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의 방식
제1065조(유언의 보통 방식) 유언의 방식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와 구수증서의 5종으로 한다.
그중 가장 나에게 익숙한 '쓰기'의 방식을 골랐다.
제1066조(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①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 하고 날인하여야 한다.
②전항의 증서에 문자의 삽입, 삭제 또는 변경을 함에는 유언자가 이를 자서하고 날인하여야 한다.
자필 유서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공증을 받고 뭐하고 할 것 없이 내 손글씨로 남기고 싶은 말을 쓰고, 날짜, 주소,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면 끝이다.
아직 가까운 이의 죽음을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다. 이 나이가 먹도록 장례식장도 한번 가본 게 끝이니 '죽음'과 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았는지 알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간접적으로 너무 다양한 길을 통해 '죽음'을 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나 소설 속 죽음은 다양하다. 비장하기도 하고 속수무책으로 슬프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하지만 신문이나 뉴스 속 죽음은 대게 어이가 없다. 갑작스러워서 어이가 없고, 미친놈 때문에 어이가 없고,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이 처한 현실이 어이가 없다.
아침 출근길에 전날 저녁 뉴스를 듣는 일을 꽤 오랫동안 지속해 오고 있다. 다른 시간으로 도망가고 싶은데... 달리 짬을 내기가 어려워 그 시간을 유지 중이다. 뉴스가 원래 이랬나? 하루의 시작을 함께하기엔 안 좋은 소식들이 너무 많다. 1.5배속으로 듣는 뉴스는 매일 40분 남짓이면 끝이 난다.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죽음을 반복해서 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죽음이 훌쩍 코앞에 다가오는 기분에 심장이 발밑에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고 나서 생각했다.
뭐라도 남겨야겠다고.
사후 세계는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서를 쓰자고 펜을 잡고 앉아보니 죽은 뒤에 내가, 나의 죽음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일로 생각지 못했던 날에 죽게 된다면, 죽음 뒤에 남겨질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하지 못하고 떠나면 후회할 것 같은 말들을 남겨보고자 한다.
고마운 사람이 많은 인생이라 좋았다.
나는 잘 살다 간다. 아쉬운 것들이 조금 있고, 넘치는 것들도 조금 있다.
여행 온 듯.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어려워하지 말고, 홀가분하게 살다 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고민의 연속이었고, 작은 것에 집착했고, 남들의 시선에 눌려 가벼운 삶을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삶 자체가 선물이라던데 그 안에서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무겁게 눌러앉은 덕분에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찐하게 포옹하고 떠난다.
닮고 싶고 부러웠던 동생.
나랑 성격이 똑 닮은, 늘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던 엄마.
내 인생에 꼭 남기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준 아빠.
내가 받은 사랑의 반도 돌려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늘 가득한 우리 고모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
무슨 선택을 하든, 판단을 하지 않고 지지해주던 친구들. (욕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너에게는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할 권리가 있고, 나에게는 니 선택을 깔 권리와 의무가 있지.'가 우리들의 기본 전제였다.)
온갖 주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친구들. (이들을 몰래 훔쳐보며 배우고 자극받곤 했었다. '앗, 저런 걸 하다니. 멋있어. 나도 해야지')
엄마 아빠 다음 처음으로 멋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도.
그 외 타산지석이 되어준 너무 많은 이들까지.
'인복이 타고난' 내 옆에 있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_혼자였다면 이만큼 보고 이만큼 느끼고 이만큼 생각하다 가지 못했을 거예요.
_나와 이 사람들과 세상이 거미줄처럼 엉켜 서로한테 영행을 주고 영향을 받으며 오늘까지 왔어요.
_그 덕분에 너무 잘 살다가요. 고맙습니다.
_재미있었던 일을 손가락 발가락이 부족하도록 꼽을 수 있는 삶이었습니다.
_하지만 역시 이렇게 끝날 것이었다면 걱정도 욕심도 조금 더 내려놓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_인간은 자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척'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_알고 있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에이 설마, 나는 나이 들어서 죽겠지.라고 생각해요.
_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하는 것도, 작심삼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도 '죽음'을 나와 멀리 두고 외면해서 그런 것 같아요.
_이번 일이 멀리 놓인 죽음을 직면하고 흘러가는 시간들을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촘촘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똥된찍먹 mini 인터뷰
Q. 유서를 쓰면서 울지는 않았나? (난 울 뻔했다)
A. 감정 잡고 앉아서 썼는데도 여전히 실감이 안나더라. 아쉬움과 후회가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지기는 했지만 눈물까지 가진 않았다.
Q. 가장 먼저 유서를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 사람이길 바라나?
A. 역시 가족이다. 최대한 내가 떠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유서를 썼다. 나는 충분히 잘 살다가니 슬퍼 말고 아쉬워 말라고. 그 마음을 제일 잘 알아줬으면 하는 게 가족이다.
Q. 재산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만약 수중에 있는 돈을 누군가에게 남기고 간다면 누구에게, 얼마만큼 남길 예정인가?
A. 유서를 써보기로 했을 때 고민해 놓고 정작 유서에는 빠트렸다. 이 부분을 추가해서 다시 작성해둬야겠다. 작고 귀여운 내 재산은 동생에게 남기려 한다. 작고 귀여운 액수로 최대 효용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동생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