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좁지만 언제든지 남산을 오를 수 있는 후암동이 좋다.
집값이야 어디든 비싼 게 서울이고 원하는 평수로 살기 힘든 게 서울이니깐
작은 원룸이라도 침대에 몸을 누이고 휴대폰으로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뒤적일 수만 있다면
그리 문제 될 건 없다.
아, 뭐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꼬마주방도 있으니 밥걱정도 없다.
은행을 다닐 때 혼자 33평에 살았다. 청소가 얼마나 하기 힘들던지 구석에는 먼지가 가득했지만
후암동 원룸은 20분이면 가장 깨끗한 집으로 만들 수 있다.
오늘은 공기가 좋아서 파랑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은 남산타워를 보며 터벅터벅
은행나무 길을 걸었다.
'처음 이곳에 왔던 때처럼 은행나무에 물이 들어가고 있네' 은행잎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한번 지었다.
그리 달라진 것 없는 하루를 보내며 그리 달라진 것 없는 일 년이 지났다.
집은 좁지만 마음은 좁아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던 일 년인데
내 몸 어디쯤 나잇테가 생겼나 하며 거울만 뒤적인다.
후암동 108 계단을 매번 운동삼아 뛰어올라가다가 무심코 지나갔던 계단에게 미안해
한걸음 한걸음 좌우를 살피며 올라가고 있다.
언덕집 주인이 심어놓은 화단에 붉은 맨드라미가 가녀린 줄기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맨드라미 그녀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숨 한번 쉬고
나머지 계단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