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제를 하나 던져준다. 문제를 맞힌 아이에게 칭찬을 잔뜩 해주고 나서 다음에 풀어볼 문제를 아이에게 고르게 해 준다. 쉬운 문제 하나. 어려운 문제 하나.
칭찬을 받은 아이일수록 쉬운 문제를 고를 확률이 올라간다고 한다. 다음에도 칭찬받아야 하니까.
나는 이 실험만큼 나를 잘 설명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글에서 나를 '뿌듯함의 노예'라고 표현했었다. 뿌듯한 기분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일 때가 많아서.
그런데 문제는 '나의' 뿌듯함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갖는 나에 대한 평가가 내 원동력이었다.
최대한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덜 받으려 노력하지만 세상엔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일이 뭐가 이리 많은지...:)
난 내가 봐도 참 착한 아이였다. 엄마들은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라고 한다는데 나는 뻔뻔하게도 나 같은 딸이 안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데 크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 내가 밉고 싫은 날이 자꾸 생겼다. 문제는, 내가 슬픈 이유 중 너무 많은 경우가 내가 아닌 남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내 마음에 거슬러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도,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지 못하는 것도 8할은 '미움받기 싫어서'였다.
좋은 사람, 긍정적이고 둥글둥글한 사람, 쿨하고 쌈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인간관계에서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게 일상인 나는 안타깝게도 원래 화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애인이 내 이름 앞에 '욱'을 붙여 부를 만큼 속으로는 한 성깔 한다.
화는 나는데, 화를 못 내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 상대방을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관계들이 빵빵 터져서 사라져 버렸다
불만이 있을 때, 서운 할 때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어디, 한 번만 더 그래 봐.'하고 관계를 끊어버릴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었다.
내 주변에 이젠 없어지면 안 되는 사람들만 남아있을 때 정신을 차렸다. '얘네는 안돼. 절대 안 돼.'
그렇게 막다른 길에서 속 마음을 꺼내놓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짜증 낼 줄 알았던 친구가, 말해버리면 뻘쭘해질 것 같던 상황이 아무 일 없이 풀렸다.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라는 답변이 돌아올까 봐 미뤄뒀던 말들 뒤에 '제대로 얘기를 해봐봐' '괜찮아? 네가 그렇게 느낄 줄 몰랐어 미안해' 같은 말들이 따라붙었다.
물론, 이런 경험을 몇 번 했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내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된 건 아니다. 여전히 발목을 붙잡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종종 빠져 허덕이며, 말 못 하고 넘어가 타이밍을 놓쳐버린 말들을 자기 전에 곱씹는다.
그래도 며칠 전 '지금 이 사람이 힘드니까, 이건 내가 이해해줄 수 있는 거니까'하고 착한 척 넘어가던 일들을 결국 꺼내 털어놓았다. (이미 조금은 쌓여버려 감정적이 되었지만) 속상한 마음이 곪아버리기 전에 들여다보고 소독약 뿌리고 깨끗한 반창고를 붙여준 기분이다.
이렇게 차곡차곡 연습하다 보면 불혹 전에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던져버리고 솔직 담백한 나를 다 보여주며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