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라는 언어
딱 한 장면 때문이다. 내가 수화에 관심이 생긴 건.
크리스마스이브, 한 백화점에 산타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신이 나는지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이 쭉 줄 서있고 그 줄 끝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앉아계신다. 엄마손을 붙잡고 산타에게 가서 가지고 싶은 선물을 귀속말로 전하는 아이들 얼굴에는 두근거림이 가득하다. 그런데, 다음 순서의 아이는 산타의 무릎에 앉아 아무 말이 없었다. 아이 엄마가 산타에게 살짝 말을 전한다. '아이가 듣지 못해요. 그냥 잠시만 아이와 있어주세요' 반짝거리는 트리와 웃음 꽃핀 아이들이 가득하던 화면이 순간 어둡게 내려 얹은 것 같았다. 영화를 보던 내 마음이 덜컥거렸다. 그런데 그때 산타 할아버지가 수화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올해는 어떤 선물이 받고 싶니?]
중학교 1학년 때쯤 봤던 이 장면이 마음에 콕 박혀있었다.(무슨 영화였는지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을 잊고 있다가 대학생 때 교양 수업 목록에서 '수화'수업을 발견한 순간 그때 그 두근거림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복수전공을 늦게 결심한 탓에 들어야 할 강의가 산더미 같았지만 무리해서 '수화'수업을 끼워 넣었었다.
수화를 처음 몇 번 봤을 때에는 다양한 표정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을 보고 '엄청 풍부한 언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직접 배워본 수화는 어휘가 풍부한 언어는 아니었다. 하나의 표현이 다양한 의미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앞뒤 문맥과 표정 등을 모두 합해야만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수화를 사용하시는 분들 중에는 마임이 수준급인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흔하게 비언어적 표현이라고 하는 표정이나 억양 등이 수화에서는 '언어적 표현'인 듯했다.
한 학기 수업을 가지고는 단어만 잔뜩 외웠을 뿐 실제로 수화로 대화를 해볼 기회는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일상에서 수화가 지워지던 어느 날, 자치단체들에서 진행하는 문화수업 중에 수화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찾아보다 보니 의외로 꽤 여러 기관에서 수화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기관을 선택해 초급, 중급 수업을 통해 다시 수화를 배웠다.
그 수업에서는 농아인을 만났었다. 선생님도 농아인이셨고 수업을 함께 듣는 수강생 중에도 5년 전 교통사고로 청각을 잃으신 분이 계셨다. 그 안에서 수화를 배우다 보니 수화라는 언어가 조금 어려워졌다. 나는 수화라는 언어를 '선택'해서 배우는 것이었다. '어릴 때 봤던 영화처럼 그런 순간이 온다면..' 하는 가볍다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결코 무겁지도 않은 마음으로. 하지만 수화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언어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사고 때문에 수화를 배워야 할 상황에 놓인 분과 옆에 앉아 수화를 배우는 시간 동안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졌고, '궁금하다.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수업이 끝났고 그 후에는 수화와 멀어졌다.
며칠 전 youtube를 보다가 예전에 푹 빠졌던 영상을 발견했다. 수화로 Jason Mraz_Lucky를 부르는 영상인데 그 속의 여자분의 수화가 너무 예뻐서 보고 또 봤었다. 소리를 끄고 들어 봤는데도 노래 속 감정이 전달되는 기분.
처음 영화 속 장면에 빠졌을 때는 그 유인이 '뭉클함'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의 행동이 아이와 아이 엄마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 주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수화를 그냥 단순하게 '다른 언어'라고 생각하면 그 기억이 다르게 와 닿는다. 여행 가서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 몇 마디라도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 현지인들과 한두 마디 주고받는 것을 의미 있어하는 것처럼 수화로 소통을 해야 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떠듬떠듬이나마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의미 있는 일이 맞지 않을까.
거창할 거 없이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내 마음 한두 마디 나누기 위함이라면,
많이 까먹었고 문장을 만들지 못해 단어를 더듬더듬 이어 붙이는 수준이지만, 다시 한번 배워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