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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Aug 02. 2017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생활의 외주화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1시간이나 걸리는 빨래, 30분 걸리는 밥, 무한대의 시간이 걸리는 청소까지 할 일이 천지인데 낮잠을 자 버렸다. ‘아...장도 보러 가야 하는데...’ 주말에 미리미리 집안일을 해 놓지 않으면 월요일은 지옥이다. 양말이 없어 한 번 신은 양말을 또 신어야 하고, 깨끗한 컵이 없어 물도 한 잔 못 먹고 출근해야 한다. 회사일에 치이고 와서는 도저히 집안일을 할 수 없다. 엄마는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매일 하신 걸까. 당연하게 입던 깨끗한 옷과 매일 바뀌는 반찬속에는 엄마의 수많은 손들이 있었다. ‘엄마랑 같이 살고 싶다’


집안일의 고됨은 내게 외주 서비스를 찾아보게 했다. 무려 반나절이나 걸리는 집안일 대신 잠을 더 자고 싶었다. 요즘 들어 회사일은 왜 그렇게 힘든지. 다행히 인터넷에는 자취방 청소 서비스가 있다. 5평은 1시간에 5만 원이다. 옵션으로 빨래와 설거지도 가능하다. 클릭만 하면 아주머니가 시간에 맞춰 전문 청소 설비를 가져와서 서비스를 해주신다. 장보고 요리까지 해야 하는 반찬도 문제없다. 배민 프레시의 <집밥 서비스>를 신청하면 매일 다른 반찬과 국을 배달 받을 수 있다. 2주에 10만 원만 내면 된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집안일은 내가 먹고, 내가 있는 공간을 돌보는 일이다. 생활의 가장 기본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는 생활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떤 이유로 시작된 것일까. 과거에도 집안일의 외주화는 있었다. ‘두레’라고 불렸는데, 남자들은 농사를 함께 짓고 여자들은 서로 집안일을 도와줬다. 바쁜 모내기·김매기 철에 만들어진 게 두레의 특징이다. 과거부터 혼자 하기 힘에 겨운 노동은 생활을 무너뜨렸다. 현대 사회와 다른 점은 과거의 사람들에겐 든든한 ‘이웃’이 있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까지만 해도 이웃끼리 돕고 살았다. 엄마가 아팠을 때, 이웃 아줌마들이 손을 모아 반찬을 보내준 일을 잊지 못한다.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면서 든든한 이웃이 사라지고, 1인 가구와 이혼율 증가로 가족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외지에서는 돈이 나를 지켜준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돈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외주화는 나대신 하기 싫은 일을 할 사람을 찾는 과정이다. 생활이 외주화되면서 나타난 문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취약계층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에게 생활을 맡기면 된다지만, 돈이 없는 사람의 생활이 무너지면 맡길 대상이 없다. 최근 3년간 무연고 시신이 1000여구나 나왔다는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아래로 아래로 떠맡겨지는 ‘생활의 외주화’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분명 더 소외되고 있다. 과거처럼 기댈만한 공동체도 없고 사회 복지 제도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은 젊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아래로 생활을 맡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취약층이 되어 생활이 무너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돈 밖에 기댈 곳이 없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고민되는 요즘이다.


+피드백        

-거래의 대상이 되는 노동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는 과정, 그것이 함의하는 공동체의 붕괴 현상에 대한 중요한 언급이 들어가 있지만 현상에 대한 서술 외 원인 분석이 잘 이뤄지지 않은 듯 합니다. 이것이 보충된다면 훨씬 높은 통찰력을 확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심 맥락이 늦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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