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의 탈영 아닌 탈영인 듯 나도 헷갈려
대전실업전문대학을 군 생활 중에 다닐 때는 야간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학교를 갈 때는 군무원들의 퇴근 버스를 타고 대전역으로 가서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고 환승을 했다. 지금처럼 대중교통 환승제도가 잘 되어 있지 않았지만 학교를 간다는 내 마음에 하루의 피곤을 담은 발이지만 발걸음은 경쾌했다.
책상에 앉아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으며 미래를 꿈꿀 수 있고, 학교 동기들과 쉬는 시간 삼삼오오 수다도 떨 시간이 있으니까 나에게 군 생활과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군복을 벗고 사복을 입고 책상에 앉은 내 모습이 대견했다.
이렇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등교하는 길과는 너무나 힘든 길이다.
나를 위한 부대 복귀 차량도 없고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걸어 내무반까지 걸어와야 했다.
이때는 동기도 없고 친구가 없다. 오직 나를 위한 나의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별빛들, 길을 걸으며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게 처음이었다.
여군이 되기 전엔 부산에서만 살았고 서울 육군본부에 있을 때 서울이라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전 신도안으로 부대를 이전하고 야간에 대학을 다니면서 보게 된 별빛은 딴 세상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빛났다.
별빛을 등대 삼아 그렇게 부대로 복귀하던 어느 날,
행사장에 대기하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헌병대장의 운전병이 밤길에 혼자 걷고 있는 나를 보며 차를 세웠다.
부대로 복귀 중이니 타라고 한다. 나는 잠시 주춤하였으나 이내 차에 올라탔다. 밤길에 무섭기도 하고 시간을 절약하여 얼른 내무반에서 쉬고 싶은 마음에 사양할 시간도 없이 승차했다. 걷기로는 긴 시간이었지만 차로는 몇 분 안에 내무반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후로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마지막 버스를 타고 온다는 걸 알게 된 운전병은 자주 나를 기다려주었다. 헌병대장님 차량은 육군본부 제2 정문에서 확인도 없이 무사통과이니 거침이 없었다. 헌병대장님 차량뿐만 아니라 때로는 부대로 복귀하는 다른 차량도 한 번씩 태워주기도 했다.
부대차량이 아니고는 그 시간에 부대로 들어오는 차는 없었다. 지금의 마음이라면 남의 차를 그렇게 쉽게 타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그 깜깜한 밤에 혼자 부대 앞으로 걷는 그 심정을 이해한다면 그 어떤 차라도 탈 것이고 누구라도 얼른 그 어둠을 벗어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때 생긴 에피소드 하나 소개한다. 때는 바야흐로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바람에 봄비가 세상을 핑크빛을 물들이며 흩날리고 있었다.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몸은 피곤하고 어디 내 몸과 마음을 잠시라고 내려놓은 싶은 날이었다. 때마침 헌병대장님 운전병이 그날따라 내가 타고 오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 정류장 근처에 비상깜빡이를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냉큼 그 차에 올라타고는 나를 위해 준비한 음료수를 마시며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시간 되면 동학사로 잠시 드리이브 다녀올 수 있냐고 물었다. 잠시 당황한 기색을 하더니 어 무전만 잘 받으면 되고 지금은 별다른 일이 없으니 다녀오자고 답을 한다.
어 이것 봐라, 그냥 뱉은 말이었지만 내심 그리해 주기를 바랐다. 봄밤에 운전병과 나는 데이트하는 연인이 되어 버렸다. 상대를 좋아하거나 좋아질 거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 상황이 그리 만들었다.
“아니, 못 가.”
라고 이야기하면 아마 나는 그날 그 차에서 내렸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그날 나는 이 세상의 분위기란 분위기에 다 젖은 듯했다.
차가 서서히 동학사 근처로 다다르자, 다다르기 전에 이 말을 먼저 하자. 참 동학사는 육군본부가 있는 신도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만약 12시 전에 복귀하지 않으면 그건 탈영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사치의 끝을 내달리고 있었다.
이제 동학사 주차장 입구 쪽으로 차가 지나간다. 그 사이 바람에 불어 다시 벚꽃이 차 앞 유리에 쏟아진다. 마치 꽃별이 쏟아지는 느낌이다. 하늘에는 별이, 땅에서는 꽃별이 내게 안긴다.
‘아,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그 시간만큼은 내가 야간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자유를 무한정 누릴 수 있을 때 그 자유를 공기처럼 느끼지 못한다. 하루 종일 명령과 근무로 지내는 군인에게 밤의 자유는 공부를 선택한 나에게 주는 기쁨이자 사치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의 운전병은 어찌 잘 지내는지, 그때 내게 베풀어 준 고마운 마음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용감했던 그대와 나의 청춘의 일탈에 잠시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