개시해나가는 과정에서 후회보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아이는 다행히, 새로운 옷, 새로운 침대, 새로운 공간에서도 쌔근쌔근 잠들어주었다. 하긴, 이 아이에겐 어느 곳이든 무엇이든, 다 새롭기만 할 테니. 


이 모든 장면이 미묘하게 낯선 느낌이 들 줄 알았는데, 반대로 늘 그 자리에 아기가 누워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다. 처음 보는 장면이지만 낯선 것이 아니라 마치 늘 그래 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마치 원래 이러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이 있어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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