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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Jul 04. 2016

놈코어 비닐우산

제일 저렴한 우산주세요.

하늘에서 비가 떨어졌다. 이처럼 갑자기 비가 떨어질 때는 비닐우산이 간절해진다. 우산이 내 가방에 없어서 그렇겠지. 비닐우산은 갑자기 살 수 있는 우산 중에 가장 저렴하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점포들이 하나 둘 비닐우산을 팔기 시작한다. 분명 껌을 팔고 있었는데, 우산을 팔기 시작한다. 편의점도 비닐우산을 매장 밖으로 꺼내놓고 판매를 시작한다.     


비를 맞고 걷던 사람들이 뛰기 시작한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기 때문. 비닐우산 앞으로 몰려와서 한숨을 날린다. ‘오늘 우산 가져오려고했는데...!’ ‘아 왜 갑자기 비가 와서는......’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우산 주인에게 말을 건다. “제일 저렴한 우산주세요.” 점포상은 우산꽂이에서 비닐우산을 꺼낸다. 꼼꼼한 척 펴보고는 손님에게 건넨다. “3000원입니다”     


이처럼 사서 모은 비닐우산이 벌써 집에 다섯 개이다. 비닐우산 다섯 개가 현관에 일렬로 놓여있다. 비닐우산은 알고 보면 예쁘다. 비닐우산을 통해 보이는 구름이 날카롭다. 비가 우수수 떨어지는 날에는 비닐 사이로 사람들이 보여서 시야확보에도 좋다. 은근히 튼튼한 비닐은 비와 나 사이에서 방패가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비닐우산은 가성비가 탁월한 아이템이다.     


가성비가 탁월하기 때문에 이곳저곳에 놔두고 오기도 좋고, 빌려주기도 좋다. 다섯 개의 비닐우산이 회사에도, 친구에게도 있다. 장마철만 되면 비닐우산 하나로 모두가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은 예쁜 우산이 아닌 비닐우산만 가질 수 있는 느낌이다. 왜인지 예쁜 우산을 친구가 빌려달라면 빌려주기 싫다. 예쁜 우산을 가게에 놓고 오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면서 내기억력을 자책하게 된다.     


비닐우산을 다시 본다. 은근히 기특한 아이템이 분명하다. 뛰어난 가성비와 어디든 놓고올 수 있는 무난함은 '화려함'보다 '실용성'이 이슈가 된 요즘의 태세와 닮아있다. 따져보면 지금의 전반적인 놈코어 유행은 예쁜 우산이 아닌 비닐우산을 위한 거 아니겠나. 가성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비닐우산같은 아이템을 사랑한다.     

  

일단 2016년의 30살은 1995년도의 30살과 많이 다르다. 1995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이 된다고 가정하면, 늦어도 23-25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과거의 30살은 돈도 어느정도 모았고, 직장에서 자리도 잡은 그런 어른이다. 하지만 2016년의 30살은 어떨까? 과도한 스펙경쟁과 청년실업으로 인해 30살 취준생도 꽤 많다. 운 좋게 취업을 했다해도 30살은 아직 신입연차이다. 결혼도 덩달아 늦어진다.      


우리들이 비닐우산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이와 닮아있다.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을 따질 수밖에 없게 된 이유. 월세방에 살면서 스파브랜드 옷을 입고,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졌다. 20대를 메인 타깃으로 한 패션, 뷰티, 리빙 브랜드들이 이를 놈코어라고 포장했다. 젊은 세대에 맞는 마케팅을 시작한 것. 그렇게 놈코어와 실용적인 비닐우산이 쿨해지는 세상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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