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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Aug 02. 2017

취향은 어쩌다 계급이 됐을까

좋은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사회에서 하나의 스펙이었다.


고향에서 내 취향은 나름 고급 졌다. 다큐를 보며 습득한 마이클 펠프스와 박태환의 장단점과 대중가요와 아이돌에 대한 뚜렷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차마 아이돌을 보러 서울에 올라가지는 못 했지만, 울산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썸머페스티벌에 가서 밤새 줄을 서며 아이돌 얼굴을 보는 걸로 만족했다. 사실 아이돌 공연은 TV로 보는 게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0살이 되기까지는 내 취향이 거지같은 지 몰랐다.   


20살이 되어 만난 동기는 중학교 때부터 연극을 보러 다닌 아이였다. 나는 태어나서 연극을 처음 본 나이가 21살 때였다. 전공 수업을 통해 간 극장에서 마오쩌둥에 관한 연극을 봤다. 연극을 처음 봐서 신기해하는 나에게 동기는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대외활동에서 만난 오빠는 홍대 길바닥에서 인디 음악과 인디 영화에 대해 알려줬다. 난 그 때 홍대 바닥에 앉아 인디가수의 공연을 보며 이렇게 생생한 음악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뮤지컬과 피카소 기획전을 하는 미술관도 모두 서울에 와서야 처음 가본 곳들이다.   


좋은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사회에서 하나의 스펙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상상력과 인문학 통찰이 높은 인재를 뽑기 위해 기업들이 물어보는 질문은 바로 취향에 관한 것들이었다. “취미가 뭐예요?” “좋아하는 게 뭐예요?” “체게바라에 대해 논하시오.” 20살 이전까지는 TV로만 쌓은 취향은 초등학교 때부터 탄탄하게 쌓아올린 취향과 비길 바가 못 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대외활동 필기시험에서 떨어질 때의 질문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논하시오.”였다.   


서울에서 연극이 10번 열릴 때, 지방에서는 연극이 1번도 안 열릴 때도 있다. 공공 도서관의 책 수도 차원이 다르다. 지방에는 인디 영화가 개봉하지 않는다. 지방 영화관을 채우는 영화들은 킬링타임용 영화들이 많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를 취향이 자본화됐다고 설명했다. 취향의 자본화는 생각보다 큰 문제다. 언젠가부터 서울에만 예술가들이 많아졌다. 지금이라도 취향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서 취향 계급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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