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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an 16. 2023

밀린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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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차 간격이 느린 버스를 탔다. 비탈길을 올라 인적 없는 정류장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반기던 비릿한 바다 향. 매미도 울지 않는 곳, 이름 없는 풀, 바람의 이끌림에 따라 조그만 골목을 걸었다. 여름을 고스란히 맞은 횟집, 빨간색 간판의 돈가스 집, 우유 파는 곳, 낡은 중식집... 그들이 그 자리에 있었던 세월만큼이나 오래되고 느린 걸음으로 풍경을 지나쳤다. 당시에는 그저 낡고 빛바랜 간판들이었는데 이제는 종종 내 현재를 건드리며 새로운 모양을 하고 있다.

오가는 말이 적은 카페에서 아이스 커피와 요거트를 먹었다. 노트에 감정을 좀 적고 밖을 쳐다보았다. 질투의 모양을 닮은 해가 떠 있다. 오래전 잽싸게 닦았던 눈물 자국 같은 구름. 인적 없는 곳. 이따금 사람들이 느리게 지나간다. 빨대로 커피를 휘휘 젓고 수저로 요거트를 휙휙 덮으며 더위를 이겼다. 볕은 편안함, 얼음 부딪히는 나른함, 선풍기 돌아가는 고요함, 원두 가는 소리는 행복감, 느린 발걸음은 그리움. 한때 7월이었던 여름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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