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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Sep 15. 2020

밀린 구몬같은 하루

욕심이 많아서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나쁜 습관이 있다. 24시간을 깨어있어도 못 지키는 계획을 짜고나면, 아침에 뜨는 해를 밀린 구몬학습지를 받는 기분으로 보게 된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앞으로 2주간 사이버강의를 들어야하는 아침이다. 그렇지만, 실습 끝나고 한 주 쉬는 동안에 해야할 것들이 많았다.


컴퓨터 자료 정리, 휴대폰 자료 정리를 비롯해서 책장 정리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엉망인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는 느낌이라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20대가 끝나가는 즈음의 나는, 이런 점이 그동안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살아가게 한 요인이라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최근에 문이과 1등이 나오는 유퀴즈를 봤다. 유재석에게 현재 목표가 무엇인지 묻는 장면이 있었다. 자기관리 잘하는 유재석이라면 매년 목표가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유재석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는 목표를 지키기 위한 스트레스가 싫어서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대신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하는 오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주어진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미래만 보는 사람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친 이때에 미래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사는 게 더 보람된 일이 아닐까.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아침에 뜨는 해가 밀린 구몬같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반면, 내가 계획을 꼭 세워야하는 이유도 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사실,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치른 이후 계획에 질려서 계획을 잘 세우지 않았다. 이번 여름방학만 해도 계획을 세우지 않고 해설사 스케줄만 빼곡하게 잡아놨다. 여름방학이 지나고나니 해설사 스케줄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초라한 나를 발견했다. 


내년이면 두 번째 들어온 대학에서도 4학년이다. 학과공부랑 아르바이트만 겨우 병행해온 초라한 내 모습을 보며 후회했다. 계획이 있었다면 좀 더 훌륭한 4학년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영어공부와 자격증을 겸비한 4학년 말이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3-2학기를 보내는 초라한 나는 좀 더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적절한 계획과 하루를 열심히 사는 습관이 만나야한다. 오늘의 해는 밀린 구몬같지만, 내일의 해는 개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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