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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Apr 01. 2016

허니버터칩 솔직 리얼 후기

기껏해야 과자 1봉지 주제에 너무 구하기 힘들었다


길을 걷다 부딪치고, 누군가 우산을 씌워 주고, 우연히 눈이 마주치고. 첫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란 특별할 줄 알았는데, 상상도 못했었다. 고작 그런 걸로 첫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온 국민이 허니버터칩에게  첫사랑을 시작한 것도 한순간이었다. 대단한 마케팅이나 맛이 아닌, 누군가의 추천! 허니버터칩은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허니버터칩을 먹어보려다보니, 기껏해야 과자 1봉지 주제에 너무 구하기 힘들었다. 어디에나 있는 과자라 사람들은 의욕에 불타올랐고, 재고 부족 사태는 더 욕망을 불태웠다. 동네 편의점을 무작정 돌고 도는 ‘발품족’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친해져서 미리 예약하는 ‘예약족’, 편의점에 물건이 배송되는 시간과 배달차를 용의주도하게 따라다니는 ‘정보족’ 도 있고, 감자칩을 사서 꿀과 버터를 둘러 허니버터칩을 만들어 먹는 ‘DIY족’, 이 기회에 돈을 벌려는 ‘허니버터칩 미끼족’ 까지 등장했다. 세상은 허니버터칩을 먹어본 사람과 먹어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열심히 허니버터칩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인터스텔라 열풍이 막 끝나가고 있었는데, 나에겐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이 필요했다. 날씨는 추워지고, 세상은 살기 팍팍했다. 더 이상 책도 영화도 만화도 재미없어서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갔다.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아야지’ 라는 심리도 한 몫 했다. 맛도 궁금했지만, 허니버터칩을 찍어 SNS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편의점을 몇 군데나 돌았지만 허니버터칩은 없었다. 고민하다 인터넷의 ‘허니버터칩 구입 후기’를 읽고 읽어 광화문 1번 출구 앞 GS25에서 치트키를 시전했다. ‘아저씨 허니버터감자칩 있어요?’를 2번 묻자, 못 들은척하시던 아저씨께서 조용히 ‘다른 손님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리세요. ‘ 라며 속삭였다. 손님들이 모두 나가자 차분하게 창고에서 꺼내오셨다. 예약제라 1인 1봉지라고 말하실 때는 정말이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감개무량했던 허니버터칩의 첫 경험은 마치 첫사랑을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내 환상과 상상보다 훨씬 더 초라했다.   


 칼로리와 나트륨이 다른 감자칩보다 높았으며, 아카시아 꿀과 프랑스산 고메 버터를 썼다지만 실상 함량은 0.01%였다. 99.9%는 조미료 맛이라는 소리.(아,2년 동안 조미료 맛을 연구하셨구나…….) 모든 국산과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과대와 질소 포장 역시 엄청났다. 곧 허무함이 찾아왔고,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또 없어졌다. GS25 앞 허니버터칩을 들고 있는 나는 너무 작았고, 여전히 먹고살 길이 막막한 인문대생일 뿐이었다.


 2014년도에 난 많은 것들을 외면했다. 세월호 안 고등학생들을 외면했고, 경주 리조트 안 신입생들을 외면했다. 전세와 월세는 치솟았고 청년 실업률은 7.9%가 되었는데, 영어 공부만 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졌는데,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게 하려고 목숨 걸고 봉사한 의료진들까지도 철저하게 입국을 막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것들을 짓밟는 순간이었다. 결국 내가 원한 건 새로운 맛으로 시작되는 판타지였다. 허니버터칩에 대한 열정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줄 것 같았다. 이 모든 열정에서 깨어나면 현실을 마주할까 두려워 더 열심히 허니버터칩에 열광했었다. 2014년에 허니버터칩은 편의점 판매 1위를 달성했다. 이제 곧 2015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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