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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Dec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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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 선택을 온 힘을 다해 견뎌내는일

삶은 롤러코스터라고 생각한다. <포레스트검프>에서는 삶을 초콜릿 상자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롤러코스터였다. 부모님은 나의 결심을 두려워하신다. 황당무계한 일도 결심하면 해버리기 때문이다. 직업도 두 번 바꾸고, 학교도 두 번 다닌다.


우리나라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 간다. 대학을 졸업하면 몇 년 이내에 취업을 해야하고, 이직을 해서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결혼을 한다. 여기에 맞는 사회적인 나이도 있다.


나는 이 공식에서 벗어났고, 그래서 알게 된 사실들도 많다. 일단 적정 나이에 안 맞춰도 삶은 길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부분부터 심리적인 부분까지 책임은 막중하다.


국문학과 전공자로 살아갈 때는 '하고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국문학과는 적성에 딱 맞았다. 적성에 맞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은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일이다.


나는 정말 게으르다. 하루에 한 장씩 읽어서 책을 완독하는 계획은 작심삼일만 하다 포기해버린다. 일은 또 어찌나 미루는지 항상 벼락치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성적부터 업무 성과까지 중상을 유지했다. 중요한 회의 준비를 미루다가 즉석에서 발언한 아이디어가 상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머리가 좋은 줄 알았다.


반면, 가치관이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하다'로 바꾼 간호학과에서는 다르다. 적성 대신 안정성을 선택한 대가는 부지런함이었다. 밤새 의학용어를 외워서 가도 70점이고, 특히 간호술기를 하는 실습은 악몽같았다. 남들은 아침에 외워서 해도 된다는데, 내가 아침에 외우는 날은 실습 시간 내내 혼나는 날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멍청이라는 걸 알게됐다.


문제는 내가 대학을 두 번 다니게되면서 짊어져야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부지런함 뿐만 아니라 몇 천만원의 대학 등록금도 책임져야한다. 간호학과를 졸업해서 간호사라는 직업에 적응하지 못하면 갈 곳이 없었다. 이미 국문학 전공자로서는 4년 동안 경력 단절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현실은 내가 간호학과가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간호학과에 적응 못하는 내 자신을 볼 때마다 '이렇게 답답하면 호흡이 곤란해져 공황장애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독서실에서 새벽2시까지 매일 공부하면 딱 맞는 성적이 나왔다(중하) 직업을 바꾼 후부터 내 삶에 요행 따위는 없다. 그러다보니 벼락치기보다는 미리미리하는 건실한 사람이 됐다. 간호학과에 적응을 잘할 때는 멀쩡하지만, 성적이 떨어지거나 수업시간에 혼나기라도 하는 날은 하루종일 가슴 속에 돌덩이를 넣은 것처럼 자책하면서 찌그러져있다.


어려움에 대해 주변에 말하지도 못한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물어올 때마다 '그럭저럭 할 만하다. 인생에 쉬운 게 어딨냐'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한심하다'라는 눈빛을 받게 될 것만 같다.


내가 선택한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후회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다보니 정말 그렇게 생각이 되고 적응이 된다. 죽을만큼 노력하는 일이 그럭저럭 할 만 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자신이 한 선택을 온 힘을 다해 견뎌내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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