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은 내 꽤 지배적인 성질이다. 30년간 나를 데리고 살면서 나를 내가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많이 찾아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의 '관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번 주 주말.
토요일엔 아침 8시쯤 일어났다. 답답해서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잤는데 새벽에는 꽤 쌀쌀했는지 닭살이 오돌토돌 돋은 채 잠에서 깼다. 따뜻한 홍차를 내려 읽던 책을 들고 앉았다. 차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하니 배도 딱히 안 고프고 '건강하게 먹어볼까!?' 하는 마음에 요구르트를 나름(?) 예쁘게 담아 그 위에 블루베리를 잔뜩 얹어 다시 침대에 들어가 앉았다. 침대에 앉아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큰 아무가 창을 가득 메운 채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이 자리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영화를 보고, 멍 때리는 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 중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9시 반쯤 동생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둘 다 바빠서 한집에 살면서 얼굴을 못 보는 날이 더 많았다. 마주쳐도 '잘 자' '잘 다녀와' 정도가 대화의 끝이다 보니 며칠 새 쌓여버린 얘기들이 꽤 많았다. 내가 가진 세상 좋은 습관이 스트레칭이다. 바닥에 앉아 수다를 떨면 수다 떠는 내내 스트레칭을 한다. 그렇게 한 시간쯤 온몸을 쫘악쫘악 늘리며 뭉친 근육과 이야기들을 풀어헤쳐두고 다시 아침에 읽던 '앵무새 죽이기'를 들고 반신욕을 시작했다. 1시간씩 반신욕을 하는 게 부기 빼는 데에는 그만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더랬다.
차가운 녹차 한잔에 앵무새 죽이기 책, 알로에 팩을 들고는 코코넛 오일을 잔뜩 넣은 욕조에 들어가 1시간.
그렇게 목욕을 마치고 나와 무슨 엄청난 운동을 끝마친 듯 그대로 30분간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꼬르륵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침도 건강하게 먹고 알차게 보낸 김에'라는 생각으로 차린 점심은 고등어구이 한 조각, 잡곡밥, 양배추와 다시마 쌈. (양배추엔 쌈장인데, 고등어 구이가 생각보다 간간한 바람에 쌈장은 포기하고 고등어 간으로 양배추 쌈을 마무리했다.)
여기까지 하고 나니 세상 뿌듯:) 여기서 내 관성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다이어리와 읽을 책, 이어폰을 챙겨 들고 한강으로 나갔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앵무새 죽이기'편을 들으며 자그마치 6.5km를 걸었다. 옥수 역에서부터 잠수교까지 쭉 걸어갔다 돌아오는 루트가 생각보다 좋다. 사람도 많지 않고. 그렇게 걸어갔다 다시 옥수역 근처로 돌아오면, 옥수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테이블들이 있다. 한강 앞에 쪼르르 자리한 테이블에 앉아 땀을 식히며 앵무새 죽이기 리뷰를 다이어리에 끄적끄적. 새로운 책을 또 한두 장. 이어폰을 빼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나를 툭툭 건드렸다.
요렇게 하고는 저녁 약속은 육회에 소주._.
완벽한 하루였다.
자, 그럼 이제 그다음 날. 일요일
아침에 10시 반쯤?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집에 있던 컵누들에 물을 부어 그냥 순간 떠오른 '괜찮아 사랑이야'를 틀고 앉았다. 그렇게 그 컴퓨터 앞에서 일요일이 끝났다.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하고, 다시 볼 때면 마구마구 돌려가며 보고 싶은 장면만 골라 보는 내가 그날 앉아서 봤던 게 뭐뭐였더라..... 괜찮아 사랑이야, 죽은 시인의 사회, 마녀, 귀를 기울이면, 컨텍트._.
또 먹은 거. 거의 하루 종일 먹었다. 아침인 줄 알았던 컵누들은 애피타이저에 불과했고, 30분이 지나지 않아 치즈를 호화롭게 얹은 로제 파스타를 해 먹었다. 그다음엔 냉장고 저 구석이 찌그러져있던 소시지를 찾아내 물에 튀겨먹었고, 하이라이트는 며칠 전 술김에 사들고 왔던 핵! 불닭 떡볶이. 휴지를 한 손에 쥐고 반쯤 울면서 먹은 것 같다. 그 외 틈틈이 짬짬이 냉동실에 들어있던 미니 호두파이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가져다 먹었다.
먹을 것을 챙길 때 외에는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았던 일요일은 누가 훔쳐간 것처럼 샤샤샥 지나가 버렸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판단할 때 나는 좀 극단적이랄까?
그러다 보니 내가 만족할 만한 하루를 보내는 가장 중요한 건 첫 시작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무엇을 하느냐.
그래서 7시 반에 일어나 씻고 나가면 되는 데도 불구하고 내 핸드폰 시계는 6시 50분, 7시, 7시 30분 이렇게 3번 울린다. 6시 50분에 일어나 10분간 뒹굴다 7시에 일어나고, 7시에서 7시 30분까지는 매일 다른 일을 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운동. 배가 고픈 날 또는 냉장고에 맛있는 엄마표 반찬이 가득한 날은 아침밥 잘 차려먹기. 침대에서 뭉그적거리고 싶은 날은 침대에 누운 채 책상 위를 더듬어 책을 한 권 끌어다 읽는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기 때문에 사무실에도 소파 위에도 침대 위에도 '읽는 중'인 책이 여러 권 놓여있어 그날그날 당기는 책을 읽는다.)
다 싫으면 추가 30분 취침을 선택하는 날도 예상하시다시피 꽤 많다. 야근이 끝나고 12시가 넘어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내일의 선택도 '추가 취침'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