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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na Jun 29. 2017

#29. 인간아, 왜 사니.

살아가는 데에 이유나 자격이 필요합니까?

어릴 때 드라마를 보면

능력도 없으면서 지 하나 잘되자고 주인공을 배신하고도

꼭 일이 잘 안풀려서 거지꼴로 돌아오는 민폐 캐릭터가 자주 나왔다.


주인공을 열렬히 응원하다 그런 찌질이를 만나면

어린 나이에도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올라, 그치는 병이 나든 사고가 나서 콱 없어지고

착하고 똑똑하고 멋진 주인공이 얼른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는, 내가 이번 생의 주인공임을 의심한 적 없던 그때는,

크면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될 거라고 굳게 믿던 그때는,

밥을 먹었음 밥값을 해야하고, 살아 있으면 당연히 가치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가 작아지는 날마다, 살아 있는 것이 죄스러웠다.

왜 살아있어도 되는지 증명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변명처럼 둘러대었다.

애써 찾아도 둘러댈 거리가 없는 날은 죽지 않고 남은 삶이 구질구질했다.


삶이, 내가 잘나서 부여받은, 성과를 내보라고 넘겨진 평생의 task가 아니라

이 시간 자체가 감사히도 내가 운수대통하여 받은 선물이라고,

삶은 처음부터 나에게 어떤 것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았고,

어떤 삶을 살지 실은 내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 건 훨씬 훨씬 나중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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