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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버더레스 May 17. 2024

망루 : 무용함에 대해



제주 비양도에는 작은 망루가 있다.

조선 세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봉화로 활용됐던 곳이라 한다.

수백 년 간 자리를 지켜오던 봉화는 1800년대 말 망루로 활용되며 왜구의 침입이나 통신수단으로 활용되었고 현재는 우두커니 관광객들의 전망대와 포토스폿으로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비양도의 텐트절경은 이곳에서 촬영되는데 어떻게 보면 130여 년의 세월의 지난 지금도 

역할은 다르지만 비슷한 모양새로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바라봐주게 하고 있다.


망루는 현무암을 쌓아 만들었는데 하나하나 어떻게 쌓았는지 모르지만 꽤나 견고하고 튼튼하다. 

현무암들 속 안에는 어떤 게 숨어있을까 궁금하다. 생각지도 못한 옛 무덤이 발견될 것 같은 상상을 해본다. 


작은 망루는 수십 개의 야영객들을 장승처럼 보살피듯 바람을 막고 앉아있다. 

낮에는 관광객들의 전망대가 되어주고 저녁엔 야영객들의 지킴이가 되어주는 망루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망루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자리를 잡고 캠핑을 시작했다. 

뜨거운 햇볕과 강한 바람을 조금 막아주겠다 싶어서였다. 

가끔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에게 기대고 싶은 순간이 오는데 

텐트를 칠 때 그런 생각이었을까? 바람이 너무나 매서웠기에 잠시 망루 근처로 피해 들었다. 


그렇다고 텐트가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잠시 비를 피해 가는 나그네이고 싶었나 보다.

바람이 잦아들고 망루에서 조금 더 먼 자리로 텐트를 한 걸음 앞으로 옮겼다. 

그리곤 그곳에서 다시 자리를 만들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바람은 불었지만 버틸만했다. 


내가 떠나도 내가 자리를 옮겨도 장승처럼 보살펴주는 망루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다.

아마 내가 환갑이 넘어서도, 혹은 죽어서도 그 자리에 있겠지?라는 상상을 하며 망루를 지긋이 쳐다본다.

인생도 원래의 하려는 일과 목적이 달라졌다고 해서 존재와 가치가 무용하지 않다는 것을 

망루는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처음과 다르다고, 계획과 다르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걱정할 것도 없다.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찾아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일 수도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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