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소설
카페 사장이 영화를 함께 만들자고 했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 삼십 분짜리 짧은 영화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릴 거라고 말했다. 이걸 시작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 거예요. 한국 최초로 아마추어들의 유튜브 영화를 만드는 겁니다. 카페 사장은 들뜬 얼굴로 말했다. 내가 저는 연기를 못하는데요, 하니까 그냥 나 자신을 보여주면 된다고 했다. 열 명은 모일 거라고 했는데 막상 영화모임이 시작되자 온 사람은 네 명뿐이었다. 사장과 나, 준구와 미숙 씨. 준구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서른여덟이고 곰탕집 주방에서 일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바그다드 카페의 손님이었는데, 광대가 튀어나온 뺨과 쌍꺼풀 없는 눈이 매력적이라고 사장에게 출연 제의를 받았다. 미숙 씨는 육십 대 후반이고 염색하지 않는 흰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는데 말투가 차분하고 목소리가 좋았다. 젊을 때 연극배우였고 지금은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한다고 했다. 카페 손님은 아니고 바그다드 카페가 있는 해변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도시에 살았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모인 준구나 나와 달리 미숙 씨는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카페 사장을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영화모임 첫날엔 감독이 메일로 보낸 시나리오를 읽고 바그다드 카페에서 회의를 했다. 감독 부인이 만든 팥양갱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시나리오의 배경은 바닷가 근처의 소도시. 은둔형 외톨이인 서른 여덞의 남자와 그의 어머니는 파란 지붕의 단층집에서 산다. 어머니는 남는 방으로 에어비앤비를 하는데, 남자의 어릴 적 첫사랑이었던 여자가 손님으로 찾아온다. 그 여자는 어릴 때 왕따를 당할뻔 했지만 같은 반이었던 남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성인이 된 남자와 여자는 방문을 사이에 두고 소통을 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대문 밖으로 나온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우리의 실명과 일치했다. 영화의 제목은 <외톨이의 바다>.
-둘의 베드씬이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요.
나는 말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소통하던 어느 날 남자는 여자에게 방문을 열어주고, 두 사람은 정사를 나눈다.
-왜요? 야한 것도 넣어줘야 해요.
감독이 말했다.
-대사가요. 준구가 수진에게 가슴이 참 작네, 하니까 수진이 모로 누우며 이러면 커져, 그러잖아요. 준구의 첫 경험이라는 설정인데 대사가 뻔뻔한 것 같아요.
-좀 구리긴 하네요.
준구가 내던지듯 툭 말했다. 준구의 말버릇이었다.
-아니 이건 직접 연기하는 걸 보면 재밌어요.
감독은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 같았다.
-저는 엄마 캐릭터가 너무 납작한 거 같아요.
미숙 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 시나리오처럼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며 사는 게 전부인 엄마가 아니라,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들 때문에 괴롭지만 그래도 자기 직업도 있고, 하는 운동도 있고, 밝고 당찬 면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찾아온 여자와 친구가 되는 거예요.
-육십 대 초반인 여자가 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요양보호사 많이들 해요. 나도 하고 있고. 운동은 배드민턴? 마당에서 미숙과 수진이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이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아들은 커튼 사이로 그걸 바라보고요.
둘이 바닷가를 거니는 장면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했다.
-수진이 잠시 바다 수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 수진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미숙이 가슴이 철렁해서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이 있으면 어떨까요? 미숙은 밝아 보이지만 사실은 아들이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늘 마음에 품고 있어요. 그런데 수진이 해맑게 웃으며 소라 같은 걸 잡아서 물 밖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둘이 마주 보고 웃고.
감독이 말했다.
-아예 첫 번째 씬을 아들이 죽으려고 바다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합시다. 그러다 죽지 못하고 돌아오는 겁니다. 그러면 두 장면이 이어지겠네요.
준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어릴 때 준구가 수진을 도왔고 나중에 수진이 그걸 보답하려고 한다는 설정이 마음에 안들어요. 은혜 갚은 까치도 아니고.
나도 동의했다.
-그래요, 오히려 수진이 준구에게 원한이 있으면 어떨까요? 수진이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데, 예를 들면 고아원에서 학교에 다니는데, 엄마를 따라 고아원에 봉사를 하러 간 준구가 수진을 본 거예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애들에게 말하고. 그래서 수진이 왕따를 당하면 어떨까요.
미숙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아라는 설정 좋네요. 가정이 없는 여자와 집 속으로 침잠한 남자가 대비되니까.
감독은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아, 우리 영화가 잘 흘러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시나리오는 오 시인님이 다시 쓰면 어떨까요? 우리 오 시인님이 그래도 글 좀 쓰지 않습니까.
나는 쓰겠다고 했다. 나도 좀 들떴다. 뭔가가 만들어지려는 느낌. 가슴 속이 근질근질하고, 공기 중에 떠도는 전율. 꽃들이 만개하기 직전 같은.
*
나는 바그다드 카페에서 오 시인으로 불렸는데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해도 사장 부부는 나를 굳이 시인님 시인님하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면서도 오 시인님이라고 불리면 내 입이 헤벌쭉 벌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카페에 처음 간 날 노트에 뭔가를 끄적거리는 내게 사장은 뭘 쓰냐고 했고 내가 시라고 하자 그럼 시인이냐고 물었다. 나는 등단은 못 했다고, 하지만 가끔 공모전에서 상은 받는다고 했다. 그렇게 덧붙인 것은 나의 허영심. 사장이 어디서 내 시를 읽을 수 있냐고 물어서 문자로 인터넷 링크도 보냈다. 일 년 전 수자원 공사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수도꼭지>라는 시가 금상을 받았다는 기사였다. 내 시의 전문이 나와 있었다.
은빛 부리에서
새의 노래
흐른다
노래 한 컵
마시면
몸 안에
숲
카페 사장은 시가 꼭 하이쿠 같다고, 하이쿠는 문학 중에 가장 영화를 닮은 형식이라고, 자신은 영화 감독이라고 했다. 무슨 영화를 찍었냐고 물어봤는데 들어본 적이 없는 제목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거액의 투자를 받았지만 쫄딱 망한 멜로영화였다. 어째서 단편 소설이 아니라 하이쿠가 가장 영화를 닮았냐고 내가 묻자 사장은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그맣고 수줍어 보이는 감독 부인은 <수도꼭지>를 프린팅해서 카페 벽에 붙여놔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몇 번 거절하다 승낙했다. 그 후로 나는 바그다드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 그게 반년 전의 일이다.
사장 부인은 혼자 사는 내게 늘 김치며 반찬을 나누어 주었다. 카페에선 샐러드며 스테이크, 파스타도 팔았는데 뭘 시키든 사장은 양을 넉넉히 줬다. 어느 날은 사장이 물었다. 내가 왜 오 시인님에게 잘 대해주는지 알아요? 내가 글쎄요, 라니까 사장이 대답했다. 예뻐서요. 부부는 카페에서 함께 일했고 나는 둘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남편이 없을 때 부인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남편이 말이죠, 시인님 같은 분이 이상형이래요. 나는 당황했다. 이건 칭찬인가 견제인가. 남편이 시인님이랑 결혼했으면 부부싸움도 안 했을 거래요. 사장은 그런 말을 웃으며 농담으로 했을까, 아니면 서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싸우는 와중에 했을까 나는 궁리했다. 아직 서른아홉인데 오십 대 중반의 남자와 부부로 묶이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애매하게 미소 지으며 사모님 같은 분이 어딨다고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체로 <바그다드 카페>에서 시간은 천천히 편안하게 흘렀고 나는 휴일이면 카페의 다락방에 앉아 시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많은 카페는 아니어서 사장도 일 층의 손님 테이블에 앉아 시나리오를 썼다. 은테안경을 낀 마르고 지적인 분위기의 남자가 새하얀 손으로 타닥타닥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나는 막상 읽기 전까지 감독의 시나리오가 그렇게 구린지 몰랐다.
나는 일주일 동안 시나리오를 썼다. 육십 대 요양보호사의 생활에 대해 잘 몰라서 카톡으로 미숙 씨의 의견을 자주 물었다. 감독이 쓴 시나리오와 장소와 설정만 그대로일 뿐 완전히 딴판인 시나리오가 되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장소는 주로 내가 일하는 리조트의 데스크였다. 리조트는 펜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아서 룸이 스무 개뿐이었는데 요즘은 손님이 서너 팀밖에 없었다. 나는 내 직장을 좋아했다. 주간 직원은 나뿐이어서 업무를 처리한 후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문서를 정리하는 척하며 노트에 시를 끄적거렸고, 휴대전화로 이북을 읽었다. 나는 서비스업에 익숙했다. 손님에게 호의를 가장할 줄 알았고, 호의를 얻어낼 줄도 알았다. 리조트는 흐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조트 앞 바다처럼, 늘 같은 것 같지만 늘 다른 곳. 사람들이 왔다가 가는 곳. 오후 2시면 프런트에 <객실 점검 중입니다>라는 팻말을 올리고 방 점검을 했다. 낡지만 청결한 방들. 방마다 같은 침대와 화장대와 탁자의 위치. 나는 베란다의 철제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곤 했다. 이 방들의 탁월한 점은 방의 주인이 매번 바뀐다는 것.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매일 다르다는 것. 방이라는 건 약간 집요한 면이 있는데, 가구와 벽지에 그 방의 주인이 스며드니까. 어릴 때 아빠가 뭔가를 부수고 욕을 하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 안에 숨어 있었다. 방에는 자꾸 뭔가 흘러들었고 빠져나오지 못했다. 고여서 썩었다. 진심이 고이는 것이라면 나는 가식적으로 되고 싶다. 나는 매년 이사를 한다. 연기를 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건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다른 인격이 되고 싶어서. 매일 과거를 바꾸면 좋겠다. 오늘은 이 과거 내일은 저 과거. 그러면 매일 완전히 다른 꿈을 꾸겠지. 숙박업소의 침대처럼.
*
바그다드 카페에서 두 번째 회의. 시나리오를 읽고 미숙 씨는 조금 울었다고 했다. 미숙 씨가 하는 말들이 나는 참 좋았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가끔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해요. 내 아이가 준구처럼 마흔이 다 될 때까지 집에만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친구도 없이, 대화도 없이, 그저 자기 자신 안에 갇혀... 그러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까요. 그런데 시나리오에서 미숙은 아들의 슬픔을 마음 한켠에 둔 채로 꽃이 피면 꽃이 피었다 기뻐하고,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챙겨주고, 이상한 모양의 구름을 보면 깔깔 웃고... 말기암이면서 자신이 죽으면 아이의 삶에 변화가 생길 거라고, 그게 좋은 변화이길 바란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려면 마음의 힘이 얼마나 강해야 하나.
준구는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미숙이랑 수진이 막걸리랑 파전을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데 방 안에 있는 아들이 슬쩍 끼어드는 장면. 방문을 사이에 두고 셋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나누는 거. 그런데 막걸리 말고 소주로 하면 초록색이 더 예쁠 것 같은데.
나는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소주를 한 번도 마신 적이 없는데, 어릴 때 집에 늘 소주병이 굴러다닌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열두 살의 나는 소주병에 독약을 타는 계획을 노트에 쓴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난 쓰는 걸 좋아했다. 공책은 나의 작은 왕국. 세계의 참혹함에 대항하는 나의 방패.
감독은 감독답게 조언했다.
-미숙이 아들이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늘 품고 있다는 걸 한 번 더 보여주면 좋겠어요. 아들이 자고 있는데, 엄마가 이성을 잃고 문을 두드리는 장면 정도.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찍기 힘든 것 중 하나가 동물이에요.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씬은 빼는 게 낫겠습니다. 나머지는 그대로 찍어도 좋습니다. 물론 대사는 배우들이 본인 입말에 맞게 조금씩 바꿔도 좋아요. 수고했습니다.
*
우리는 영화를 찍으러 바다에서 만났다. 9월 1일이었고, 얼마 후면 바닷물이 차가워질 것이기 때문에 남은 바다 씬들을 모두 찍기로 했다. 푸른 하늘. 더 푸른 바다. 윤곽선이 뚜렷한 뭉게구름. 신발을 털면 나오는 모래. 여름의 끝.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가 쓴 장면과 대사들이 현실의 시간 위에 덧씌워져 자기 나름의 새로운 시간이 빚어졌다. 아, 이래서 영화를 만드는구나 싶었다. 나는 준구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을 폰으로 찍었다. 목까지 바닷물이 차올랐을 때 준구는 뒤돌아보고, 그때 해변에서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우리를 보며 저 사람들 뭐 하는 거냐고 부모에게 묻던 남매였다. 그 순간 준구의 표정은 부드러워졌고, 그는 죽음이 아닌 생을 향해 되돌아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붐마이크에 녹음되었다. 그게 영화가 선사하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고, 나중에 감독이 들떠서 말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정해진 대로 만드는 게 아니라, 느슨하게, 우연과 즉흥이 깃들 틈을 영화에게 줘야 한다고. 그래야 영화가 재밌어진다고 했다.
영화를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라 급한 장면부터 찍는다는 게 새로웠다. 수진이 에어비앤비로 머문 지 보름째이고 둘은 어느 정도 친해졌다는 설정이어서, 미숙은 걸어가며 수진의 손을 슬그머니 잡는다. 미숙 씨와 여러 번 연습을 해서 대사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숙 씨의 조언도 도움이 됐다. 말의 어미를 편하게 고치고 톤을 낮추라는. 준구는 틈날 때마다 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왜 찍냐고 물으니까, 준구가 자기는 영화보다 메이킹필름이 더 재밌다고 했다.
미숙과 내가 동네를 거니는 장면들도 몇 장면 더 찍었다. 감독은 곧 있으면 가을이 되고 행인들의 옷차림이 달라진다고, 야외 장면부터 찍어야 한다고 했다. 스태프가 따로 없어서 연기를 안 하는 사람이 번갈아 붐마이크를 들었다. 감독은 우리에게 같은 장면을 열 번도 넘게 계속 연기하게 했다. 그중에 가장 잘 나온 장면을 쓴다고 했다. 아침 열 시에 만났는데 다 찍으니 저녁 여섯 시가 넘었다. 촬영 첫날이니 뒤풀이를 하자고 해서 감독의 카페로 갔다.
*
이날 미숙 씨가 허영심을 소중히 여기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 얘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오래 잊히지 않는다. 어쩌다 허영심이 화제가 되었나. 감독이 자기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 관해 얘기했다. 시골에 내려와서 채소를 기르고, 요가하고 명상하고,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사는 여자들의 허영심이 주제라고 했다.
-그런 여자 중 하나가 내가 열었던 파티에 왔는데, 바비큐에는 손도 안 대면서 여긴 자기가 먹을 게 없다고, 집에 가서 신라면을 끓여 먹어야겠다는 거예요. 정말 웃기지 않아요?
미숙 씨와 나와 준구는 어떤 점이 웃긴지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라면은 돼지기름으로 튀기니까요.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채식주의를!
감독은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준구가 물었다.
-그런 게 영화가 되나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이 허영덩어리 여자들이 마을 이장이랑 난교를 하는 장면도 있어요. 그런데 정말 웃기는 건, 이게 실화란 겁니다.
감독은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더니 서울에 올라가서 아는 영화인들에게 시나리오를 돌려도 그 자리에선 정말 좋은 것 같다고 하면서 나중엔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그게 다 한국 사회의 인맥 학맥 때문이라고. 자기 같은 놈은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를 써도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똑바로 보더니, 신춘문예도 다 개 같은 놈들이 지들끼리 하는 작당이라고 했다.
-내 와이프가 말입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오 시인님 시를 읊어요. 얼마나 알기 쉽고 좋아요. 신춘문예 당선 시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습니까?
갑자기 서글퍼졌다. 혹시 내 시는 엄청나게 후진 게 아닐까. 나는 평생 시인이 못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감독처럼 세상을 탓하고 욕하고 미워하며 살게 될까. 오직 영화만이 자기 편이라 생각하며. 그런데 영화는 그에게 관심이라도 있을까? 시는 나의 편일까? 창 너머로 둥근 달이 밝았고 나는 맥주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맥주를 몇 모금 훌쩍이는데 미숙 씨가 뒤따라와 말을 걸었다.
-감독님이 술이 좀 된 거 같네요.
미숙 씨는 영화판이 무섭다고, 첫 번째 영화를 말아먹은 사람에겐 더는 기회를 안 준다고 했다. 첫 영화를 찍고 그대로 사라진 감독이 무수히 많다고. 나는 감독이 안그렇게 보이는데 굉장히 소심하다고, 한번은 내 친구가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감독이 접시에 남은 파스타 사진을 내게 톡으로 전송하며‘친구분이 음식을 반이나 남겼어요 ㅜㅠ 맛이 없는 걸까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일화를 말해줬다. 나중에 부인에게 들으니 음식을 남긴 손님에게 이유를 묻는 문자를 종종 보낸다고 했다. 손님들이 부담스럽지 않겠냐고 부인이 말하니 감독은 뭘 모르는 소리 말라고 했다고. 나는 말했다.
-누가 자기가 만든 음식을 남기는 것도 못 참는 사람인데, 자기 영화를 말아먹은 일은 평생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큰 실패겠지요.
나는 또 말했다.
-나도 평생 등단을 못하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시를 쓰는 것도 다 허영심 때문이 아닐까. 평범한 리조트 직원이 아니라 시인이고 싶은 것이 아닐까.
미숙 씨는 맥주를 마시며 어떤 영화의 줄거리를 들려주었다. 그 말을 하는 미숙 씨의 허스키하고 들뜬 목소리와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코가 크고 못생긴, 달 여행이 소원인 시라노라는 남자이다. 나는 미숙 씨의 이런 표현이 좋았다.
-시라노는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뒀고,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적으로 뒀어요. 그만큼 시라노는 삶을 강렬하게 살았어요.
미숙 씨는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시라노, 적을 무찌르는 시라노, 못생긴 얼굴 때문에 사랑하는 록산느 앞에 나오지 못하고 잘생긴 대역 뒤에서 편지를 읽는 시라노를 조금씩 연기했다. 미숙 씨가 젊은 시절 명문 여대를 중퇴하고 연극배우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는 감독에게 들었는데, 미숙 씨의 시라노 연기는 반짝반짝 빛이 나서 나를 홀렸다. 그러나 우리 영화 속 미숙을 연기할 때 미숙 씨는 이렇게 빛나지 않았다. 아마 미숙 씨가 연기하는 게 시라노이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일상을 죽음과 뒤바꾸며 살아가는 남자이기 때문에 그의 강렬함이 미숙 씨를 통해 흘러나온 것일까. 시라노는 마침내 적의 급습에 머리를 다치고, 그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은 록산느의 품에서 뇌진탕으로 죽어간다.
-시라노가 록산느에게 말해요. 내가 버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지요, 라고요. 그리고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사랑 아닐까요?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까요.
-아니요, 숨을 거두기 직전 시라노는 말합니다.
미숙 씨는 록산느의 얼굴이 아닌 달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물을 연극적으로 만드는 목소리, 그러니까 둥근 달 안으로 뻗어있는 나뭇가지와 올빼미 소리, 부드러운 밤공기마저 특수한 효과를 위한 장치로 만들어 버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버릴 수 없는 단 하나의 것은, 나의 허영심.
*
두 달이면 찍을 거라는 영화는 12월까지 이어졌다. 일요일마다 아침 열 시부터 저녁까지 찍었다. 어느 날은 밤 10시까지 찍은 적도 있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했을 겁니다, 라고 준구가 감독 앞에서 투덜거렸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휴일에 쉬지도 못한다고. 촬영이 있는 날에 미숙 씨는 내 집에서 자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나 운전을 해서 돌아갔다. 모두가 지쳐가는 어느 날, 내가 내 촬영이 없는 날엔 오후에 나오고 싶다고 말하니 감독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세요. 하지만 대배우 안성기는 자기 촬영이 없는 날에도 아침 아홉 시에 오고 저녁 여섯 시에 퇴근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좀 욱했는데 준구가 대신 대꾸했다.
-하지만 안성기는 출연료를 받잖아요.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회비를 만 원씩 내고요.
감독은 회비로 점심 사 먹으면 남는 게 없다, 자신은 촬영 장비를 사느라 몇백만 원이 깨졌다고 발끈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 같았는데 미숙 씨가 웃으며 끼어들어서 무마했다.
같은 장면을 몇 번씩 반복해서 찍는 건 지루한 일이었다. 내 촬영을 안 할 때는 붐마이크를 들거나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구경했다. 영화 현장은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낮 장면을 다 찍어서 밤 장면밖에 안 남았을 때, 감독이 크고 검은 종이를 사서 바깥 창문에 붙여 달라고 내게 말했다. 영화는 준구가 실제로 사는 집에서 촬영했는데, 집의 뒷마당은 수풀이 무성한 공터였고 거미줄이 가득했다. 거미는 몸통은 노랗고 다리는 초록색인데 얇고 길었다. 긴 장대를 가져와서 거미를 걷어내고 있는데, 준구가 왔다.
-거미가 안 징그럽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장대를 빼앗아 자기가 거미줄을 걷었다.
영화 촬영은 피곤했지만, 끝나고 하는 뒤풀이는 즐거웠다. 한 번은 감독이 술에 취해 중국에서 공동무덤을 본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깊은 구덩이가 있었는데 인부가 뚜껑을 열고 화장한 뼛가루를 그 안에 쏟아부었다. 감독이 들여다보니 뼛가루들이 햇빛을 받아 뿌옇게 흩날렸다고 했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그냥 쌓여 있었어요. 먼지처럼. 그런데 그 공동무덤 근처에는 자기 이름이 쓰인 비석이 정말 크게, 사람보다 크게 세워져 있는 무덤들도 있었어요. 그걸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죠. 역시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하는구나. 죽어서도 이렇게 차별을 당하는 구나.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준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먼지 산이 되는 편이 좋은걸요.
감독이 왜냐고 묻자 준구가 대답했다.
-혼자 무덤 속에서 썩어가느니 먼지가 되어 다른 몸들과 섞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나도 아무 말이나 했다.
-나는 말이죠, 몸을 매일 바꿀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이 몸 내일은 저 몸으로. 키 작고 통통한 몸으로 평생 사는 것도 지겹다!
사람들이 웃었다.
감독은 이날도 술에 취해서 자신이 감독으로 내정되었다가 밀려난 영화에 대해 말했다. 학연과 지연 때문에 그가 쫓겨난 자리에 다른 사람이 감독으로 정해졌다. 영화는 크게 성공했고 그 영화의 감독은 열다섯 살 어린 주연 여배우와 결혼해서 대저택에서 산다.
-그 자리가 내 거였다는 생각이 들면 잠이 안 와요.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그다드 카페의 벽에는 감독이 영화 배우들과 찍은 사진들이 한 면 가득 붙어 있었다. 감독의 기준으로 분류하면 사진 속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과 안 유명한 사람, 둘로 나뉘겠구나. 안 유명한 우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안 유명한 감독은 얼마나 불행한가.
뒤풀이 분위기는 감독이 끼지 않을 때가 더 좋았다. 우리는 주로 동네 술집에 가서 막걸리에 전을 먹었다. 해물파전도 먹고 육전도 먹고 깻잎전도 먹고 감자전도 먹었다. 불행하지 않았다. 준구는 조금 뚱한 얼굴로 툭툭 말을 던졌고, 미숙 씨는 늘 사려 깊게 말했다. 미숙 씨가 우리 영화에 얼마나 관객이 오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열 명만 넘으면 좋겠다고 했고, 준구는 교실은 채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물었다.
-그래도 관객은 역시 있어야겠죠?
미숙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잠깐이라도 등장인물의 삶이 진짜가 되잖아요.
그리고 조금 생각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영화관에 가는 게 참 좋아요. 그 어두컴컴한 큰 방에 들어가는 게 무슨 의식처럼 느껴져요. 영사기의 빛으로 뿜어나오는 타인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 잠시 내 이야기는 어둠 속에 두겠다는 뜻 같아서.
한 번은 은둔형 외톨이는 불행할 수밖에 없는가, 라는 화제로 술을 마시며 밤늦게까지 얘기한 적도 있다. 메뉴는 동태찌개와 밤 막걸리였다. 준구가 자기 얘기를 했다.
-스물다섯에 반년 정도 일도 안 하고 핸드폰을 꺼놓고 아무도 안 만나고 술만 퍼마신 적이 있었는데, 좋진 않았어요. 밤낮이 바뀌고, 방 청소도 안 하고, 씻지도 않고.
나는 물었다.
-어떻게 벗어났어?
-자취방으로 찾아온 엄마한테 두들겨 맞고 본가로 끌려갔어.
미숙 씨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사십 대 중반에 일 년 넘게 아무도 안 만나고 일도 안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우울증 진단을 받았어요. 그러다 개를 주웠는데, 주인을 찾으려고 전단지도 붙였는데 소식이 없더라고요. 무척 애교가 많은 몰티즈였는데, 그 개를 산책시키다 보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랑 대화도 나누고, 다른 개 주인들이랑도 친해지고. 그런 사소한 일들 덕분에 마음에 힘이 붙더라고요.
미숙 씨는 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덧붙였다.
-사람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잖아요. 방 안에만 있으면 타인과 만나서 환기되는 부분이 없으니까,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니까, 결국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나는 말했다.
-우리 언니가 그래요. 마흔 살인데, 일도 해본 적이 없고, 엄마 돈으로 살아요. 같이 일자리를 알아본 적도 있는데 막상 시작하진 않아요.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면 내가 언니를 돌봐야 하나 막막해요. 한편으로는 언니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내가 싫고. 나라고 뭐 잘났나.
미숙 씨가 물었다.
-언니가 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나는 어릴 때 아빠가 술을 매일 마시고 폭력적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준구는 세 살 때 아빠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서 집을 나갔다고 했고, 미숙 씨의 아빠는 나의 아빠와 동일인물 같았다. 술만 마시면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부수는 것도. 미숙 씨와 나는 어릴 때 아빠를 죽이고 싶어 했다는 것도 같았다. 나는 소주병에 약을 타려는 계획을 세웠고, 미숙 씨는 식칼로 아빠의 심장을 찌르고 싶어 했다. 나는 말했다.
-그런데 아빠한테 대들 수 있을 정도로 나이를 먹기 전에, 나는 늘 방 안에서 숨어 있었거든요. 언니도 자기 방에서 숨죽여 있었어요. 우리는 왜 함께 있지 않았을까요.
미숙 씨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했다.
-방에 틀어박힌 사람들을 위한, 아주 커다란 방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서 다 같이 그 방에 모여서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준구가 말했다.
-그러면 스물다섯의 나와, 사십 대의 미숙님도, 수진의 언니도 그 방에서 만나겠네요. 그런데 수진은?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야외가 좋아.
언니는 암막 커튼을 친 방에 틀어박혀 엄마가 외출할 때만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나는 언니와 엄마가 있는 집을 떠나 멀리 왔다. 몇 겹의 방을 통과해야 어린 시절의 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니가 아직도 머무는 그 방에서.
*
12월 초였다. 출근이 1시여서 오전에 바그다드 카페에 들렸는데, 부인 혼자 카페를 지키고 있었다. 부인은 눈이 조금 부어 있었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페 이름을 잘못 지었나 봐요.
부인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이름을 따서 카페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카페 한 면에 사납게 생긴 흑인 여자와 뚱뚱한 백인 여자가 서로를 정답게 바라보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부인이 물었다.
-바그다드 카페, 봤어요?
난 못 봤다고 대답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남편을 쫓아버린 여자가 친구가 되는 내용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부인이 손등을 내밀었다. 멍이 들어 있었다. 남편이 손등을 때렸다고 했다. 방이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짜증을 내면서. 감독은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집요하게 잘못을 추궁하고, 소리를 지르곤 한다고 했다. 지나가며 부인의 어깨를 밀치거나 손등을 툭 치는 애매한 가정폭력도 일어난다고 했다. 부인의 하소연은 한 시간 반이나 계속되었다.
-남편은 무슨 사소한 일만 있으면 잠도 못 자는 사람이에요. 얼마 전엔 인터넷 리뷰에 카페에 대한 악플이 하나 달린 걸로 일주일 동안 불면에 시달렸어요. 자기 영화 찍을 때 악플 달렸던 일이 떠오른대요. 그 짜증이 고스란히 나한테 와요.
부인은 하소연을 하다가도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예술 하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예민한가 봐요. 그래도 동네 사람들이랑 영화 찍기 전에는 이틀에 한 번 내게 소리를 질렀는데, 이젠 일주일에 한 번쯤만 그래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니까 신경이 조금 느슨해졌나 봐요.
부인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며칠 후 카페에서 감독과 내가 둘만 있을 때,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결혼은 사랑을 잃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말이 맞아요.
나는 그게 내가 결혼을 안 한 이유라고 말하고, 평소에 감독님이 너무 부인에게 무뚝뚝한 것 같다고, 더 다정하게 말을 하면 좋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감독이 말했다.
-원래 내가 말을 다정하게 못해요.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하지. 그래서 내 영화 찍을 때도 스텝을 다 남자로 뽑았어요. 여자들은 직접적으로 뭐가 잘못됐다 틀렸다 말해주면 다 질질 짜고 그만두더라고.
나는 혐오감을 감추기 위해 클리쉐같은 말을 했다.
-그래도 부인에겐 다정해야죠. 여자는 사랑을 먹고 사니까요.
감독이 똑같이 클리쉐로 대꾸했다.
-과연 시인다운 말씀이네요.
*
12월 20일.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빼고 다 찍었다. 감독과 나는 마지막 장면을 두고 계속 의견이 맞지 않았는데, 감독은 영화 속 준구가 수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을 찍고 싶어 했다. 나는 그렇게 짧은 시간에 준구가 마음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간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훨씬 나중에 일어날 일이었다. 지금 서둘러 억지로 밖으로 보내면, 준구는 더 깊숙한 곳에 틀어박힐지도 모른다. 나는 한밤중에 둘이 방문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마주한 채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감독이 카톡을 보냈다.
「그건 너무 시시한 결말인데요. 영화는 관객들에게 꿈을 보여줘야 해요.」
나는 답장했다.
「감독님 말씀대로 끝나는 건 신파인 것 같아요」
「신파면 왜 안돼요?」
「신파는 관객을 속이는 거잖아요. 영화는 만들어진 이야기니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더 진실해야죠」
화장실에 다녀오니까 감독이 보낸 톡이 잔뜩 쌓여 있었다.
「속고 싶어서 오는 사람 속이는 게 뭐가 나쁩니까?」 「속이는 거면 제가 사기꾼이라는 겁니까?」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하세요」 「자기는 대단한 예술을 하고 나는 신파멜로 찍는 삼류라는 건가?」 「그리고 남의 집안일에 간섭하는 게 무례란 거 모릅니까? 잘못을 사과하세요」 「서수진씨, 대답하세요」 「사과하세요」 「할말이 없어서 대답이 없나? 그 나이 먹고 결혼도 안하고 시쓴다고 허우적대는 게 다 허영이지」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답장을 보냈다.
「카톡 더는 안보내도 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독은 카톡을 더 보냈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가 여섯 통 왔지만 받지 않았다. 그는 문자를 보냈다.
「건방지게 어디서 카톡을 보내라마라 해요? 빨리 카톡 읽으세요. 나한테 잘못 사과하고」
「내게 잘못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휴일을 하루종일 영화 찍는 데 쓴 거, 덜덜 떨며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연기하고, 피곤해 죽겠지만 스텝으로 일한 거, 그게 내 잘못인 거 같습니다. 차단합니다.」
*
씬 한 개를 남기고 영화는 무산되었다. 부인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감독이 사람이 무섭다고, 이런 사람들과 한 영화로 묶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했다. 감독은 준구와도 삐거덕거렸다고 했다. 나는 이 영화를 찍으려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주 달려온 사람도 있는데 감독 마음대로 그래도 되는 거냐고 물었고, 부인은 미안하다고 했다. 일요일에 나는 차를 몰고 미숙 씨가 사는 도시로 갔다. 한 시간의 운전은 지루했다. 수많은 빨간 불을 기다려야 했다. 쌈밥을 먹고 우리는 미숙 씨의 단골 카페에 갔다. 나는 내가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를 보여줬다. 미숙 씨가 말했다.
-잘했어요. 이 정도가 딱 좋아요. 같은 수준에서 대응하면 안돼요. 다른 수준에서 말해야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왜냐면 그 사람도 사실은 자신의 수준을 경멸하고 있거든요.
나는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영화가 망해서 저렇게 된 걸까요.
미숙 씨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요. 그 실패를 쭉 늘리고 늘려 남은 인생 내내 곱씹는 게 제일 큰 실패지.
나는 역시 짜증 난다고, 시나리오도 쓰고 연기도 하고 넉 달 넘게 개고생을 했는데 욕만 먹고 무산된 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주변에 자랑도 했는데, 사람들이 영화 다 찍었냐고 계속 묻는데. 미숙 씨는 자기도 좀 난처하긴 하다고, 영화를 기다리는 요양원 할머니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치만 죽기 전에 살면서 인상 깊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나는 그게 그 사람만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 영화에는 외톨이의 바다를 찍은 일이 나올 거예요. 나는 수진 씨와 함께 영화를 찍는 거 자체가 좋았어요.
어떤 말들은 말에 불과한데 어떻게 따뜻한 액체처럼 몸을 덥힐까. 미숙 씨와 나는 카페에서 나와 영화관으로 갔다. 할리우드 영화를 봤다. 쓰리디 안경을 끼고 팝콘을 먹었다. 주인공의 가족이 죽는 장면에서 미숙 씨는 눈물을 흘렸고 나는 좀 졸았다. 그러고 집에 왔는데 밤에 준구에게 전화가 왔다.
-뭐 하냐.
-그냥 있다. 헛헛하네.
-다음 주 일요일에 상영회 하자.
-영화도 없는데 무슨 상영회.
-빔프로젝터랑 블루투스 스피커도 샀어. 내가 찍어놓은 동영상 있으니까. 미숙 씨도 부르고. 막걸리도 한잔 하고.
*
준구는 영화 속 준구가 틀어박힌 방을 영화감상실로 만들었다. 그는 빔프로젝터로 동영상을 보여줬다. 유튜브에 올렸다고 했다. 제목은‘우리가 잃어버린 영화-외톨이의 바다’였다. 벽 한 면이 바다의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내 폰으로 찍은 장면. 준구가 바닷속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는 장면. 준구가 나오는 장면은 이것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준구가 우리를 찍은 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화 현장을 더 자주 찍어두는 건데. 동영상 속에는 감독도 자주 나왔다. 진지하고 즐거운 얼굴로 카메라 뒤에서 한 번만 더, 라고 계속 외쳤다. 저렇게 열심히 찍었으면서. 마지막엔 해변을 걷고 있는 미숙과 내가 나온다. 영화 속 미숙은 요양원에서 일하는 얘기를 한다. 원장이 노인들의 기저귀가 완전히 젖을 때까지 갈지 못하게 해서, 미숙은 자기 돈으로 기저귀를 사서 갈아주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존엄이 사소한 디테일에 달린 거 같아요. 사타구니가 뽀송하느냐 축축하느냐.”
이건 실제로 미숙 씨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대사로 만든 것이다. 영화 속 나는 미숙에게 잘했다고,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미숙이 슬그머니 내 손을 잡는다. 나는 좀 부끄러워하며 “저 물결이 반짝거리는 걸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라고 묻는다. 미숙은 뭐라고 하냐고 묻고, 나는 윤슬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준다. “예쁜 이름이네요.”라고 미숙이 미소짓는다. 그리고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비추며 메이킹필름은 끝이 난다.
감독 욕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우리는 그냥 영화 만들면서 재밌었던 일들을 말했다. 막걸리를 셋이서 다섯 병을 마셨고, 준구가 부쳐준 김치전을 넉 장 먹었다. 김치전에 허니머스타드 소스를 발라 먹으면 맛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술이 좀 된 우리는 영화 속 엄마가 죽으면 준구가 어떻게 세상을 헤쳐 나갈지 염려했다. 수진이 도와줄 거다, 집이 있으니까 노숙자는 안될 거다, 그런 얘기도 했다. 준구는 말했다.
-아직 서른여덟이니까,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니까.
미숙 씨가 말했다.
-나쁜 영화는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할 말이 많은 거겠죠.
나는 막걸리가 찰랑거리는 양은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자자, 우리가 잃어버린 영화를 위해 건배해요.
나의 필름에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챙, 하고 양은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목구멍을 넘어가는 뽀얗고 부드러운 술, 영사기에서 뿜어나오는 빛, 이 방 안의 분위기. 다시는 오지 않을, 이 방 안의 분위기. 우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