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시작되었을 때 결말은 정해졌다.

첫 장면의 중요성

by QQJJ

모든 이야기는 첫 장면에서 결말이 정해집니다. 이별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성이 처음 나온다면, 그 이야기는 다시 사랑을 되찾는 남성이 나옵니다.아니면, 단 하나의 사랑의 싹조차 나지 않을 황무지 같은 남성이 되거나요. 의문의 존재가 사람들을 해치는 모습이 처음 나온다면, 마지막엔 그 존재가 사라지거나 세상을 장악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안톤 체호프의 거대한 총' 이라고 부릅니다. '체호프의 총'은 희곡에서 나오는 이론인데, 1막에 총이 등장했다면 2-3막에선 반드시 쏴야한다는 뜻입니다. 던진 떡밥을 반드시 회수하란 것이죠.
거대한 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실, 이야기 전체도 그렇습니다. 처음 관객을 이야기로 이끄는 캐릭터와 사건은 결국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니깐요. 그래서 잘 만든 이야기는 처음과 끝이 맞닿아있습니다.



시나리오 심사위원들의 방식

이 사실을 이야기를 써본 분들은 다 알고 계십니다. 시나리오 공모전은 보통 1,000편이 넘는 작품이 투고됩니다. 그걸 읽는 심사위원은 10명? 많아야 두 자릿수 입니다.
그들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맞닿아있다는 것을 시나리오 심사에서도 사용합니다. 바로 처음과 끝만 먼저 읽는 것이죠.
처음 제시한 캐릭터와 사건이 끝 부분에서 잘 해결되었다면, 중간으로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걸러지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과 끝의 이야기가 다르다. (시작은 사랑 이야기였는데, 마지막엔 스릴러가 되어있다 / 첫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도저히 몰입할 수 없는 도입부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말부 (영화, 드라마의 첫 10-15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작품을 볼 지 말 지 결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수준은 시놉시스에서 이미 알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까지 읽지 않아도, 시놉시스만 봐도 이야기의 구조는 보이니깐요. 가끔 시놉시스와 시나리오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시놉시스는 너무 밋밋한데, 시나리오는 기깔나게 쓰는 정말 드문 경우죠. 시나리오가 정말 기깔나지 않는 이상,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사실 시나리오를 기깔나게 쓰면서, 시놉시스를 못 쓰는 경우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놉시스와 시나리오가 다르다면, 공모전 통과가 어렵기도 합니다.
상위기획서와 세부기획서가 완전히 다르다면, 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순 없으니깐요.



사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근데 꼭 이야기만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삶도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이야기가 삶을 모방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ㅎㅎ)어릴 적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랑을 찾아 헤맵니다. 어릴 적 못 먹고 자랐던 사람은 죽을 때까지 식욕의 흔적이 남습니다.유년 시절, 명예로운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은 명예를 위해 살거나, 명예가 아닌 다른 가치를 찾기 위해 살아갑니다.



삶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첫 장면에서 시작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 그게 어쩌면 우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문득 적고 보니, 너무 운명론적인 말만 적은 것 같네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온 아이가 악독한 살인마가 된다는 다소 악독한 예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근데, 결말은 사실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출발선만 정해진 것 뿐.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저는 이야기가 즐거운 이유는 처음과 끝 보다는 중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정해진 상황과 환경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고, 저항하고, 사랑하는 지. 바로 그 부분입니다. 이해를 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요약할 땐, 처음과 끝만 봐도 됩니다.다만, 즐기기 위해선 중간을 봐야하죠. 저는 삶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정해진 처음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그 중간 과정을 즐기는 것이 메인 디쉬랄까요?처음의 사건은 던져졌고, 결말도 얼추 보입니다만. 그 결말을 쟁취하고 선택하는 것은 결국 주인공의 손에 달렸습니다.



바로 삶을 살아가는 나와 당신입니다.
당신의 선택이 삶을 더욱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어 주길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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