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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Mar 09. 2016

프로듀스101의 A-F등급

고등학생들의 1-9등급

 


식스틴과 프로듀스101을 보고 있다. SNS의 인기투표를 통해 걸그룹 데뷔멤버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15-18세 사이의 어린 소녀들에게 인기로 등급이 찍히는 걸 예능이랍시고 보고 있다. 식스틴의 경우 미션과 SNS 인기투표에 따라 메이저와 마이너로 등급이 나뉜다. 메이저 아이들에게는 '선물+선배 가수의 조언+훌륭한 숙소+벤+연습실 주간 사용권'이 주어진다. 마이너 아이들에게는 '남이 쓰던 숙소+버스 통학차량+연습실 야간 사용권'이 주어진다.      



1회에는 아무 생각 없었던 아이들이 회가 갈수록 변하는 게 보인다. 메이저를 경험하고 온 아이들은 메이저의 혜택을 다시 쥐기 위해 예능프로그램과 데뷔혜택에 눈이 멀어 잘못된 행동을 해도 당당하다. 마이너에만 계속 머물렀던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메이저에 올라가는 것이 꿈이 된다. 더불어 마이너 아이들에게는 스스로를 무쓸모라고 생각하는 병도 찾아온다. 불공평하다. 잘해서 뽑힌 아이들이 메이너인데 연습실부터 선배 가수들의 조언과 훌륭한 옷과 화장품까지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럼 그동안 마이너 아이들은 더 마이너해지란 말인가.       


        

이런 역경을 뚫고 마이너 아이들은 한 번씩 메이저보다 더 큰 재능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럼 심사위원들은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많은 점수를 준다(개천에서 용이 나는 판타지를 보기 위해 더 큰 시련을 주는 것일까?) 식스틴에서 발전해서 방송된 프로듀스101은 한층 더 잔인해진다. 101명의 소녀들이 경합을 벌인다. 심사위원들은 이들을 A-F등급으로 매긴다. 커다랗게 몇 등급이라고 쓰인 옷을 입히고, 등급에 따라 반과 생활공간이 나눈다. A등급 소녀들에게는 무대에서 더 잘 보이는 위치부터 모든 혜택을 주며, 이를 따내기 위한 B-F등급들의 노력이 보인다. 그리고 F가 A로 수직 상승했을 때, 모두가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칭찬을 해준다. 재미있는 점은 등급에 따라 소녀들이 서로를 대하는 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A등급이 F등급을 보는 눈은 하찮다. F등급이 A등급을 보는 눈은 존경스럽다. 서로를 ‘사람’이 아닌 ‘계급’으로 느끼게 된다.      



101에 나오는 소녀들은 인터뷰에서 항상 말한다.      

꼭 오래 살아남을 거예요.오디션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게임이다.
서바이벌인 것이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하고있는 오디션이 심사위원들만 보는 게 아니라는 것에서 발생한다. 오디션 내의 스타가 대중에게 밉보였을 경우 일어나는 일이 그것이다. 101에서 소녀시대 연습생이었던 찬미는 초반부에 상위권을 달렸다. 하지만 삑사리&악마의 편집으로 밉상캐릭터가 됐다. 다른 아이들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찬미가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저도 저 언니처럼 될 지도 몰라요...한 번 밉보이면 끝인 거 같아요" 이들은 프로그램에 감정이입되어 시청률과 댓글에 따라 행동을 한다. 프로그램 속에서 진짜 나 자신은 죽어버린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잔인함에 치를 떨다가 문득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1~9등급을 도입한 세대였다. 시험 성적표가 나오면 친구들은 1등급에서 9등급까지 나뉘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매기기 시작했다. 1등급은 상위권, 2-3등급은 중상위권, 4등급은 중위권, 5등급은 중하위권, 6-9등급은 날라리랄까. 선생님들은 1등급 아이들에게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 주셨다. 그래서 야간 자율학습시간이 되면 각 반의 1등급 아이들은 특별 열람실에서 공부했다. 특별 강의도 해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꿈은 특별 열람실에서 한 번이라도 공부해보는 것이었다. 아직 사회의 경쟁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배우고 있었지만, 성적이 우리에게는 ‘자본’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급에 따라 친구들이 나뉘었고 묘한 경쟁의식이 자리 잡았다. 특별 열람실에 대한 욕심으로 내 필기를 친구에게 보여주는 걸 꺼리게 되었다. 친구가 져야 내가 올라가니까 말이다. 친했던 아이가 성적이 떨어졌을 때는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다. '이대로 같이 놀다가 나도 성적 떨어지면 어쩌지' 그러다보니 거리를 두기도 했었다. 성적이라는 계급 속에서 진짜 나는 죽고, 사회 속의 내가 보였다. 입시가 끝나자 급에 따라 대학교가 나뉘어서 가게 되었다. 지잡대와 중상위권, SKY의 굴레에 스스로를 대입시켰다. 그리고 SKY는 당연히 대기업에 가야 하고, 지잡대에게는 ‘앞으로 뭐 먹고살래?‘ 라며 취업 길까지 계급에 따라 나뉘었다. 성적은 곧 ’자본‘ 이었던 것이다.


     

채널을 돌리다 다른 나라의 오디션을 보게 됐다. ‘도전! 슈퍼모델’의 경우 미션의 1등에게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잠재력을 나눠놓지는 않는다. 모든 참가자들은 미션 할 때 평등하다. 숙소부터 음식까지 말이다. 오디션 프로를 보면 그 나라의 성공과 경쟁에 대한 철학이 보이는 것 같다. 한국은 시작부터 등급을 매겨서 혜택을 나눠놓는다. 시작부터 F등급이 된 아이들은 병에 갇힌 벼룩처럼 자신이 성공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F등급 아이들이 ‘제가 감히 어떻게’라고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지잡대에 간 아이들은 대기업에 원서를 감히 원서를 넣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언젠가는 더 잘 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속마음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왜 한국은 어릴 때부터 이처럼 잔인한 것일까? 1등급과 2등급 사이에는 1.25도 있고, 1.8도 있다는 엄청난 스펙트럼이 있는데 그걸 1등급과 2등급으로 환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명쾌하게 하는 것 같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계급으로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진짜 자신은 죽어버린다. 교육이란 게 날 때부터 줄 곧 경쟁만 가르치니, 할 줄 아는 거라곤 다들 부릅뜨고 달리는 거 외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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