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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 소설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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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연 Oct 20. 2024

혁과 준구

섬, 소설

                          

만남

 

  혁과 나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세미나에서 만났다. 세미나는 보름에 한 번 저녁 7시에 대구 문학관에서 열리는데, 우리는 반년 이상 서로 말을 걸지 않은 채 지냈다. 언젠가 쉬는 시간에 같이 문학관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두툼한 파카를 입은 그가 입김을 날리며 살면서 언제 제일 무서웠어요? 라고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대화의 맥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하철 안에서 칼을 꺼낸 남자를 봤을 때요 라고 대답한 것만 기억난다. 파카를 벗고 알몸이 된 혁은 하얗고 야위어서, 나는 마그리트 뒤라스가 쓴 <연인>의 중국인 연인에 대한 묘사를 떠올렸다. 혁과 나는 사년째 사귀고 있다. 혁은 스물아홉이다.      

  나는 제주도 리조트의 프론트 직원이고, 준구 씨는 투숙객이었다. 준구 씨는 한겨울에 혼자 방에 묵었는데, 그 방에만 밤늦도록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서 준구 씨는 프론트로 전화를 했다. 다른 방은 만실이었고, 보일러 수리공은 다음날이 되어야 올 수 있어서 나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준구 씨는 솜이불을 두르고 떨면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준구 씨는 숙박비를 돌려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와 밥 한 끼를 먹자고 했다. 그 후로 준구 씨와 몇 번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는 이십 년 전쯤 이혼을 했다. "와이프는 스페인어를 배우다가 강사와 바람이 났어요."라고 준구 씨는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준구 씨와 나는 일 년 넘게 만나고 있다. 

  준구 씨는 쉰 살이다. 환한 낮에 보면 가끔 준구 씨는 부쩍 늙어 보인다. 특히 옆얼굴이 그렇다. 준구 씨의 정면 얼굴은 제 나이보다 약간 어려 보이지만 고개를 돌리면 흐릿한 턱선과 목덜미의 붉고 우둘투둘한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동안 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듯하다. 준구 씨의 옆얼굴이 싫진 않다. 나이 든 남자에게 몸을 맡기면 나 자신의 젊음을 즐길 수 있는데, 이는 그 반대의 경우보다 자극적이다.      

  나는 서른다섯이다. 작년에 대구에서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혁과 준구 씨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그들은 몇 달에 한 번 비행기 표를 끊어 제주에 방문하고, 일정을 나와 상의한다. 갑자기 내 집 앞에 나타날 수도 없고, 그래서 낯선 남자가 내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도 없다. 준구 씨가 나를 떠나 서울에 있으면 나는 준구 씨를 사랑한다. 내 사랑은 거리감을 필요로 한다. 혁은 내 옆에 있을 때도 사랑할 수 있다. 혁은 어디에 있든 자기 안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직업     

  준구 씨는 광주에서 태어났고, 서울의 한 IT회사의 부사장으로 있다. 그의 회사는 건설 노동자가 인력사무소를 통하지 않고 건설사와 직접 연결되는 어플을 개발했다. 대학생 때 노동운동을 한 것과 지금 하는 일이 상관이 있냐고 묻자 준구 씨는 아무 상관 없다고 대답했다. 스톡옵션을 받았고 연봉이 마음에 들어서 일하는 거라고 그는 말했고, 나는 스톡옵션이 뭐냐고 물었다. 준구 씨의 연봉은 1억 2천만 원이다. "평생 직장은 아니니까요. 십 년 후에도 아이티 회사에서 일할 순 없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급해져요."라고 말하며 준구 씨는 정수리부터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를 긁적거렸다.      

  혁은 대구에서 태어났고, 예술대학 극작과를 나온 후로 장애활동 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소수자의 삶을 관찰하는 것이 시나리오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장애활동 보조인을 하게 됐다고 혁은 말했다. 그가 하는 일은 뇌성마비 장애인이 밥을 먹고,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이동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혁이 맡은 장애인은 몸무게가 110kg이 넘는데, 유쾌한 사람이라고 한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어느 노인이 자네는 몸도 그러면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살을 빼야하지 않냐고 충고를 한 적도 있다. 혁은 이 분은 병 때문에 살이 찐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노인은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자기 몫이라며 충고를 계속했다. 그러니까 형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혁이 키득거렸다.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형이 이렇게 말했어. 나는 어차피 몇 달 안에 죽습니다. 이 병은 살이 찌다가 죽는 병이거든요. 그러자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 변하더라. 이건 다큐로 찍어야 하는데.  

  혁의 연봉은 이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혁은 돈을 적게 버는 건 상관없다고, 어차피 시나리오 작가가 되더라도 영화가 성공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 확률이 낮다고 했다. 혁은 그저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평생 응모만 하다가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가장 암울하다고 혁은 발톱을 깎으며 말했다. 평생 글만 쓰면 어때서, 좋아하는 일인데 평생 지망생으로 살면 어때서? 라고 나는 물었다. 그러면 내 글이 발톱처럼 하찮아져 라고 혁은 말했다. 


연결점     

  준구 씨는 내 지갑 안에 현금 카드를 넣어 주면서 매일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하라고 했다. 커피를 마시고, 새 책을 읽고, 햄버거를 먹고, 꽃을 사면서 나는 준구 씨를 떠올린다. 그가 사준 베이지색 중고차로 드라이브를 하면서도 그렇다.      

  나는 조울증과 틱장애 진단을 받았다. 조현병 진단을 내리며 입원을 권한 의사도 있었는데 다른 의사는 조현병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매일 밤 자기 전 아빌리파이 10mg를 복용한다. 네이버 약검색에 나오는 약의 효능은 이렇다.

  1) 조현병 

  2) 양극성 장애와 관련된 급성 조증 및 혼재 삽화의 치료

  3) 주요우울장애 치료의 부가요법제

  4) 자폐장애와 관련된 과민증

  5) 뚜렛장애

  혁은 우울증이다. 그가 먹는 약 중에도 아빌리파이 2mg이 있다. 아빌리파이가 혁과 나를 연결하고 있다.      

고독       

  혁의 고독은 옷을 맵시 있게 차려입고 있다. 그래서 고독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혁은 일본에서 수입한 구제 옷을 입고, 낡은 원룸에는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와 <사탄 탱고>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책상에는 손바닥만한 까만색 소크라테스 두상이 놓여 있는데, 몸통은 금색 라카로 쓰인 영어 문장으로 뒤덮여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무슨 뜻이냐고 묻자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한 말이라고, 자신이 직접 쓴 거라고 혁은 자랑스러워했다. 혁은 장애활동 보조인으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원룸에 틀어박혀 글을 쓴다.      

  준구 씨는 늘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는다. 준구 씨는 회사에서 집세를 내주는 복층 오피스텔에 산다. 집에는 청소 도구가 아예 없고, 방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오만 원을 주고 건물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시킨다. 준구 씨는 휴일에도 집에서 일만 한다. 준구 씨는 친구가 없고 부하 직원들에게도 인기가 없다. 그래서인지 청소 아주머니나 식당 직원 같은 얼굴만 아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다. 준구 씨는 나중에 제주도의 풀빌라에서 살고 싶다고, 가정부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덩케르크>다. 혁이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잔잔한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 저편에서 폭탄을 실은 독일군 전투기가 종종 나타난다. 영국군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해변에 엎드려서 그 폭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떨어지길 바랄 수밖에. 폭탄은 떨어지고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 나는 내가 팝콘 냄새와 먼지 냄새를 풍기는 극장 좌석에 앉아 있는 이유와 영국 군인들이 덩케르트 해안에 엎드려 있는 이유가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트의 계산대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잠이 오지 않는 침대에서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죽음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혔다. 나는 시각적 고문 기계로 느껴지는 스크린에서 벗어나 복도로 달려갔다. 영화관 복도에는 강렬한 감정에서 막 빠져나온 관객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는 단조로운 패턴의 베이지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나는 청결한 냄새를 풍기는 하얗게 빛나는 변기에 토했다. 그 이후로 영화관에 다신 가지 않는다. 


  준구 씨와 나는 어느 호텔방에서 노트북으로 <연인>을 함께 봤는데, 나는 소설과 영화의 인물들이 느낌이 다르다고 투덜거렸다. 중절모를 쓰고 굽 높은 힐을 신은 제인 마치는 뒤라스의 소설에서 빠져나온 소녀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설 속 중국인은 몸이 희고 말랑말랑하고 털이 없는데, 영화 속 남자는 피부가 검고 근육질이었다. “영화와 소설에서 각각 다른 남자와 연애하는 것도 괜찮지.”라고 준구 씨가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뒤라스의 <물질적 삶>이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난다. ‘무엇이 날 중국인 연인 곁에 머물게 했는지 물었을 때, 나는 돈이라고 대답했다. 응접실과 다름없이 안락했던 자동차도 있다. 또 운전수. 차와 운전수를 내가 마음대로 쓴다는 것. 그가 입은 실크 옷에서, 그의 살갗에서 풍기는 성적인 냄새. 그 정도면 사랑이 시작될 수 있다.’ 나는 이 구절을 준구 씨에게 전화로 읽어 주었다.     

핏줄 

  

  혁에겐 삼 개월 늦게 태어난 이복동생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이라고, 혁의 할머니가 말해줬다. 혁의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는 뱃사람이어서 세계의 항구 곳곳에 여자가 있었다. 혁은 그 사실이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다만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끼고 싶을 때, 필리핀에 있는 이복동생이 자신의 도플 갱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상상한다고 했다. 맹렬하게 쏟아지는 필리핀의 태양 볕에 그을린 활기 넘치고 탄력적인 몸의, 어릴 때는 바나나 숲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 놀았던, 춤을 좋아하고 칵테일을 잘 만드는, 내적인 공간을 모두 개방시켜 육체와 내면이 경계선 없이 이어지는, 그래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또 다른 혁...  네 이복동생을 만났으면 사랑에 빠졌을 거야 라고 나는 말했다. 너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너와 정반대인 그 사람도 사랑했을 거라고.      

  준구 씨는 오 년 전 IT사업을 크게 실패한 적이 있다. 그때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가족이라고 해봤자 부모님은 돌아가셨기 때문에 형 하나뿐이다. "그날 광주에서 사람들이 개죽음이라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라고 준구 씨는 말했다. 그래도 고등학생인 형은 몰래 시위를 하러 나갔고, 군인에게 곤봉에 맞아서 병원에 실려 갔다. 의사는 형의 다리가 썩을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다행히 다리를 자르진 않았다. 형은 그날 이후로 다리를 절게 되었고 성격이 괴팍해졌다. 초등학생인 준구 씨가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미제 철도 장난감을 갖고 노는데, 형이 갑자기 “이까짓 것! 이까짓 것!”하고 소리를 지르며 철도를 발로 찬 적도 있다. 준구 씨가 엄마에게 이르자, 엄마는 형 친구들 여럿이 사라지거나 죽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등학생이 된 준구 씨가 그날 무섭지 않았냐고 묻자 형은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럼 왜 나갔냐고 하니까 형이 대답했다. 문 밖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나갈 수밖에 없는 문이 있다고.       

  아홉 살의 겨울에 나는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겨울 연못에서 놀 수 있게 손수 내 썰매를 만들어 주었고,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혀 놓고 장기 두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무뚝뚝한 여자아이였고, 할아버지의 애정 역시 모든 손주들에게 나눠 줄만큼 넉넉한 것이 아니어서, 내가 열 살이 되자 할아버지의 애정은 고모의 아들에게로 옮겨갔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손주는 계속 바뀌었는데 다시 내가 된 적은 없다. 

  어린 시절의 사진 속 나는 늘 무표정하게 눈을 치켜뜨고 있다. 나는 사람의 감정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것임을, 물비늘처럼 반짝이며 번지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내가 꾸준히 접한 감정은 태풍처럼 광적인 분노-훗날 아버지는 알콜 중독과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였다. 분노는 너무 강렬한 감정이어서 나는 아이가 마땅히 가정에서 접해야 할 다른 여러 미묘한 감정들-사랑, 사랑을 담은 미움 따위의-을 배우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컴퓨터에 폴더를 만들어 홀로코스트 사진을 모았다. 줄무늬 수용복 안의 황량한 몸, 전기 철조망이 둘러진 담, 죽은 사람들을 연기로 내뿜는 굴뚝에 왜 끌렸을까.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함경도 출신으로, 부유한 지주의 자식이었다. 공산당에게 할아버지의 가족은 모든 재산을 뺏겼고, 나의 증조모와 증조부는 수용소에 끌려갔다. 빈손으로 남한에 내려온 할아버지는 성실히 일해서 마을에서 가장 땅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새벽 네 시부터 자식들과 부인을 깨워 농사일을 시켰고, 게으름을 부리면 흙 위에 내동댕이쳤다. 아버지의 팔이 부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큰형은 무척 내성적인 성격으로 군대에서 스스로의 머리에 총을 쐈는데, 군대에서 괴롭힘을 당한 것은 아니고 원래 우울증이 있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형이 죽은 것은 할아버지 때문이라고 원망했다. 할아버지가 수상쩍은 방식으로 재산 밑천을 모은 것을 너도 알지 않냐, 라고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청년회를 하다가 섬에 가더니 사람을 많이 죽이고 재물을 빼앗았다고, 더러운 돈, 더러운 돈을 갖다 버리라며 의자를 벽에 던졌다. 

  제주도에 오고 일 년이 지난 후 할아버지가 섬에서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말을 기억해냈다. 나는 엄마에게 할아버지가 서북청년회였냐고 묻지 못했다.   


43 전시관     

  43 평화공원에는 묘석이 즐비했다. 사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했다. "여긴 사람이 묻혀 있는 건가요?" 준구 씨가 물었다. 나는 다 헛묘라고 대답했다. "그럼 이 사람들은 다 어디 있을까요?" 준구 씨가 또 물었다. 까마귀 울음소리들이 들렸다. 공기가 건조하고 스산했다. “어딘가에 함부로 묻혀 있거나, 바다에 떠내려갔거나... " 나는 묘비 사이를 걸으며 말했다. “여기 이 평화공원 터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대요." 

  "혹시 포켓몬 고 기억나네요? 증강현실 게임이요." 준구 씨가 물었다. 혁과 나는 한때 포켓몬 고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한겨울에도 검지 끝을 자른 장갑을 끼고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뛰어다니곤 했다. 나는 그런 얘기는 하지 않고 한때 빠져 지냈다는 말만 했다. 

  "가상의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만드는 게임이었죠." 준구 씨는 하얀색 플라스틱 연꽃이 놓인 묘비 옆에서 말했다. 준구 씨는 43을 체험하는 증강현실 어플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특정한 스팟에 가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으면, 실제 그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오 분이나 십 분 정도.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애니메이션이 끝나면 그 내용에 대한 퀴즈를 풀게 해도 좋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퀴즈를 맞추면 경험치가 생기고 레벨업이 된다. 그래서 일정 레벨 이상이 되면 올레 센터 같은 곳에서 기념품을 증정한다.  

  "1948년의 제주와 지금의 제주가 겹쳐지네요." 나는 말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전시관으로 갔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백비다. 눕혀있는 거대한 비는 흰 색이 아니라 잿빛이었고, 백비 위의 굴뚝에서 빛이 흘러 들어왔다.“차가운 비석에 빛이 닿아서 좋네요.”라고 나는 백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총에 턱이 맞아 평생 턱을 무명천으로 싸고 다녔다는 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준구 씨가 말했다. "남은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삶을 살아가겠죠."     

  혁과 나는 너븐숭이 전시관에 들려서 북촌리 학살에 대한 영상을 봤다. 이승만은‘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고 지시를 내리며 과격한 반공주의자인 서북청년단을 토벌대에 합류시키며 제 9연대를 제 2연대로 교체시켰다. 그리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북촌리 학살이 일어났다. 군인들은 북촌리 주민들은 북촌 초등학교에 모이게 한 후, 기관총으로 우선 7명을 사살했다. 그러고 남은 주민들을 학교 근처로 오십 명씩 데려가 총살시켰는데, 여자와 아이, 노인을 가리지 않았다. 생존자는 나중에 가족 시체를 수습하러 가자 마치‘무를 뽑아 놓은 것처럼’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증언한다. 

  상영이 끝나고 나는 말했다. 남은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삶을 살아가겠지. 혁은 그런 말은 실례야 라고 했다. 우리는 너븐숭이 전시관에서 십 분 정도 걸어서 북촌 초등학교에 갔다. 있지, 내가 말했다. 제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증강현실 앱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나는 운동장의 푸른 잔디를 밟으며 준구 씨에게 들은 얘기를 설명했다. 혁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나중에 독립영화 시나리오에 써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다 과거가 현실을 침범하는 거야 라고 혁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냈다. 관광객들이 앱을 들여다보는데 애니메이션 속 토벌대가 실제로 나타나서 관광객들을 어디론가 데려가고, 모두 학살하는 거야. 나는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라고 말했다. 

  운동장에는 '43 학살터'라고 쓰인 거대한 돌 옆에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혁과 나는 그네에 앉아서 흔들거렸다. 정면에는 역시 거대한 청동색 세종대왕이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책 읽는 소녀상이 있었어. 혁이 그네를 타며 말했다. 소녀가 밤마다 한 장씩 책을 넘기는데, 다 넘기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어. 나는 내가 다닌 학교에는 학교에서 뒤편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에 대한 괴담이 있었다고 말했다. 계단은 분명 14개인데 자정에 세어보면 13개가 된다고, 거기에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은 여자애에 대한 무서운 전설이 얽혀 있다고.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가 뭘까? 나는 물었다. 혁은 운동장의 초록 잔디를 가로질러 걸으며 생각한 걸 말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세계가 공포를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세계의 무서움을 감각하고 싶어 한다. 공포는 유령, 시체, 무덤 같은 죽음의 상징물들로 표현된다. 그러나 그것은 막 죽음을 떠나 삶을 향해가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술책이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다. 삶에는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다랑쉬굴


  전화로 준구 씨에게 다랑쉬굴에 가다가 오토바이가 넘어졌다고 말했다. 다랑쉬굴은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고, 가는 길은 포장도로였는데도 비포장처럼 느껴졌다. 두 개의 차 바퀴 자국 사이의 길에는 화단처럼 식물이 무성했다. 칡이 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기도 했다. 일주일 전에 내린 비가 길 한가운데 고여서 진흙탕 못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 못을 건넜다. 오전엔 흐렸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군데군데 푸르스름해졌다. 

  다랑쉬굴 근처는 질경이, 피막이, 고사리로 덮여 있었고, 나는 어디가 굴의 입구인지 찾지 못했다. 나는 잠시 묵념을 했다. 굴터의 표시석 뒤에 피어 있는 파란 물망초를 오래 보았다. 되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가 만든 바퀴 자국을 따라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아 다시 진흙탕 못을 건넜다. 진흙탕은 건너자마자 바퀴에 묻은 진흙 때문에 오토바이는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자전거나 스케이트 보드를 타다가 하도 넘어져서, 넘어지는 일이 무섭진 않거든요. 오히려 넘어질 때 뭔가 짜릿한 황홀감마저 느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아마 오토바이는 자전거와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다랑쉬굴을 보고 와서 기분이 침체되었는지..."

  준구 씨는 넘어지면서 황홀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무서움을 느끼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현실에 발을 딛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팔과 손의 살갗이 살짝 벗겨졌고 피가 났어요. 그때 나는 내가 육체를 가졌다는 실감을 느꼈어요. 그리고 나와 같은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 폭력과 공포 속에 있었다는 걸 떠올렸지요. 저 굴에 있는 사람들은 코와 눈에 피를 흘리며 숨이 막혀 죽었으니까요. 고통 때문에 손톱이 모두 빠질 정도로 땅을 파헤치기도 했지요." 

  준구 씨는 내가 공감 능력이 좋아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생각을 가다듬어 말했다. "아니요. 내가 느낀 무서움은,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압도적인 육체적 고통을 느꼈든, 나는 그것을 감각할 수 없다는 단절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그날 밤 나는 다랑쉬굴에서 5km 떨어진 게스트하우스에서 잤다. 잠들기 전에 틱이 왔다. 낮에도 틱이 올 것 같은 조짐(약간의 어깨 떨림, 눈 깜빡임)이 있었는데, 그럴 때는 잠들 즈음에 반드시 틱이 오기 때문에 나는 다인실이 아닌 일인실을 빌렸다. 잠에 막 빠져들 때의 틱은 무릎을 튕기고 발로 허공을 차며 으으, 아아, 하고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이다. 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저항하듯이. 

  밤새 나는 잠을 설쳤다. 내가 죽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늘이라도 올 것이다, 라는 생생한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곤 했다. 잠에서 깰 때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내가 신경이 쇠약해졌을 때의 증상이다. 꿈의 광대한 세계로 갔다가 다시 좁디좁은 삶으로 끼어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죽음과 닿는다. 죽음의 촉감은 미끌미끌하고 차가운 은색 생선을 만지는 것과 비슷한데 훨씬 섬뜩하다. 깨어난 후에도 나는 온몸에 묻은 비릿한 은빛 비늘을 느끼며 숨을 헐떡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혁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꾼 꿈 얘기를 했다. 안개 속에 삼각기둥 모양의 메탈릭한 표면의 검은색 건물이 있었는데, 꿈에서 나는 그 건물을 동굴이라고 느꼈다. 나는 빨려 들어가듯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안은 어두컴컴했고 출구에서 가늘게 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된다라는 강렬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빛을 향해 나아갈 수도 없었다. 바깥엔 더 무서운 것이 있다라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 꿈 얘기를 듣더니 혁은 어젯밤 약을 먹었냐고만 물었다. 나는 챙기는 걸 깜박했다고 대답했다.      

       

  혁의 어머니는 일을 하러 가면서 여섯 살의 혁에게 방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 혁은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그는 외판원이나 종교인이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면 늘 인기척을 죽이고 없는 척했다. 동네 친구가 밖에서 혁의 이름을 부르며 놀자고 소리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어머니 말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문이 밖에서 잠겼을 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일곱 살이 되고 혁은 어머니가 한 번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걸 알고 배신감이 아닌 두려움을 느꼈다. 혁는 잠긴 문 안에서, 타인이 정한 규칙 속에서 살고 싶었다. 문이 열려 있다는, 세상이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혁은 숨이 막혔다.      

  광주의 그날, 준구 씨의 어머니는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방 안에서 이불에 감싸여 있으라고 했다. 세 겹으로 감싸여 있어야 했다고 혁은 말했다. 혁의 집은 조선대와 전대병원 사이의 건물 사층이었다. 혁은 총알이 날아다니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총알을 보진 못했다. 어둠 속에서 먼저 빛이 번뜩였고, 그리고 총성이 있었다. 

  "만화영화 같았어.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으니까, 신이 났어요." 

  어린 준구 씨가 떠올린 만화영화는 <똘이 장군>이다. 똘이 장군은 기관총으로 북한에 사는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친다. 어린 준구 씨는 공산주의자들이 사람이 아니라 지능이 높고 사악한 동물이라고 믿었다. 

  마흔 즈음에 준구 씨는 촛불집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잠시 기절한다. 그 후 연행되어‘일반 교통방해’와‘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란 죄목으로 감옥에서 37일 동안 있었다.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을 한참 후에야 어긴 셈이다. 


  어릴 때 나는 내 방에서 밤새 숨죽여 있었다. 문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그 빛에 닿지 않으려고 했다. 그 빛은 문 바깥의 분노와 욕설에 오염된 빛이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밤새도록 한 말을 하고 또 했다.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버지가 죽어야 해, 이다. 내 할아버지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옷장을 마구 뒤지더니 나시 티를 꺼내서 엄마가 바람을 핀 증거라고 들이댔다. 저 애의 애비가 누구냐고, 자신은 다 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시내의 구두 가게에서 일하는 엄마를 보고 한눈에 마음에 들어 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없었고, 부유한 할아버지의 호감을 샀다는 만족감에 들떴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나 정보 없이, 단지 할아버지의 선택에 의해 나의 부모는 결혼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드러났다. 

  나는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싫어서 방에서 빈 주스병에 오줌을 쌌다. 오줌은 창문으로 버렸는데, 주택과 주택 사이의 아무도 다니지 않는 빈 공간이다. 어느 날 길고양이가 오줌을 뒤집어쓰고 신경질적인 비명을 지른 적도 있다. 방에서 오줌을 누는 습관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나의 부모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이혼했다. 

  얼마 전 43 관련 사진을 보다가 갑작스레 어릴 때 일을 떠올렸다. 그 사진은 흑백이고 군인들이 갈옷을 입은 남자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갈옷을 입은 남자들은 눈가리개를 한 채 가슴에 과녁표를 붙이고 있다. 이 사진을 보고 내가 떠올린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여느 밤처럼 아버지가 욕설을 내뱉으며 엄마에게 무언가를 추궁하다가 어느 순간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조용해졌는데,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문틈으로 너머를 바라봤다. 그때 내가 먼저 본 것은, 앞으로 내밀어진 아버지의 두 손이다. 곧이어 나는 고개를 움직여서, 아버지가 두 손으로 엄마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엄마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공포감에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영원 같은 몇 분이 지난 후 아버지는 엄마 목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때 나는 울지 않았다. 며칠 후 헬렌 켈러의 위인전을 읽다가 울었다. 그 유명한 WATER장면에서였다. 설리번 선생님의 끈질긴 노력 끝에 맹인인 헬렌 켈러가 물이 이름을 알게 되어 사물들이 각자의 이름이 있다는 걸 깨닫는 장면. 

  당시 어린 내가 느낀 감정을 지금 서른다섯인 나의 언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세상을 하나의 검은 덩어리로-그 자신마저 포함하여- 느끼는 감각을 포기함으로써 헬렌 켈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사방은 깜깜한데 어디선가 희미하고 가느다란 빛이 흘러나온다. WATER의 빛이다. 헬렌 켈러는 그 빛에 눈을 대고 세상을 본다. 검은 덩어리에서 막 분리된 두 인간이 있다. 한 명은 눈가리개를 한 채 가슴에 과녁표를 붙이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총을 겨눈다. 헬렌 켈러는 눈을 감고 말을 닫는다. 자신의 고요한 어둠속으로 영원히 들어간다.      

표선 해수욕장     

  혁과 나는 가시리 43센터에 들렸다. 센터 밖에는 정신이 좀 이상해 보이는 노인이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이 덜덜 떨면서 화단에 종이컵을 기울였다. 마치 무덤 앞에서 그러는 것처럼. 그러더니 두 번째 잔을 채워 입으로 가져갔다.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반 이상의 술이 그의 수염을 따라 흘렀다. 센터 안에는 정신이 멀쩡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아흔이 넘었고, 43 해설사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그는 43 당시에 열여섯 살이었다고 했다. 노인은 우리를 소파에 앉게 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1948년부터 일어난 일을 상세히 말해줬다. 사람들의 죽음은 아무 근거가 없었다고, 하급 군인이 죽을 사람을 멋대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표선 해수욕장에서 사람들이 죽는 동안 박수를 쳐야했다. 한 아낙이 총에 맞아 죽자 아기가 기어나와 죽은 엄마의 젖을 빨았는데, 곧 그 아기의 머리통에도 총구가 겨눠졌다. 혁은 이렇게 매일 43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괴롭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괴롭지,  아직도 꿈에 나와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계속 해설사 일을 하시냐고 혁이 다시 물었다. 얘기해야만 하니까,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니까. 노인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차 안에서 혁은 노인이 처음엔 전주 형무소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정도로 말했다가 나중엔 우리 형수만 전주 형무소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말한 걸 눈치챘냐고 물었다. 나는 노인이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 전주 형무소에서 이천 명이 넘는 사람이 학살되었다, 그 중엔 43때 끌려간 사람도 많다, 우리 동네에도 한 명이 살아 돌아왔다라고 말한 걸 기억했다. 그분이 형수였구나 라고 나는 말했다. 혁은 노인이 43을 역사적인 일로 객관화 시키다가도, 갑자기 그것을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로 줌 인을 하듯 끌어당긴다고, 그럴 때 노인이 충격받는 표정을 짓는다고 말했다. 초겨울의 표선 해수욕장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웠고, 혁은 물이 빠져서 무척 넓어 보이는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멀리서 파도가 시신들을 집어삼킬 듯 거세게 들이닥쳤다.      

  준구 씨는 빈손으로 가는 게 아니라며 오렌지 주스와 토마토 주스, 포도 주스 등이 골고루 들어있는 선물세트를 샀다. 43 해설가인 노인은 자주 와줘서, 그리고 사람들도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노인은 포도 주스를 마셨고, 우리에게도 한 병씩 마시라고 권했다. 준구 씨는 토마토 주스를 마셨고, 나는 사양했다. 노인은 저번과 거의 비슷하게 43에 대해 이야기했다. 준구 씨는 "어떻게 그런 일이" 혹은 "정말 끔찍한 일이네요"하고 맞장구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3센터 밖으로 나오자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노인이 나무 밑에서 담배를 피우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준구 씨는 담배를 피우겠다며 노인 근처로 갔다. 둘은 뭔가 대화를 나눴고, 준구 씨가 담배 한 갑을 노인에게 건넸다. 

  차 안에서 나는 "노인이 처음엔 전주 형무소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가 있었다 정도로 말했다가 나중엔 우리 형수만 전주 형무소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말한 거 눈치챘어요?"라고 물었다. 준구 씨는 몰랐다고, 내가 참 섬세하다고 말했다. 표선 해수욕장에서 준구 씨는 "여기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군요."라고 중얼거렸다. 봄 바다와 하늘이 푸르렀다. 밀물이 들어와서 모래사장이 보이진 않았다. 나는 예전에 덩케르트라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는데 이런 하늘이 배경이었다고, 해변에 엎드려 있다가 폭격 당하는 군인들과 내가 다를 게 없다고 느껴서 공황감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준구 씨는 내 어깨를 감싸며 "그래도 아무도 없는 해변보단 옆에 전우가 있으면 덜 무섭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조금 덜 무서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술자리     

  일주일 전 서울의 한 참치 집에서 준구 씨와 술을 마셨다. 술기운과 주황색 조명이 준구 씨의 얼굴에 가라앉아 있던 젊음을 다시 떠오르게 해서, 그는 내 또래로 보였다. 우리가 마신 술은 내가 제주에서 가져온 귤 와인이다. "내가 옆에 없을 때 소영 씨가 어디서 뭘 하든 누굴 만나든 상관없어요."라고 취한 준구 씨는 말했다. "그냥 나중에 할머니가 된 소영 씨 옆에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어요."      

  혁과 술을 마신 것은 한 달 전이다. 대구의 한 꼬치구이 집에서 혁과 나는 청주를 마셨다. 안주는 닭날개 꼬치, 은행열매 꼬치, 삼겹살 꼬치, 베이컨 숙주말이 꼬치, 양송이 꼬치였다. 서비스로 맑은 오뎅 국물이 나왔다. 작은 가게라서 테이블은 다섯 개뿐이었고, 우리는 가장 구석의, 옆 테이블과 너무 가까워서 얇고 하늘거리는 주황색 천으로 분리해놓은 자리에 앉았다. 오후 여섯 시의 이른 시간이라서 손님은 우리와 일본사람 두 명이 다였다. 일본사람들은 뿔테 안경을 낀 어딘지 더워 보이는 사십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남자들이었고 목소리가 작았다. 혁은 아 좋다, 일본 선술집 같네 라고 했다. 벽에는 물방울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린 파도 그림이 붙어 있었다. 나는 꼬치를 먹고 오뎅 국물을 떠먹고 청주를 사케잔에 훌쩍거리며 혁이 요즘 쓰는 독립영화의 시나리오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다. 

  혁의 시나리오에는 쉐어하우스에서 사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회사원이고 다른 한 명은 대학생이다. 둘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지만 벽 너머로 서로의 기척을 느낀다. 거실과 화장실이 하나 있고 방이 세 개인 집인데 방 하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어 있다. 영화는 초반에는 서로 단절되어 보이는 두 사람의 고독을 강조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둘이 실은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벽 너머로 회사원의 흐느낌을 들리자 대학생은 거실 티브이의 채널을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연주회에 고정시킨다. 대학생은 회사원이 바흐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 회사원은 다음날 실내화 두 개를 사서 현관에 둔다. 겨울이라 거실 바닥이 차갑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마무리는 두 사람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거실을 비추며 페이드 아웃. 다 좋은데 사건이 너무 없는 것 같다고 내가 말하니까 혁이 독립영화니까 괜찮아 라고 했다. 나는 베이컨 숙주말이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거실이 상징하는 건 인터넷 같은 거야?

   아니, 그보다 심원한 것...

   제노사이드는 어떻게 생각해? 인간의 본질적인 단절을 의미하잖아.

   제노사이드 역시 인류와 연결되어 있어.

   어떻게? 

   단절된 듯이 보이는 두 인간이 소통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나는 어떻게? 라고 또 물어보려다 그만뒀다. 대신 어떤 사람이 제노사이드가 있는 방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을 상상했다. 제노사이드에게 어떤 곡을 틀어줘야 하나 생각하며 오뎅 국물을 마셨다. 나는 퉁퉁 부은 오뎅을 오물거리며 혁과 준구 씨도 나라는 거실을 통해 소통해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느새 가게는 빈 테이블 없이 사람들로 꽉 찼고 테이블마다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는데 그중에는 일본어도 있다. 나는 잠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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