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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집착

뿌듯함의 노예

by chewover


'뿌듯함'은 늘 나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운동을 했을 때, '이거봐라~ 나 이거 읽는다?'하고 꺼내놓기 좋은 책을 읽을 때, 나는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명심하자고 되뇌며 허리가 아프도록 방 구조를 바꿔댔을 때처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평가가 내려졌을 때 누릴 수 있는 '뿌듯함'. 그게 참 좋다.


덕분에 사부작사부작 심심할 틈이 없게 산다. 하다 말다 하긴 하지만 운동도 좀 하고 책도 좀 읽는다. 심리학이 궁금하다며 들여다본지도 꽤 됐고, 혼자 등산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고, 영화를 보고 술도 마신다. 영화 속 한 장면에 꽂혀 수화를 배우기도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성을 위해 19금 가이드북을 써보겠다며 설문조사를 하기도 한다(나랑 똑같이 생겨먹은 친구들과 함께). 뿌듯함을 동력으로.



그렇게 보내는 날들을 글로 남겨보기로 한 데에는 꽤 다양한 유인이 있다. 첫째는 역시 뿌듯함일까. 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뿌듯함의 노예니까.


둘째는 단순하게도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오늘도, 어제도, 저번 주에도, 저번 달에도) 일도 나와 안 맞는 것 같고 사람도 힘들었다. 근데 때려치우고 나면 그다음 현재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plan B는 굶어 죽는 것이다. (아, 이런 낭떠러지 길은 plan B라고 부르지 않던가) 그래서 제대로 된 plan B를 만들고 싶었다. 기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가지고 만들어나가고 싶어 갑자기 전투 모드로 자리 잡고 앉아 좋아하는 것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한 가지 깨닫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적은 것들을 들여다보니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집착하는 것들'이라는 걸...

심리학에 집착한 지 꽤 됐지만 목표이자 로망이었던 심리학 덕후와는 거리가 멀다. 대학원 입시를 위한 강의를 찾아 듣기도 하고 심리학 책 추천을 보면 잘 넘어가지 못하고 결국 어느새 내 책장에 꽂아둔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관심은 책이 집에 도착하고 나면 사그라들고 그 후 책을 읽는 과정은 퍽이나 사무적이다. 다이어리 to do list에 <인간, 사회적 동물> 읽기가 적히고 그 한 줄을 다시 긋기 위해 펜과 포스트잇을 들고 경건하게도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덕후들에게서 보이는 그 알 수 없는 전투력을 내가 가지지 못했다는 건 꽤나 아쉬운 일이지만 세상엔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은 대부분의 사람들 가슴 한편에 들어앉아 있으니까. 서점에 가면 심리학 책은 전문서적에서부터 자기 계발서, 인문학, 철학 등 온갖 코너에 자리 잡고 있고, 올해는 꼭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말리라는 다짐이 얼마나 흔한지는 말하기 입 아프다. 프라이팬 그대로, 반찬통 그대로 늘어놓고 밥을 먹으면서 거기에 손을 조금만 더 거치면 누릴 수 있는 (내 밥상보다는 살짝 더, 조금 더 정성이 들어간) 음식 사진, 음식 방송에 눈을 고정시킨다. 나와 비슷한 것을 좋아하고 비슷한 것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내 '집착'이 인생의 plan B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기 30분 전에 내 머릿속을 휘리릭 지나간 의식의 흐름이다.)


세번째는, 아까워서.

현재 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집착'은 내 직업과는 벽을 쌓고 있다. 전문성을 높이고 일을 잘하는 인간이 되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에 잡아먹힌 내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일 외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집착'이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야근을 하고 11시 12시에 집에 와도 책을 한 시간 읽고 자고, 새벽 2시에 퇴근을 해 피로가 쌓여도 점심을 달걀, 우유로 대체하고 점심시간엔 챙겨간 운동화를 갈아 신고 나가 30분씩 분노의 파워워킹을 하는 등. 일과 잠만으로 나의 매일이 끝나 버리는 게 너무 싫어서 틈틈이 짬짬이 시간을 쪼개고 쪼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쌓이지 않고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아쉬워 그것들을 끌어 모아 보려는 것이다. 말했듯 나는 생산적인 것에 집착하고 뿌듯함을 갈아 넣어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그 외에도, 사실 최근 나의 가장 큰 집착은 '글쓰기'니까. 라던가, 어릴 땐 한 성실 했던 내가 너무 게을러진듯하여 '꾸준함'을 다시 연습하기 위함이라던가, 이걸 쓰기 시작하면 그동안 버킷리스트에 적어 놓고 묵혀왔던 해보고 싶던 일들을 내가 더 적극적으로 할 것 같아서 라던가 이 매거진을 연재해 나가고 싶은 이유가 한가득이다. (글을 쓰기 귀찮아 질 때마다 이 첫번째 글을 읽고 정신 차려야겠다)


====@chew___over에서는 내가 매일 사부작 거리고 하는 다양한 일들을 공유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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