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티를 마시며
밀크티의 시간엔 기억하고 싶은 목소리가 담겨 있다.
어떤 욕망, 어떤 대화, 어떤 잠꼬대 같은 무거운 감정만을 일으키는 순간들이 잔뜩 뒤섞여 있다.
살갗처럼 부드러운 밀크티의 호흡을 받아들인다. 입술을 거쳐 식도를 타고, 그렇게 서로의 영원한 무의식에 서서히 침투한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엔 새벽녘의 이슬 같은 조용한 망설임이 가라앉아 있다.
언젠가 떠올리려 했지만 끝내 떠올리지 못한 기억 같은 것들. 빨대로 휘휘 젓는다.
점점 더 농후해지는 살색.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오랜만에 테라스가 있는 좌석에 앉았다. 볕과 바람이 짝을 지어 자유롭게 다니는 계절이다.
차가운 밀크티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셔 본다. 저으면 저을수록 단 맛이 훅 밀려온다. 가만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맛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했다. 적당한 그리움으로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 기분이 싫지 않다. 살아감에 있어 이런 1인분의 그리움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다. 마음 약해질 때도 행복에 겨울 때도 듬성듬성 담긴 1인분의 그리움을 천천히, 초침의 움직임을 따라 조금씩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움이란 감정은 사랑만큼이나 알 길 없는 것.
어떤 날엔 1인분이 아닌 10인분을 먹어 치워도 기분 좋게 배부른가 하면, 또 어느 날엔 한 숟갈 떠먹기 힘든 때가 있다.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꼭 그리움에 체한 것 같다.
하루하루 정해진 양의 그리워할 시간이 주어진 다면, 좀 더 정돈된 마음으로 살아갈 듯하다.
오늘 마신 밀크티 한 잔 정도의 그리움이면 아쉬울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