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리면 들릴 때까지 듣는거지 뭐
어릴 적부터 한국인 답게(?) 영어공부는 쉬지 않고 해왔으니 이정도 쯤이야.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으로 TED를 듣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해 회사에 고이 모셔둔 운동화로 갈아신고 30분.
점심시간엔 '저는 따로 먹겠습니다'하고 당당히 혼자 나와 30분 걷고 풀떼기를 먹고 들어왔으며,
야근을 해야하는 서럽던 시기에 6시 땡하면 다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30분을 주구장창 걷고 우유와 계란을 사들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앉았다. 걷는 시간이 하루 평균 1시간이 넘어가다 보니 그 시간을 이용해보고 싶어 TED 듣기가 시작됐다.
한동안 손을 놓고 방치했으면서 유지되었을 거라 덮어놓고 믿었던 '영어'
당장 이직을 위해서도 영어 공부는 필요했다. TED talk이라는 팟캐스트를 찾아보니 10~20분 정도 되는 영어 강연이 가득했다.
처음엔 하루에 4편씩 들어 제꼈다. 문제는 내가 반 밖에 못알아듣는다는 데에 있었다.
와... 나름 30년 영어를 놓지 못하고 질질 끌며 살아온 결과가 이거라니.
'아냐, 다음건 괜찮을거야. 내가 익숙한 주제는 들릴거야.'하고 심사숙고해서 고른 에피소드들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방법을 바꿔보았다.
하루 종일 딱 하나의 에피소드만 들었다. 듣고 듣고 또 들었다. 2~3번 반복하고 나면 영상을 같이 보면서 한번, 그 다음에는 영어 자막을 따라가며 또 한번. 그리고 다시 귀로만 몇번을 들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3일씩 하나의 에피소드에 매달렸다.
이렇게 하니 각 에피소드마다 이해가 안가서 찾아봐야하는 건 두세문장 밖에 안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어릴 적 영어공부도 이렇게 했었다. 한국인 답게 영어공부는 꾸준히 했었지만 한국인 처럼 하지는 않았었다. 영어문법을 딱히 배워본적이 었으니까. 영화를 자막없이 보고 영어 오디오북을 통해 듣고 따라하며 영어를 접했다.
듣고 따라하고 영상을 보고 영어자막을 보고 다시 듣고 따라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내가 죽을만큼 지겨워서 1mm단위로 잘라버리겠다던 튼튼영어 테이프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말없이 사촌동생들에게 물려주는 바람에 1mm단위로 테이프를 조각 내겠다던 내 꿈은 좌절되었다.)
'강제'되어야 하던 영어 공부를 내가 내손으로 찾아 하고 있다는게 신기했다.
철이 좀 든걸까. 욕심이 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