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를 가보려 했는데 요즘은 코로나 예방을 위해 안면인식으로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내가 가서
저 졸업생이에요. 한국에서 모교 보려고 왔는데 들여보내 주세요
라고 해봤자 통할 리가 없다. 그래서 포기.
전날 지사 직원들과 법인장과 너무 즐겁게? 술을 마셔서 숙취가 온몸을 뒤덮은 상황에서 아침부터 지사장을 불러내어 중국 영업력 확장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과유불급이었을까? 오후에 허리가 아프다고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 지사장도 나한테 속으로 욕했을 듯.
미팅이 끝났다. 오랜만에 온 북경에서 일만 하다 가는 것은... 용납이 안 됐다. 뭐라도 생산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나의 원칙에 위배되기도 했지만, 해외영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나라, 그 지역 문화를 배우는 것이기에 항상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알게 된 변호사 형님 친구가 3년 전 중국 북경으로 갈 때 내가 북경 교당을 소개해줬었고 그분이 북경에 오면 보자고 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그분께 연락을 드려서 저녁 식사 가능하신지를 여쭸더니, 흔쾌히,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에 소재한 '순천 집'이라는 부대찌개, 순대를 판매하는 곳으로 나를 초대해 주셨다.
북경에 계신 원불교 교구장님도 오셨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하는 일들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마음공부에 대해서, 중국 부동산에 대해서, 모든 것이 내가 모르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즐거웠다.
이 변호사님은 한국 로펌 소속인데 지금은 중국로펌에서 기회를 찾으려 하고 계신다 했다. 그만큼 시장이 있기 때문이라 하셨다.
한국보다 중국 북경, 상해에 글로벌 기업들이 더 많고, 한국 기업들도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한다. 삼성전자는 철수하고, 일부 중국의 임금 상승으로 원가상승을 못 견디는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로 옮기지 않느냐? 중국에 우리 기업들이 계속 유입이 될까? 하는 질문에는 이제 물갈이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하셨다. 나갈 기업들은 이제 다 나갔고, 지금 중국에 존재하는 기업들은 여기서 뼈를 묻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중국에서 뼈를 묻으려 결심한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 중국에서 대학교를 다닌 나도 중국에서는 살기 싫은데...
와이프 분도 중국에 같이 오셨는데 와이프분 역시 변호사라 하셨다. 그런데, 중국 ㅇㅇ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하셔서 현재 수학 중이라 하셨다. 거 참.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도 주재원으로 오게 될지도 모르는데, 와이프도 박사학위를 진행하면 중국에서 뭐라도 건질?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도 중국어를 아예 못하는 상황에서 HSK 급수를 따고 공부하고 있기에 내 와이프도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 이쁜 도순 오순이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잘 될 수 있을 진 모르겠다.
부동산은,,,2008년에 13억 주고 산 아파트가 지금은 60억 넘었다 하신다... 뭐, 할 말을 잃었다. 월급쟁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 재테크는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필수사항인가 보다.
원불교 교당도 들렀다. 펜트하우스에 교당을 차리셔서 천정이 높아 제법 좌선, 기도를 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교구장님이 중국에 한중 수교하자마자 들어오셔서 지금까지 노력하신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호텔로 복귀했다.
좀 피곤하다고 방에만 있었다면 베이징에서의 견문은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국한되었을 텐데, 나태 악마를 물리쳤기에 좋은 분들하고 인연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하고, 부동산 상황, 중국에 사는 변호사 부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종교상황은 어떤지, 나랑 가족은 나중에 중국에 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해외에서 고객 만나고, 접대하고, 보고서 쓰고, 싸우고, 독창적인 생각을 한다고 고생이 많겠지만, 업무 외적인 것에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우리(해외영업인)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