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요일 10.

한때의 당근케이크

by 빵챙

한때 당근케이크를 유난히 즐겨 먹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도 먹고 먹구름 짙게 깔린 음울한 날에도 먹고, 그저 그런 기분일 때도 당근케이크를 먹었다. 생각해 보면 딱히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는 날에도 테이블 위에는 부드러운 크림치즈가 꾸덕히 발라진 당근케이크가 있었다. 크기가 큰 것보단 연필심만 한 당근이 씹히는 정도가 좋았고, 호두와 아몬드 등의 견과를 살짝 음미하는 재미가 좋았다.


스물넷 취준생. 자소서를 쓰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빼곡히 밑줄 그어가며 공부했던 시절. 두툼한 책 옆에도 당근케이크가 있었다. 삭막한 알파벳과 글자들에서 시선을 돌려 포크로 한입 두입 떠먹으면 참 든든했다.

아득하고 고된 퇴근길. 카페에 앉아 창밖의 가로등, 지나다니는 사람들, 흐르는 시간처럼 앞으로만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넋 놓고 먹을 때도 있었다. 하루치의 감정을 떠먹는 듯한 다소 무거운 케이크 시트였지만 그 위의 크림치즈는 일상을 그럭저럭 이어나갈 힘을 주었다. 이런 것을 소울푸드라 하는 건가 싶지만 그로부터 몇 년 간 당근케이크를 먹지 않았다.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숭숭한 계절에 자주 먹었던 기억 때문인지, 그때 그 힘들었던 시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랜만에 당근케이크를 주문해 보았다. 그날로부터 몇 걸음 앞서 왔다. 결국 사랑이든 감정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간 앞에선 누가 먼저 할 것도 없이 힘을 잃고 뒤쳐지고 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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