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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 소설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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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연 Oct 20. 2024

산책자들

섬, 소설

       

  나는 작은 백팩을 매고 당신에게 가는 중이다. 바퀴달린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손님이 거의 없고 소파가 푹신해 보이는 공항의 구석진 카페로 들어간다. 크로와상은 푸석푸석하고 커피는 맛이 없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조용한 장소가 필요하다. 육 년 만에 서울에 간다는 것, 그리고 육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비행이 겨우 한 시간 남짓 걸린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초조하다. 붉은 앞치마를 입은 카페의 여직원이 빗자루로 빵가루를 쓸기 위해 의자를 끌기 시작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는다. 철과 콘크리트가 마찰하는 소리.   

  “시끄러워 제기랄 아 더러운 것들.” 큰소리로 그 말을 내뱉은 것은 구석진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이다. 내 자리에선 여자의 뒷모습만이 보이는데, 병아리 색 코트를 입고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고 있다. 머리끈에는 빨간 플라스틱 체리가 달려 있다. 여자의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은 정상인의 범주에 벗어나 있는데, 나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여자는 앞사람에게 말하듯 정면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욕설과 상스러운 말을 뱉는다. 직원은 청소를 중단하지만 여자에게 용서를 구하진 않는다. 카페 안의 또 다른 손님인 중년 남자도 여자를 힐끗 보더니 다시 경제 잡지를 읽는 척 한다.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눈치 채고 있다. 여자의 정신이 심연의 어느 틈새에 박혀 있다는 것을, 여자의 정신이 속한 장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여자의 표면에 살짝 드러난 어둠마저도 현실의 빛에 닿아 희석되지 않고 타르처럼 검고 진득한 말이 되어 내 팔뚝의 살갗에 흘러내린다. 

  나는 이 장면을 이미 보았다고 느낀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한 꿈에서. ‘제발’ 나는 생각한다. ‘제발 뒤를 돌아보지 말아요.’ 타인을 위해 표정을 짓는 법을 잊은 얼굴은 어떤 얼굴도 될 수 있다. 여자의 얼굴은 거대한 괘종시계일 지도 모른다. 분침과 시침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어릴 때부터 나는 괘종시계를 무서워했다. 괘종시계는 자정까지 깨어있는 아이들을 남김없이 꿈으로 몰아넣는 파수꾼이며, 시간의 관이니까. 아니면 여자는 s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화제 속에 종종 등장하는, 당신 학원에서 일하는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을 가진 외로운 노처녀 말이다. 아니다. 여자가 뒤를 돌아본다면, 그 얼굴은 내 죽은 얼굴일지도 모른다. 나는 커피를 반 이상 남긴 채로 서둘러 일어선다. 내 의자 밑에는 빵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다.

  ‘한번 입장하면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라고 쓰인 장소로 나는 들어간다. 평소의 나는 그 문장이 의미심장하고 약간은 위협적이라고 느꼈지만, 그 순간 나는 문장의 단호함에 의지하고 싶다. 줄을 서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다시 줄을 서고, 수하물이 엑스레이를 통과하고,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내 신체의 주위를 곤봉으로 휘젓는 일련의 과정들이 날 안심시킨다. 카페에서 본 여자처럼 수상한 사람은 이 과정에서 색출될 것이다. 애초에 공항에 있을 이유도 없는 여자다. 처음부터 어디에도 머물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대합실의 통유리 너머로 비행기들의 뭉툭한 코가 보였고, 멀리서 푸른색 비행기가 활주로를 서서히 거닐고 있다. 통유리는 어째서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을 모두 풍경으로 만드는 걸까, 생각하다가 아마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생겼기 때문에, 투명하고 단단한 막이 두 공간을 가로막기 때문에...       

  당신에게 나는 풍경에 속한 사람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나는 쑥색 개량한복을 입고 땋은 머리에는 댕기를 매고 있었다. 나는 전통 찻집의 직원이고, 손님들에게 다도를 가르치고 차를 따르는 일을 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으로, 통유리 밖에는 대나무 수로를 통해 물이 연못으로 졸졸졸 떨어졌고, 연못을 둘러싼 야트막한 돌담 너머로 억새밭이 펼쳐졌다. “연희 씨가 들어왔을 때 나는 연희 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지요.”라고 당신은 빙긋 웃으며 회고한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찻잎이 담긴 다기를 소중히 옮기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군요.”라고 중얼거렸다고. 그 말에 내가 얼굴을 붉히며 방석 위로 엉덩방아를 찧지 않았냐고. 당신이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늘 웃기만 했지만, 사실 그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내가 차실로 들어왔을 때 당신은 창 너머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억새에 숨어있던 저어새들이 하늘로 빨려 들어가듯 날아올랐고, 당신은 “아름답군요.”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내가 이 주 째인 수습 직원이어서 뭐든 서툴고, 한복의 치맛자락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쑥색 한복을 입고 엉덩방아를 찧고선 얼굴이 붉어진 여자로서 서른다섯 해를 살아왔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당신이 나를 알아차리기 전에는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나는 당혹감을 감추고 다도 교육을 시작한다. “이 주전자는 다관입니다. 옆에 있는 그릇은 숙우입니다. 물식힘 잔이라고도 합니다. 이 자리에 앉아 차를 끓이는 주인을 팽주, 대접받는 쪽은 팽객입니다. 끓일 팽 자를 씁니다” 당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린 것은, 내가 숙우에 뜨거운 물을 붓고 “물 식히는 시간 동안 잠시 침묵과 고요를 즐기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두 눈을 감았을 때이다. 내가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유발된 당신의 웃음은, 몇 분 동안 참고 참다가, 또 그 참음을 의식하며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침묵과 고요’라는 단어가 주는 빈 방에 놓인 방석 같은 안정감과,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내 경망스런 동작이 주는 격차에서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터져 나온다. 나 역시 그 웃음에 전염되어, 그 다음부터 다도 수업은 그저 쿡쿡거림과 빨개진 얼굴, 웃음을 참으려는 노력이 전부이다. 다음 날 당신은 다시 왔다.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를 마시고 싶다고 하고, 나는 모시풀차를 내온다. 여름의 숲처럼 싱그럽고 짙은 맛의 차이다. 당신은 외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학원을 운영하고, 한 달 동안 휴가를 가지려고 섬에 왔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당신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나는 집에서 바다로 가는 이키로 남짓한 길이라고 대답한다. “산책은 이른 아침에 하는 게 좋아요.” 나는 조금 들떠서-당신이 온 것이 기쁘다- 말한다. 해가 아직 하늘이 아닌 땅에 속해 있는, 그래서 땅에 자리 잡은 것들도 신성함을 나눠 갖는 시간. 간밤의 어둠에서 빠져나오며 생긴 허물을 긴 그림자로 끌고 있는 나무들. 오렌지 빛의 투명한 공기 속에서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 산책길은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높낮이와 커브가 있고,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식생이 변한다. 삼나무 사이로 언뜻 언뜻 바다가 보이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면, 무꽃과 배추꽃으로 가득한 들판이 나타나고, 그 다음엔 대나무 숲을 지나친다. 바다 가까이에는 길고 가느다란 야자수들이 서 있는데, 그 아래는 지붕이 없는 폐가가 담쟁이에 감겨있다. 그 길을 함께 걸어도 되냐고 당신은 묻는다. 나는 그 길이 실은 섬의 여느 길과 다를 것이 없는, 그냥 내가 매일 산책하는 길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그 길을 걷고 싶은 겁니다.”라고 당신이 말했을 때, 나는 여름의 하오처럼 환해진다. 

  며칠 후 아침 일곱 시 십오 분, 나의 집 앞에 있다. 외제차의 운전석에서 빠져나온 당신은, 청바지에 검은 잠바 차림이다. 길을 걸으며 나는 식물과 새에 대해서만 말한다. 배추꽃은 유채꽃만큼이나 보기 좋은데, 왜 관광객들이 천 원씩 입장료를 내고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다고, 사실 관광객들은 둘을 구분하지도 못한다고, 실제로 배추꽃을 보고 유채꽃이라며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을 본 적도 있다고. 그리고 무꽃. 나는 당신에게 그 연보라색의 청초한 꽃을 가리키며 저게 무의 꽃이라고, 그렇게 투박한 뿌리를 갖고 있는 게 믿겨지냐고 묻는다. 보리밥나무, 소철, 로즈마리, 털머위, 개구리발톱, 장딸기꽃... 어떻게 이름을 모두 아냐고 당신은 묻고, 나는 “이 섬을 좋아하니까요.”라고 웃는다.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쳐 다각거리는 소리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바람이 없네요.”하고 나는 말한다. 그러다 다그닥다그닥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당신이 대나무 두 그루를 부딪치고 있다. 귤밭에서 들개 두 마리가 나타났을 때 당신은 긴장한다. 내가 섬의 개들은 귤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당신은 믿지 않는다. 나는 귤나무에 매달려 있는, 썩기 직전의 쪼글쪼글한 귤을 까서 개들에게 던져 주고, 개들은 펄쩍 뛰어서 귤을 받아먹는다. “그 날의 산책 이후로 나는 삶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지요.”라고 나중에 당신은 말했다.  

  일 년 후 당신은 내게 청혼을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다실에서, 당신과 나는 모시풀차를 마시고 있다. 사계절을 겪어보고 결혼을 결심하란 말이 있지요, 하고 당신은 조금 진부한 방식으로 말을 꺼낸다. “그것이 단순히 일 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미묘하게 다른 성격을 보여줍니다. 도시의 계절은 온도가 낮아지거나 높아지는 것, 가로수로 심어둔 벚꽃이 만개하거나 은행잎이 노랗게 변하는 것 정도가 전부지요. 도시인들의 삭막하고 냉혹한 성격은 계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섬의 사계는 풍부하고 깊이가 있어요. 그리고 연희 씨는 그 깊이에 감응할 줄 압니다. 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연희 씨가 전부 좋습니다.” 

  풍경 앞에서 하이쿠를 읊는 일본인처럼, 당신은 자신이 하는 말에 조금 취해 있다. 당신은- 당신은 통유리 너머로 내다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나는, 당신이 들고 있는 흑유 찻주전자의 손잡이고, 구석에서 태우는 인센스 스틱의 매화향이고, 연못에서 긴 꼬리를 흔드는 주황색 금붕어이다. 언젠가 당신은 내 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미니멀리스트의 방이라고, 이 방에서 사치스러운 것은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풍경뿐이라고. 창밖으로는 워싱턴 야자수의 가장 높은 잎사귀들이 갈퀴처럼 바람을 긁어모으고, 멀리 들판과 숲, 바다가 보인다. “가까운 바다보다 먼 바다가 좋아요.” 이 킬로 남짓한 길을 걷는 동안 바다를 예감한다고, 그래서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더 큰 기쁨을 느낀다고 나는 말한다. “우리 사이의 거리 때문에 관계가 좋은 걸 수도 있겠군요.”라고 당신은 단정한다. 나를 만나기 위해 매달 바다를 건너서 섬으로 오는 나의 연인. 우리는 낮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 호지차를 마시는 중이다. 당신은 가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고, 내 손을 어루만진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살갗을 마주하고 있을 때조차도 당신은 늘 유리 너머로 나를 감상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거리감을 기꺼워한다는 것을. 통유리 너머 당신의 시선으로 나를 관조하며 어쩌면 당신보다 내가 더 큰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당신은 방구석에 있는 라탄 바구니에 담긴 커다란 피리를 가리키며, 저 악기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그건 인디언 플루트예요. 네이티브 아메리칸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지요.” 당신은 한곡만 불어달라고 요청하고, 나는 서너 번 거절하다가 스카보로 페어를 연주한다. 내 연주는 서툴지만 낮고 멀리 울리는 피리소리는 그 자체로 듣기에 좋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당신이 내 방에 오기 한 달 전부터 하루에 두어 시간씩 피리연습을 했다든가, 장롱에 있던 피리를 바구니로 옮겨 두었다든가, 당신과 처음으로 산책을 하기 전날 사진을 찍으면 식물의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로 산책길의 모든 식물들의 이름을 알아두었다는 것을.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찻집에서 다도를 가르친 것이 이주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 전에 일했던 리조트에서 내 등을 어루만지는 과장에게 항의를 했다가 해고당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내 인디언 친구에 대해 말한다. “그에게는 다섯 개의 이름이 있고, 더 많을 수도 있는데, 나는 ‘난다말라’라는 이름으로 불러요. 오년 전 명상센터에서 난다말라를 처음 만났어요. 그 명상센터는 논밭과 돼지 농장밖에 없는 전라도의 시골마을에 자리잡고 있어요. 아는 사람이 당시 제가 앓고 있는 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추천해줘서 가게 된 거죠. 오십 여명의 코스 참가자는 열흘 동안 새벽 네 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명상을 해야 하죠. 모두 독방에서 지내며 아침과 점심만 먹죠. 휴대전화와 책, 노트를 소지할 수도 없어요. 가장 힘든 것은 침묵의 계율을 지키는 거예요. 우리는 서로 눈짓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지만 대화를 나눌 순 없었어요. 그곳엔 대여섯 명의 외국인들이 있었지만 난다말라는 처음부터 눈에 띄었죠. 허리까지 내려오는 한 줄로 땋은 난다말라의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흘렀어요. 광대가 튀어나오고 눈이 찢어진 얼굴은 몽골인을 연상케 했지만, 서구화된 인디언답게 키가 크고 골격이 넓었죠. 마침내 열흘이 지나고 침묵의 계율이 풀렸을 때, 참가자들은 모두 서로에게 축하를 건넸어요. 그때 저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거리의 소음 속에서도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것처럼, 난다말라의 목소리는 특별했어요. 그의 목소리는 너무 아름다워서, 성대가 아니라 더 깊숙한 곳, 영혼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어요. 난다말라와 나는 코스가 끝난 후에도 일주일 동안 남아 꽃밭을 가꾸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가 인디언 피리를 불어줬을 때, 나는 이 피리소리는 너의 목소리와 흡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깊은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다고. 누이여, 그런 동굴은 조심해야 합니다, 라고 난다말라는 말했습니다. 라오스에서 한 서양인 젊은이가 그런 동굴에 혼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그대로 굶어 죽은 적이 있는데, 몇 년 후 그 서양인 젊은이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들은 동굴 탐험을 하던 난다말라와 그의 일행이었다고 했습니다. 헤어질 때 난다말라는 붉은 천에 감싸인 피리를 선물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잃더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나를 동굴 밖으로 이끌 것이라며. 명상센터에서 돌아오고 며칠 후, 유튜브를 보며 피리를 연습하다가 섬으로 이주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어쩌면 그 인디언이 내 은인일지도 모르겠군요.”라고 당신은 말한다. “연희 씨가 명상센터에 간 것도, 인디언을 만나 피리를 받은 것도, 섬으로 오게 된 것도 어쩌면 우리가 만날 운명이어서가 아니었을까요.” 

  “그럴 지도요.”하고 나는 미소 짓는다. 그때 내가 신경과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 종종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든가, 대학 때부터 만난 남자친구에게 도무지 너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별을 통보받은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나는 모호하고 막연하게 말했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원칙을 정했어요. 지금의 나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보자, 두 가지 선택지가 나오면 언제나 내가 하지 못할 쪽을 선택하자, 라고요. 지금도 이 원칙은 유효해요.” 

  “연희 씨는 스스로가 얼마나 용감하고 자유로운지 모를 겁니다.”라고 당신은 선언한다. 그리고 당신이 갖고 있는 내 또래의 한국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말한다. 당신의 학원에서 일하는 강사들은 대부분이 삼십 대 여성이며, 자신의 학벌이나 영어실력에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루이비똥이나 구찌 가방을 들고, 한 명을 배척하기 위해 무리를 짓고, 원장인 자신의 눈에 들기 위해 서로를 깎아내리며, 어쩔 때는 자신의 성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계속 일을 해온 독신 여성과 결혼 후 육아를 하다 복직한 여성 사이에는 알력 싸움이 있는데, 당신이 생각하기엔 지극히 사소한 이런 문제 때문에 유능한 강사가 어학원을 그만둘 때도 있다. 그리고 학부모들. 아이를 명문대학에 보는 것과 부동산, 재테크를 가장 큰 관심사로 두는 엄마들. “연희 씨는 그런 여자들과 달라서 좋아요.”라고 당신은 덧붙인다. 화장을 하지 않고, 브랜드 상품에 관심이 없으며, 인디언 피리를 불고, 유채꽃과 배추꽃을 구분할 수 있는 여인.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신비로운 섬의 여인은 누구냐고 친구들이 물으면, 당신은 나를 그렇게 소개한다고 했다. 

  그러나 물건이 적은 것은 자주 이사를 다니기 때문이고, 화장을 하지 않은 건 피부가 예민해서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뾰루지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찻집에서 일해서 받는 돈으로 브랜드 상품을 사긴 힘들다. 그리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나 또한 영어학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사 년 동안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고, 결국 실패했으며, 영어학원에서 일하며 수험을 병행한 시기도 있다. 나는 학원에서 다른 강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예전 지인들과 연락을 끊었다. 당시 나는 흰 벽으로 이루어진 미로를 통과하는 중이었고, 모든 관계는 덫과 같았다. 흰 벽을 지나가기 위해 나 또한 흰 벽이 되었다.  

  당신이 학원 강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s에 대해 말하는 것을 나는 즐겨 들었다. 사십대 중반의 s는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땅딸막한 여자로, 암막 커튼처럼 앞머리를 길게 내렸고, 눈빛을 알 수 없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다. 교무실에서는 다른 강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일거리가 없을 때는 혼자 이어폰을 끼고 미국드라마를 보며 키득거린다. 드 라마에 무척 몰입해서 “오, 챈들러, 포기하지 마.”하고 영어로 중얼거릴 때도 있다. 그 미드는 이십년 전에 유행이 지난 것인데, s는 매일 그 미드를 본다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볼 것이라고 다른 강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s는 이상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시선에 무감각해서, 노메이크업에 브랜드 가방도 들지 않고, 스파 매장에서 구매한 촌스러운 감색 블라우스와 베이지색의 긴 치마만을 입는다. 당신이 그녀를 해고하지 않는 것은 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완벽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며, 지난 육년 간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어학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 강사이기에, 만약 그녀가 해고된다면 다른 강사들도 자신들이 나이를 먹으면 해고될 것이라 믿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내가 s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당신은 말한다.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한 남자 중학생을 편애한다는 것이지요.”하고 당신이 한숨을 쉰다. 둘이 맥도날드에서 따로 만나 영어 회화 연습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s가 총애하는 중학생은 여드름투성이의 남자애로, s는 햄버거 세트를 두 개씩 시켜주고 자신은 입도 대지 않은 채 소년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고 한다. 그 소년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다가 무엇을 시키든 “이걸 왜 해야 하나요?”하고 대들어서 다른 강사들에게 심술궂고 머리가 나쁘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작적으로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틱 장애가 있어서 혼낼 수도 없다. 당신은 부원장을 통해 학원생과 개인적으로 만나지 말 것을, 아니면 해고의 가능성이 있다고 s에게 암시한다. 부원장은 삼십대 후반의 매력적인 남자이고, 당신은 곤란한 일은 모두 그를 통해 해결한다. 그러자 s는 당신에게 긴 문자를 여러 번에 걸쳐 보낸다. s는 자신의 남자 중학생을 ‘그 천사 같은 아이’라고 부르며, ‘천성적인 우아함, 당신들이 틱이라고 부르는 새의 날갯짓 같은 경쾌한 몸짓’을 길게 묘사한다. A4용지 두 장 가량의 그 문자는 소년을 찬양하는 미문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항변이나 변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오직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기록하려는, 새소리를 녹음해서 반복해서 듣거나 나비를 핀에 꽂아 액자에 넣고 몇 시간씩 바라보는 식의 강박적인 즐거움이 담겨 있다. 문자의 말미에서야 s는 부원장이 자신에게 품은 부적절한 감정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는 걸 원장님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쓴다. 

  그 후로 s는 수시로 당신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자신이 영어강사와 같은 시시한 일을 하는 것은 단지 생계를 위한 것이고, 시를 쓰는 것이 진짜 직업이라고 한다. 당신은 그녀가 등단이나 공모전 같은 공식적인 검증 없이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기고 있는 점을 의아하게 여긴다. “어쩌면 그녀는 에밀리 디킨슨 같은 숨겨진 시인일지도 모르지요.”라고 나는 웃는다. 당신은 s가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오판했듯이, 자신의 시적 재능도 제대로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또한 어느 날 강사들의 주소록을 보다가 그녀가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걸 알았다고, 그 나이의 여자가 혼자 고시원에 사는 게 의아하다는 말도 한다. 

  당신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 역시 오랫동안 고시원에 살았다. 산책길에 있는 담쟁이덩굴에 감긴 폐가는, 나의 정신이 한 때 황폐한 장소에 머물렀음을 일깨운다. 난다말라와 함께 그 폐가 근처를 지나며 내가 살았던 고시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내 방에는 창문이 있긴 했지만 보이는 것은 옆 건물의 벽과 에어컨 실외기 뿐이었고, 그곳의 복도는 희고 얇은 벽들로 벌집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꼭 미로 같다고. 사람들은 뒤통수로만 존재하다 복도의 어느 모퉁이에서 사라지곤 했고, 나는 복도에서 자꾸 길을 잃어버렸다. 흰 복도에는 늘 김치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고시원의 부엌 겸 휴게실에서 밥과 중국산 김치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모든 끼니를 김치찌개와 김치 부침개, 김치볶음으로 해결했다. 밥을 먹을 때는 부엌의 테이블에 놓인 냄비 받침대로 쓰이는 낡은 여행 가이드북을 훑어보았다. 제목은 <환상의 섬 여행하기>였다. 당시로부터 출판된 지 이십 년이 지난 그 가이드북은 흑백의 페이지들 사이에 빳빳하게 코팅된 페이지가 한 장씩 있어 총천연색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들은 구도나 색감으로 볼 때 전문 사진가의 솜씨가 아니었는데, 초점이 맞지 않거나 관광객의 얼굴이 절반으로 잘려 있는 등 무성의하기까지 했다. 관광객들은 유행이 지난 선글라스를 끼거나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해안 폭포나 용암 동굴, 동백 군락지 앞에서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네 번째로 임용 시험에 떨어지고 얼마 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이드북의 모든 사진-총 오십 한 장-에 똑같은 중년 여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뒷모습으로만 등장하는데, 매번 다른 옷을 입고 헤어스타일도 묶거나 땋는 등 자주 바뀌었지만,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어깨 때문에 같은 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여자는 고시원의 어느 방에서 소름끼치게 들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복도 모퉁이를 돌며 사라지곤 했다. 이 이야기를 하자 안경을 낀 젊은 남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복용하는 신경과 약을 바꿔보자고 권유했다. <환상의 섬 여행하기>는 내가 다섯 번째로 임용고시에 떨어진 날 고시원에서 사라졌다. 가이드북이 없어지고 그곳에 머문 마지막 반 년 동안 나는 일을 하지도 공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방 안에서 내가 뭘 하며 지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말을 듣고 난다말라는 볼펜으로 내 이름을 자신의 손바닥에 썼다. “이제 나는 누이의 이름을 손에 쥐고 순례를 떠날 것입니다. 추위와 굶주림은 당연한 일이며 들개와 적들이 여정을 방해할 것입니다. 나무 밑에서 자는 일이 허다할 것이며 나의 외투는 밤이슬에 젖어 축축할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마세요. 그대는 이 커다랗고 단단한 손바닥 안에서 보호받을 것입니다. 지금의 그대 뿐 아니라 과거의 그대도 데리고 갈 것인데, 가장 고귀한 순례길에는 그 하얀 무덤 같은 방에 갇혀 있었다는 그대가 동행할 것입니다. 그러니 누이여, 그대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때 누이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허튼소리였지만, 나는 잠시 울었다.  


  나는 비행기로 연결된 통로를 걷고, 오직 내보이기 위해 표정을 짓는 승무원들을 지나쳐 B 45번 자리에 앉는다. 비행기 창문 바로 옆이다. 오후 다섯 시. 비행기 바퀴가 땅에서 떠오르는 순간, 나는 언젠가 당신과 산책을 하다 꿩을 만난 것을 기억한다. 당신은 꿩은 날아갈 때 푸드득거리는 소리며 몸짓이 요란해서, 다른 새들의 자연스러운 비행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꿩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순간도 ‘만삭의 임산부가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어딘지 애를 쓰는 느낌이라고. 나는 어릴 때 날아가는 꿈을 꾸곤 했다고 말한다. 꿈속에서 나는 날기 위해서는 부단히 걸어야 한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지만, 나는 태연한 척 걷는다. 그렇게 걷다보면 어느 한 걸음이 오 센티 정도 바닥에서 떠오르고, 그 다음 걸음은 십 센티... 그 과정은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처럼 느릿하고 고단하다. 서른 걸음이 지난 후에는 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지만, 나는 다른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꿈속 비행에서 나는 점점 높이 올라가지만 마음대로 내려갈 수는 없다.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방법은 한 가지, 추락뿐이다. 땅에 닿는 순간 둔탁하고 생생한 타격감을 느끼며 내 두 무릎이 꺾이고 몸은 바닥에 뒹굴고, 나는 추락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난다. 

  당신은 내게 좋은 잠자리를 선물해주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푹신한 잠자리를 원하는 건, 꿈의 세계에서 무사히 현실로 착지하기 위한 완충장치가 필요해서지요.” 며칠 후 정말로 두툼한 라텍스 매트리스가 내 방으로 배달된다. 당신은 내게 많은 걸 선물했다. 향수와 화장품, 전자기기, 브랜드 가방. 파리에서 온 그 가방은,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내 월급보다 비쌌다. “당신이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없는 건 알지만, 내 허영심이 당신에게 이런 물건들을 선물하게 합니다.”라고 당신이 말한다. 당신의 선물들은, 독일동화에 나오는 오누이가 숲속에 흘린 빵처럼 나를 어딘가로 돌아오게 만드는 이정표이다. 그 동화는 한때 고독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고 숲속으로 들어간 여자가, 돌아올 길을 영영 잃어버린 이야기가 아닌가. 반짝이는 사탕 집을 짓고 혈육도 아닌 아이들을 기다리는 외롭고 추한 늙은 여인. 그 여인의 마지막을 알고 있나. 당신은 결국 s를 해고했다.   

  “연희 씨처럼 행복한 사람도 드물 거예요. 그게 좋아요.”라고 당신은 종종 말했다. 내가 섬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행복을 증명받기 위해 나는 나의 행복감을 사랑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은 도시에서 온 사람이어야 한다. 어느덧 도시는 나에게 멀고 아득한 곳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나는 내가 하지 못할 법한 일을 하고 있다. 도시로 가는 것. 당신의 청혼에 대한 대답을 손바닥에 쥐고서. 


  내 발바닥이 구름보다 높아졌을 때, 나는 작은 비행창 너머로 혹시 난다말라가 있는지 살펴본다. 언젠가 난다말라는 자신이 어릴 적 날아다니곤 했다고 고백했다. 나는 웃으며 너는 날 때 수영을 하듯 두 팔과 다리를 휘젓는가, 아니면 바르게 선 채로 움직이는가 하고 물었다. 그런데 난다말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을 나는 사람에게 자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태아가 어머니의 몸속에서 취하는 자세가 제각기 다르듯이, 라고 그는 덧붙였다. “누이여, 나는 미친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세상과 완전히 연결된 인간만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태아들은 기이한 추락으로 세상에 닿을 때까지, 어두운 하늘을 날아오는 중인 것입니다.”

  난다말라는 아시아를 여행하며 틈틈이 내게 이메일로 소식을 전했다. 그는 오키나와에서 평화 시위에 참여했고, 캄보디아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미얀마에선 잠시 스님이 되었다. 당신은 난다말라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마치 그가 당신의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언젠가 섬에 오면 함께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그러겠노라고 말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년 전 다툰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난다말라와 만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긴 메일을 보내지만 나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그는 종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순례는 종말을 저지하기 위한 발걸음이며, 그가 아시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곳곳의 땅에 축복을 내려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백인은 모두 악마이며, 그렇기에 자신은 미국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란 말도 했다. 나는 난다말라의 정신상태를 걱정했지만 그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가 충청도를 여행하다가 감기 몸살에 걸렸을 때, 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아는 스님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난다말라가 템플 스테이를 하던 서양인 노부인을 악마라고 욕할 줄은, 품속에서 칼을 꺼내는 시늉을 해서 노부인이 돌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생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서양인 노부인은 전치 이 주를 진단받았고 난다말라는 구치소에서 며칠을 보냈다. 이런 얘기를 나는 당신에게 하지 않았다. 난다말라가 할렘 가에서 자란 것도, 알콜중독인 인디언 아버지에게 혁대로 맞은 날이면 하늘을 나는 망상에 빠져들곤 했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외국인 부랑자가 아닌 순례하는 인디언을 친구로 둔 사람이고 싶었다.  

  난기류로 비행기가 흔들릴 것을 예고하는 방송이 나왔을 때, 나는 휴대전화로 난다말라의 메일 중 하나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읽지는 않으면서 그의 메일을 모두 저장해 놓았던 것이다. ‘누이여, 나는 서울의 혼란 속에서 완전히 탈진해버렸습니다. 한국에 왔지만 더는 누이를 찾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나는 약간의 식물이 있는 한 공원에서 가부좌를 틀고 오랫동안 명상을 했습니다. 날벌레가 콧구멍에 들러붙었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눈을 떴을 때 한 작고 상냥한 여인이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녀는 희미한 아일랜드 악센트가 있는 미국식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며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집이 언젠가 누이가 말한 고시원이란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희고 얇은 벽으로 나누어진 벌집 같은 구조... 그녀의 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옆 건물의 벽 뿐이었습니다. 침대는 관처럼 좁았고 침대 위에는 옛날에 유행했던 미국 드라마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나는 한국인보다 미국인에게 더 친밀감을 느낀답니다.”하고 그녀는 미소 지었습니다. 책상 옆에는 갈색 스프링 노트들이 쌓여 있었는데, 내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는 그게 자신이 쓴 시라고,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한글을 읽지 못하지만 혹시 그 시들을 보아도 되냐고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그녀의 스프링 노트 중에 하나를 골라 찬찬히 쓰다듬다가, 가장 마음을 끄는 장을 펼쳤습니다. 나는 그녀가 훌륭한 시인이며, 이것은 내가 읽어본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한국어를 모르잖아요.” 내가 “이것은 새에 대한 시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새에 대한 시죠. 하지만 새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아요.” 나는 이 노트를 만질 때 새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고 설명했습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하얗게 빛나는 길이 있고, 그 길을 가로지르는 연두색 새가 보인다고. 새는 자신의 날개로 나는 게 아니라 나무와 바람의 의지에 순응하고 있다고. 그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와 같다고. “당신은 실은 한국어를 아는 게 아닌가요?” 나는 내가 아는 한국어는 내 이름 밖에 없다고, ‘난다말라’라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노트에 썼습니다. 그녀는 ‘난다’는 fly이고 ‘말라’는 don’t라며, 순서를 바꾸면 날지 말라는 뜻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날지 말라. don’t fly. 나는 그 시인의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나는 아직 날아갈 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메일은 난다말라의 망상으로 이어지고, 나는 더는 읽지 않는다. 창밖의 구름은 주황빛을 띠기 시작하고,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는 놀이기구처럼 덜컹거린다. 고도는 22000피트, 시속 820킬로, 김포까지 남은 비행시간은 26분. 당신에게 들고 가던 대답이 어느 순간 바뀌었음을 나는 안다.      

<끝>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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