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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Jun 07. 2020

슬기롭게 포기하는 방법

20년 6월 6일 방송에서 이효리는 말했다. 제주 해녀들의 규칙이 있는데, 한 번 잡다 놓친 전복은 절대 다시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전복이 더 바위에 단단하게 붙어있기 때문이다.  한번 잡다 놓친 전복을 다시 잡으려 하다가는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나는 포기를 잘 한다. 글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국문학과를 갔지만, 그건 세상에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지 알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특히, 재미있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정말 없었다. 혼자 창작해내기가 힘들어서, 여러 작가 작품을 많이 봤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붙여서 쓴 내 이야기는 누더기 같았다. 


학생 때, 전공을 살려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일이 기자였다. 기자는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세상에 널린 이야기를 발굴해서 그대로 쓰면 그만이었다. 숨겨져있는 사람을 인터뷰로 주목받게 만드는 일이 좋았다. 소외되어있는 이야기를 주목받게 하는 일이 좋았다. 


그리하여 바로 소설가라는 오랜 꿈을 포기했다. 과거에는 뚝심 있게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미덕이자 성공의 요건이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보면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한 가지 일에 큰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1만 시간 동안의 학습과 경험을 통한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 반복적 성격이 강한 일이라면 말콤 글래드웰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콘텐츠 작업이 과연 단순 반복적일까. 이야기를 만드는 소설가를 오래 붙잡고 있다가는 내 생명이 위험해질 것 같았다. 1만 시간 동안 이야기 훈련을 하면서 갑자기 등장한 천재들을 내가 시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고, 그러다 표절을 하는 괴물이 되면 어쩌나 했다.


소설가를 포기한 것에 대한 약간의 후회는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 생각을 하면 금세 머릿속이 끔찍해진다. 조금 더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글을 쓰고 싶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처럼 현실의 이야기를 묶어내고 싶다. 한 번 놓친 전복을 억지로 잡으려고 하지 말고, 다른 새로운 전복을 잡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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