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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Oct 30. 2016

<반칙왕> 가장 한국적인 영웅신화

한국 영웅의 역할은 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군중 속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전철을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침마다 뛰지만 지각한다. 상사에게 꼼짝 못하고 아버지에게 야단맞으며 짝사랑하는 여자에게는 말 한마디도 못하는 보통세상의 나약한 직장인이 주인공이다. 그의 맥 빠진 표정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겨우겨우 연명해 가는 그의 삶을 보여준다.


[반칙왕]은 그가 프로레슬링 세계에 입문하면서, 일련의 모험을 겪고 영웅으로 변모해 가는 영웅신화의 구조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상사에게 혼나고 길을 가다 반칙왕 프로레슬링 체육관의 관원모집공고를 보게 된다. 이 광고를 접하는 장면은 밝은 낮의 일상과 대조되는 다소 어둡고 바랜듯한 색조로 표현되고 있으며 세트와 소품은 현재와 대비되는 복고적 분위기이다. 이러한 낮과 밤의 대비, 현재와 과거의 대비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개의 축이다.


입문의 시련 과정에는 항상 영웅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조력자는 인간의 모습뿐 아니라 자연 현상, 식물, 동물  다양한 형태로 그려진다. 이러한 조력자가 바로 여신의 모습으로  체육관 관장의  민영이다. 임대호를 훈련시키는 선생이자 정신적 지지자. 민영과 함께 그가 영웅이 되기 위한 훈련이 시작된다.


은행원으로서의 낮과 영웅이 되기 위한 밤이 교차편집된다. 낮에는 동료 두식이 부지점장의 지인에게 자격없는 대출을 하라는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하고 퇴사를 결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낮이 불합리하다고 느낄수록 그는 밤의 세계에 최선을 다한다. 지하로 내려간 영웅은 온갖 시련과 난관에 부딪히면서 관문들을 통과해 나가는데 이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한 통과의례다.


그에게 선물처럼 ‘울트라 마스크 주어진다. 영웅에게 특별한 힘이 생긴 . 마스크를 쓰고 불량배들을 혼내준다. 스포츠카를 타고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상사의 폭언에 대응하기 시작한다.  극의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레슬링 경기에도 마스크를 쓰고 출전한다. 격렬하게 싸우던 중에 상대는 그의 마스크를 찢어버린다. 쇼를 위한 인물에게 여기서 경기를 끝내라는 신호다. 하지만 서로 엎어 치고 메치고, 누르고 눌리고, 꺾고 꺾이며   하나가 포기할 때까지 뒤얽혀 싸운다. 사각의 링은 ‘동물의 왕국세상의 축소판 같다. 코미디인데 이상하게 슬픈 장면의 연출도 이어진다.


드디어 그가 상대에게 지고싶지 않은 원형을 접하고 자기를 실현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각성한 영웅은 이제 일상으로 귀환한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상사에게 당당한 승부를 거는 것이다. 계급장 내려놓고 싸우자고 말하는 것. 한국적 영웅은 마스크를 써서 본 모습을 숨겨야만 바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할리우드 영웅들의 역할이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한국 영웅의 역할은 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불합리한 요구를 거부하고 상사에게 직언을 하기 위해서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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