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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Dec 18. 2022

도쿄에서의 조용한 도넛


이름도 모르는 역 근처 동네에 들렀다.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날 아침, 호텔 체크아웃을 느지막이 마친 후 아침을 먹을 생각이었다. 이 날은 월요일. 도쿄 직장인들의 출근길 소란 뒤에 나의 차분함이 있었다. 뚜벅뚜벅 부츠를 신고 걸으며 그들의 발걸음에 묻혀 이방인인 나를 생각했다. 그러다 하리츠 도넛 가게에 도착했다. 드르륵 조심스레 문을 열고 쇼케이스 안의 도넛들을 살폈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모습이 꼭 도넛들의 입 모양 같았다. 즐거운 구경이었다.


- 어서 오세요.

- 여기서 먹고 갈 수 있나요?

- 죄송해요. 테이크 아웃만 가능해요.

- 아! 그렇군요. 흠, 근처에 공원이 있을까요?

- 공원은 여기서 조금 걸어야 하는데, 가게 앞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서 드실 수 있어요.

- 아, 네! 감사합니다.


그리곤 크림치즈 도넛 한 개와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다. 점원의 상냥함이 도넛 냄새를 타고 매장 안을 가득 채웠다. 기분 좋게 계산을 마치고 커피와 도넛을 기다렸다.

도넛과 커피를 들고 작은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도넛을 쥐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지난 3박 4일의 시간들이 한데 응축된 맛. 쫄깃한 도우와 부드러운 크림치즈, 겉면에 묻은 설탕을 맞는 월요일 아침. 고요한 골목에서 조용한 도넛을 먹었다. 이런 기특한 시간을 보낼 때면 나는 가끔 불행해지곤 했다. 소박한 행복이 내 곁에 머무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그 시간을 잡아두려 늘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소박하고 기특한 불행을 가득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힘든 순간엔 이런 기억들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동글동글 도넛처럼 한데 뭉쳐 현실에 고군분투하는 내게 큰 위로를 건넨다.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어.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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