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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밤

조금 소란스러워졌을 뿐인데

by 이루고


-"자기 전에 우리 인사하자. 약속하는 거야!"

-"알겠어."


-"아, 뭐야. 자기 전에 인사하기로 했잖아."

-"어.. 어.. 그냥 누워있었는데... 그게에 아니ㄱ..."




우산을 접었다 펼쳤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탓일까 아님 염증 수치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안도감에 줄여버린 스테로이드 탓일까. 유난히도 관절은 삐그덕거렸다. 관절통은 어쩐지 해가 뜨면 숨어 있다가, 달이 뜨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하루 종일 신경 쓰이던 무릎은 결국 저녁식사를 마친 뒤, 의자에서 일어날 엄두조차 못 내게 만들었다. 무릎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손바닥을 메우는 뜨거운 온기에 씻지 말까 하는 유혹이 일었다. 이내 아침에 바른 선크림이 떠올라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 드디어 편히 누울 수 있겠군."

젖은 회색 수건을 바구니에 던지고 선, 털썩 침대에 누웠다. 굽어 있던 무릎이 쭉 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도 천천히 풀려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이유를 찾아보려 눈을 감고 지난 하루를 재생했다.


'디카페인이라고 너무 방심하고 마셨나?'

'한 알도 꽤 크지... 역시 약 때문인가?'

이유를 찾던 생각의 꼬리는 잊고 있던 그날 밤의 재생 버튼에 닿았다.


같은 방, 같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2년 전의 나.

새벽 두 시, 세시... 아침이 오지 않을 것은 밤의 반복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통증은 온몸에 들러붙어 마음에도 지울 수 없는 끈적임을 남겼다. 하는 거라곤 고통의 부위를 눌러보는 일 밖에 없는 사람 같았다. 언젠간 잠이 들겠지 싶어 오지 않는 잠을 기다렸다.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가 깨어 휴대폰을 들여다보면 다섯 시.


"오늘은 그래도 두 시간이나 잤네.

매일매일 고통에 잠식된 삶,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밤이 되면 찾아오는 통증은 나를 잊지 않고 찾아오고야 만다. 세 시간씩 자는 밤에 익숙해져 버리듯, 이젠 스르륵 잠드는 밤에 익숙해졌다. 그가 나를 살린 줄 모른 채, 살아냈던 밤들이었다. 그의 소란스러운 잔소리는 어쩐지 아주 오래전부터 불러주던 자장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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