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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버더레스 Sep 30. 2022

바라보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며칠을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잔병치레도 없었고 아프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직장에 한 달을 채우고 나서 몸이 힘들다고 저에게 소리쳤습니다. 소화가 안되고 체하더니만 이젠 몸살이 오고 몸살이 오더니만 인후통과 구내염이 오고 머리도 아프며 수포도 올라옵니다. '이 놈이 이렇게 소리 지를 때가 있었나?" 속으로 생각하며   

일주일 동안 병원을 총 6곳을 다녔습니다. 약도 총 6번을 지었고요. 주사도 6번은 맞았을 겁니다. 

휴가를 내면 이 상황에 제가 지는 것 같아서 휴가도 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그리 힘들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즐겁게 일을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 리듬에 몸이 안 따라주니 더 짜증이 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정신을 못 차리더니 하나하나 삐그덕거리며 소리를 내더라고요. 처음엔 가볍게 무시해주긴 했는데 소리가 여러 군데에서 들리는 걸보고 모든 걸 멈췄습니다. 

아프다가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며 다시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 싸기 시작합니다. 업무 능률은 오르지 않지만 "하고 있다"라는 안도감은 들었죠.

아픈 와중에 계속 결정을 하려니깐 "이성"과 "판단력"이 겨울철 한없이 말라버린 뒷동산의 낙엽을 '와그작 와그작' 밟는 것처럼 깨졌습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한다는 것은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역량과 힘이 투여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이제는 점점 "새롭다"가 적응이 힘들어지는 게 오는 걸까 싶다가도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다 잡습니다.


적응이라는 단어가 말이 좋아 적응이지 "영혼"과 "신체"를 "새로운 틀에 끼워 넣다"가 적응이 아닌가 정의해봅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사실 적응을 하며 살아오기도 했지만 적응하는 환경을 변화시키면서도 살아왔습니다. 두 개가 극단에 있어서 그렇지, 다른 동물은 적응을 하기 위해 꼬리도 자르고 신체도 변화하지만 인간은 아예 환경을 변화시키면서 살아왔죠.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렇게 변화시키기 위해선 많은 질타와 낯선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선택압을 받습니다. 

어렵네요. 그냥 적응하며 사는 게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정말 새롭게 만들던가요.

우리가 바라보는 순간들은 이렇게 많은 선택 안에 있습니다. 

결국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정말 단순한 명제의 yes or no일 뿐 큰 의미는 아니기도 하지만 멀리서 바라봤을 땐 인류사를 바꿀만한 선택이 될 수도 있겠죠?


당신의 적응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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