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생망 Feb 29. 2016

어느 양아치의 고백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커서 어떤 삶을  살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꿈에 대한 탐험을 열심히 했다. 나는 의사부터 외교관, 변호사, 홈쇼핑 호스트 등이 되고 싶었고, 직업에 대한 공부를 하나하나 하면서 그 직업이 하기 싫은 이유들을 찾았다. 그리고  ‘광고’라는 직업을 만나게 됐을 때, 더 이상 포기하고 싶은 이유가 생기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광고를 가슴에 품고 있다. 나는 양아치다. 학생이 해선 안 될 쓸데없는 짓을 일삼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쓸데없는 짓을 하는 대학생이다.


 고3 때는 모든 사람이 거치는 ‘고등학교  3학년’에 대한 이미지가 궁금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3‘ 에 대한 의미가 크다. 일생에 한 번밖에 느낄 수 없는 이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주변 친구들을 관찰하며 대한민국 고등학교 3학년이 느끼는 바를 노트에 기록했다. 좌절부터 희망까지 감정은 다양했다. 그것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했고, 크게는 반 아이들의 대표 감정을 뽑아 카테고리화 시켰다. 그렇게 수능을 망한 후, 가진 것도 믿는 것도 달랑 ’하고 싶은 일‘ 뿐이어서 무조건 직진해서 재수를 했다. 유명한 광고인들을 만나려면 서울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늦게, 그것도 경기도 턱걸이로 서울에 입성했다. 그리고 대외활동을 통해 유명한 광고인들을 찾아갔다.  그때 만난, 이제석씨는 고로케로 배를 채우시며 “밥도 시간 없어 못 먹는 거 왜 하려고  하세요?”라고 고로케 찌꺼끼와 함께 그랬었다.


 양아치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아는가? 사실, 문헌상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먼지가 가득한 유리장을 청소하듯 조금씩 되짚어보면 아마 해방 후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식료품들을 유통하기 위해, 미군부대에 빌붙어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양아치의 시작일 것이다. ‘아치’의 원뜻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양아치의 ‘아치’는 뭔가를 비하하는 뉘앙스를 지녔다.


 사람들에게 뉘앙스로  비하받는 양아치들은 새로운 문화에 접촉하고, 적극 받아들이지 않으면 장사가 잘 안됐다. 그러다 보니 적극적으로 서양문화를 받아들이게 됐고, 당연히 서양적 가치가 한국적 전래 가치와 충돌하면서, 양아치라는 말은 ‘교양 없고, 몰상식하고, 음란하고, 전통을  부정하는’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특별한 이익 창출을 노리고 남에게 개입하는 조폭과 달리, 양아치는 특별한 목적 없이 남에게 개입하는 천하의 오지라퍼였는데도 양아치는 조폭보다 나쁜 말로 읽혔다.


 그들의 옷차림은 화려하고(동의어는 싼티) 말투나 행동 규범들은 남달랐다. 간지에 죽고 살았으며, 세상에 시비 거는 걸 좋아하는 순수한 인간 군상들이었다. 그들은 폭넓은 아이디어의 스펙트럼을 향유했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입고, 다르게 마셔라! 이것은 굿 아이디어를 만드는 원천인데 이들이 가장 먼저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이 없어지는 게 싫은 양아치였다. 전통 시장에 20대들이 이렇게 안 가면, 곧 전통시장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서 시장도 같이 없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청춘 기차여행을 떠나는 내일러들을 잡아서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기 위해, 내일로 티켓을 1달 동안 끊은 후, 전국의 시장만을 여행하며 머리를 굴렸다. 내일러들은 가는 곳만 가기 때문에, 기존의 코스에 특별한 시장을 끼워 넣어보는 코스 마케팅이 목표였다.


또,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옷이라고 생각하는 ‘한복’ 이 없어지는 게 싫었다. 없어질 것 같은 이유는 역시 한복을 20대가 입지 않기 때문이다. 한복이 현대적으로 변형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 나는 사람들과 함께 “한복 입고 놀자!”를 실천하는 “한복 놀이단”을 만들었다. 한복을 입고 서울 지하철을 타는 행위 플래시몹을 했다. 20대의 한복이야기를 다룬 “한놀 웹진”도 만들었다. 현대적으로 한복이 재해석될 수 있는 기회를 지금도 열심히 만들고 있다. 다가오는 연말에는 한복  가면무도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세상에 끊임없이 태클을 거는 양아치 짓을 한다. 물론 태클 건다고 쭉 성공하고 있는 건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영화와 현실은 다르니까, 난 그저 몇 달간 모은 알바비를 여행과 한복에 날렸어도 세상에 태클 걸었다는 그 자체가 행복할 뿐이다.


 그렇게 양아치로 살고 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아직도 정확히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시고, 일 년에 두 번이나 있는 민족의 명절에는 허리를 못 펴지만...... 나는 행복하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재밌다.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불확실해서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뭐 양아치 짓을 권장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 건강에는 좋을 수도 있다고요. 영어점수로 미래를 그리며 안전하게 사는 게 아깝지 않겠냐고 묻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의 기준보다 제일 먼저 나만의 기준에 따르는 것. 내 법대로,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꾸는 것. 그것은 ‘양아치리즘’ 이라 불리며 어디선가 열심히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디지털 시대의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