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의 당근케이크
한때 당근케이크를 유난히 즐겨 먹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도 먹고 먹구름 짙게 깔린 음울한 날에도 먹고, 그저 그런 기분일 때도 당근케이크를 먹었다. 생각해 보면 딱히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는 날에도 테이블 위에는 부드러운 크림치즈가 꾸덕히 발라진 당근케이크가 있었다. 크기가 큰 것보단 연필심만 한 당근이 씹히는 정도가 좋았고, 호두와 아몬드 등의 견과를 살짝 음미하는 재미가 좋았다.
스물넷 취준생. 자소서를 쓰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빼곡히 밑줄 그어가며 공부했던 시절. 두툼한 책 옆에도 당근케이크가 있었다. 삭막한 알파벳과 글자들에서 시선을 돌려 포크로 한입 두입 떠먹으면 참 든든했다.
아득하고 고된 퇴근길. 카페에 앉아 창밖의 가로등, 지나다니는 사람들, 흐르는 시간처럼 앞으로만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넋 놓고 먹을 때도 있었다. 하루치의 감정을 떠먹는 듯한 다소 무거운 케이크 시트였지만 그 위의 크림치즈는 일상을 그럭저럭 이어나갈 힘을 주었다. 이런 것을 소울푸드라 하는 건가 싶지만 그로부터 몇 년 간 당근케이크를 먹지 않았다.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숭숭한 계절에 자주 먹었던 기억 때문인지, 그때 그 힘들었던 시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랜만에 당근케이크를 주문해 보았다. 그날로부터 몇 걸음 앞서 왔다. 결국 사랑이든 감정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간 앞에선 누가 먼저 할 것도 없이 힘을 잃고 뒤쳐지고 마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