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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May 12. 2022

한껏 상냥한 맛

버터쿠키

조금 상냥해지고 싶을 때, 버터쿠키를 찾게 된다. 길모퉁이에서 만난 담벼락 아래 어딘가에 하나쯤은 피어 있을 것만 같은 회오리 모양의 꽃. 자세히 보면 장미를 닮은 버터쿠키.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운처럼 자기 몸에 선명한 줄무늬를 새기고 얌전한 미소를 띠는 듯한 모습은 평범해 보여도 일상을 살아가다 한 번쯤 문득 떠올리게 되는 아련하고 반가운 얼굴 같다.      


점심시간에 가볍게 끼니를 때우려 사무실 근처 제과점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먹음직스러운 참치 샌드위치를 손에   꽃밭 구경하듯 삼삼히 주변 진열대에 있는 빵과 과자들을 눈에 담았다.  틈으로 보이던 버터쿠키. ‘어디서나 보는 쿠키지.’ 했지만 어느새  손엔  봉지의 버터쿠키가 들려 있었다.      

겉보기엔 귀여워 보여도 한 입 베어 물고 나면 소중한 사랑의 씨앗이 움트는 것처럼 부드럽고 성숙한 맛이 딸려온다. 서로의 손을 맞대어 포갤 때, 소리 없는 진득한 포옹, 여름밤 길을 걷다 마주친 그윽한 눈빛. 버터쿠키를 먹을 땐 그런 자상한 과거들이 떠오른다.


예상처럼 진한 풍미를 자랑하는 버터지만 그 뒤로 은은한 감동이 올라온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진득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단풍과 은행처럼 깊고 진하다. 어느 시간, 어느 때에 맛보아도 안심되는 맛. 변하지 않는 사랑 같은 맛, 먼 미래에도 애틋할 맛. 끝없는 질문과 의구심에 귀찮게 해도 묵묵히 내 옆에 있어주는 맛. 오독오독 천천히 씹어먹고 있으면 여름 끝 무렵 불어오는 서늘한 가을바람을 맞을 때처럼 한없이 상냥해지고 느슨해진다.    

  

업무 중에 사 온 쿠키를 먹었다. 크기는 화장품 콤팩트보다 조금 작다. 언젠가 이 맛을 꼭 기억해 두었다 함께 나눠 먹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상냥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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