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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Mar 31. 2016

속 깊은 봄

봄나물은 약이다

한 상 가득 밥상이 차려졌다. 콩밥과 누런 쑥국을 시작으로 냉이 무침, 봄동 그리고 쌈장. 나는 나물보다는 고기를 좋아했다. 매일 새벽부터 나가서 쑥을 캐오는 아빠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또 그걸 요리해서 상을 차리는 엄마도 미웠다. 입을 툭 내밀고 ‘우리 치킨 시켜먹으면 안 돼? 예전에 엄마가 일 할 때는 매일 저녁마다 치킨시켜줬잖아." 한 마디 하고 나면, 아빠는 떨떠름한 얼굴로 “봄이니까 봄나물을 먹어야지. 제철 음식이 몸에 좋은 거야” 라고 날 몰아치곤 했다.      


엄마는 원래 일을 했다. 우리 가족은 아빠도 일을 하고 엄마도 일을 했다. 저녁이 되면 항상 간편한 치킨이 차려졌다. 양념에 밥을 비벼먹을 수도 있었고,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매번 맥주 한 잔을 걸치셨다. 그러고나면 아빠는 호탕하게 용돈을 챙겨주셨고, 엄마는 화려하게 춤을 추었다. 엄마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우리 가족은 절대 치킨을 사먹지 않게 되었다. 식사시간이 한참 지나도 엄마는 느릿느릿 요리를 했다. 내가 아무리 치킨을 보채도 묵묵히 요리만 했다. 식사시간이 늦어지는 걸 보다 못한 아빠가 봄나물을 캐오기 시작했다.      


밥상이 차려졌다. 이번에는 유채 샐러드가 주인공이었다. 더불어 콩밥과 냉이된장국도 빠지지 않았다. 이것도 아빠가 새벽에 뒷산에서 캐온 거라고 했다. 나는 아무리 제철 음식이 좋아도 그렇지, 봄 내내 나물만 먹게 할 셈이냐고 대들었다. 엄마는 소리 없이 뒤 돌아섰다. 엄마의 등이 왜인지 미안해 보였다. 아빠가 나를 눈빛으로 나무랐다. 그 날은 저녁을 안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나물 캐러 가는 아빠를 쫓아갔다. 내심 못 캐오게 할 속셈이었다. 봄의 산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만났고, 벚꽃이 봄의 눈처럼 흩날렸다. 산을 올라가니 기지개를 펴면서 핀 개나리꽃부터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뽐내는 나무들까지 싱싱했다.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보던 나는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 사이에 아빠는 작은 움직임으로 쑥을 캐기 시작했다.   

  

수풀 더미 사이에 쑥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빠가 골라주는 것만 캤는데, 나중에는 내 눈에도 캐야 할 쑥이 보였다.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은 쑥과 모양이 똑같은 독초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향을 맡아봐야 한다. 쑥은 익히 아는 고소한 향이 나지만, 독초에서는 쓴 향이 났다. 쑥을 캐면서 아빠에게 말했다. 이제 치킨 같은 고기 좀 먹고 싶다고! 벌써 나물만 먹은 지 일주일째라고 투덜거렸다. 아빠는 봄나물에 무슨 원수가 졌길래 새벽마다 캐러 오냐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쏘아붙이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빠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묵묵부담이다 저쪽에서 아빠가 대답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쑥 향과 버무려져서 들리는 아빠 목소리는 경건했다. “봄나물은 약이다” 뒤이어 이어지는 말은 첫마디는 분명하게 들리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끝까지 또렷하게 들으면 안 될 거 같은 기분. “엄마가 몸 안이 아파. 그래서 약이 되는 봄나물을 먹어야 해. 우리 그냥 조용히 먹자” 우리 가족의 봄이 부서질까 보아 아빠는 조심조심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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