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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버더레스 Jun 22. 2024

처마



6월의 어느 날, 이제 여름이 한걸음 다가 왔을 때 쯤일 겁니다.

처마 밑에 앉아 빗소리를 듣습니다.

가끔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는 가만히 앉아 나뭇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걸 지켜봅니다.

마치 세상이 흔들리는 듯 빗방울을 쉼없이 떨어지지만 사실 변한 건 없습니다.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안정감에 깊은 들숨을 마십니다. 


빗방울이 땅에 다소곳하게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 잎사귀를 때립니다.

작은 풀잎의 온몸이 흔들리지만 생각보다 굳건하게 땅에 박혀 있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오려나 봅니다.

비가 매일 오는 건 싫지만 이렇게 가끔 오는 건 나름 행복한 소식입니다.


비가 오면 들뜬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그냥 큰 걱정 없이 모든 것들이 평온해지죠

사실 사는 게 급할 게 없는데 너무 조급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가 커피 한 잔 마시며 뒤돌아봅니다.

끄적끄적 쓰지 않던 다이어리를 다시 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입니다. 

이제는 무용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바위틈사이에 심어있는 풀잎과 이름 모를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죠.

빗물을 머금은 웅덩이가 차오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합니다.

풀내음 가득한 길을 걷고 싶어 근처 공원으로 나왔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설악산의 비선대 가는 산책길을 가고 싶지만 당장은 여의치 않네요.

가만히 봐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색깔도 음영도 향기도 사람도 보입니다.

오늘은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보고 싶은 비 오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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