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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버더레스 Nov 19. 2022

코 끝을 채우다

고립감이 주는 안정감

정신없이 많은 차들이 날벌레처럼 내 앞을 스쳐 지나가고  

나는 입에 날벌레가 들어갈까 "암!"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코 끝은 시원했으나 불안감에 고개를 들고 숨을 깊게 들이쉬진 못했다.

나에게 서울이 그러했고 은행이 그랬다. 

안 맞는 옷을 오랫동안 입었던 것일까? 

몸은 잔뜩 굳어있을고 다물었던 입은 벌려지지 않았고 뻑뻑하게 굳어버린 뒷목은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시원한 늦가을의 숨결을 느껴보려고 떠난 여행은 

사방이 어둠과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정선 사북 

자연의 고립감이주는 안정감을 원했던 거겠지 


"너무 서두르지 마, 천천히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줬던 친구의 말이 맴돌았다.


빠르지 않았고 역동성은 없었으며 산과 나무는 계속 그 자리에만 있었으며 

사람은 모두 동화 속으로 숨어들었고 수십 년은 족히 넘은 집들은 우두커니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코 끝에 스치는 시원한 가을을 크게 한숨 두 숨 들이켰다.

고립은 되었지만 자유로웠고 많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안정감 있었다.


그날은 아름다운 해 질 녘 갈대밭을 가기 위해 시간이 없어 급하게 올라가던 발걸음이었다.

다 오르면 해가 질 거라는 관리인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우두커니 산 길에 발을 멈추고

고민하다.  

털레털레 가던 길을 내려와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거라며 

다른 샛길로 10여분을 걸어가고 그곳에서 무거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가을과 숲이 나를 위로하듯 

아름다운 꽃밭이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도 

우연하게 더 깊은 행복 코 끝을 채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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