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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Aug 02. 2017

직장인의 낭만은 뭘까

 나는 4-1학기가 끝나자마자 꿈의 회사라고 생각한 곳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아직 학교를 다니는 동기들에 비해, 한 발 앞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 4-2학기가 취업계로 대체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시키는 건 뭐든지 열심히 하자는 자세로 긴장이 들어간 첫 출근이 지나고, 정신없이 인수인계 과정이 끝났다.     


 학교와 회사는 다른 점이 많았다. 자유로운 곳이지만 규율이 있었고, 내 실수 한 번에 수 십 만원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책임감과 의무감이 나를 하루 종일 곤두서게 했다. 그래서 집에만 가면 저녁도 안 먹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런 생활도 적응이 되니 권태가 찾아왔다. 하루하루가 평범했고, 뻔했고, 건조했다. 하고 싶었던 일도 회사에서 하면 일이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고 싶었던 취미가 ‘일’이 되니 순식간에 취미가 사라졌다. 내 대학생활은 연애부터 여행까지 온갖 낭만적인 것들로 가득했는데, 25살 이후의 삶이 현실로 가득찰 것이라는 점이 슬펐다. 아직도 인턴이라는 점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은 인턴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평생이 아니라 6개월만 이 생활을 하면 되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마디로 낭만 소녀다. 내일로를 할 때도 시장을 돌았고, 잘 알려진 여행지보다는 오지 여행을 선호한다. 멀쩡한 옷 놔두고, 한복 입고 파티를 벌였다. 연애도 특이하게 하고 있다. 1달에 1번 만나는 장거리 연애지만! 1달에 1번씩 여행 다니는 걸로 생각을 바꿔서 즐겁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꿈과 희망이 가득했는데,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더니 낭만이 없어졌다. ‘도대체 내 낭만은 어디로 간 걸까?’     


 그 뒤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낭만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 이후의 낭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문송하다던 취준생 오빠는  평범한 급여를 받고 평범하게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월세살이를 하고 있는 친구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서울에 집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졸업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는 결혼해서 한 명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했고, 뮤지컬을 하고 있는 친구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평범해서 놀랐다. 의식주가 낭만이라니! 우리에게 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는 것은 어느 새 낭만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낭만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낭만은 네이버 사전의 정의처럼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인 것이다. 이렇게 의식주를 낭만삼아 살다가는 태어나서부터 열심히만 사는 호모 열심투스가 되어 버릴 것만 같다. 대학 생활을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 토익 점수를 받아서 수석 졸업을 해서 취직이 됐다. 그렇지만 평생가도 집 한 채 사기 힘들고, 사랑만으론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아이 하나 키우는데 몇 억씩 들어버리는 무한경쟁 좋아하는 이 나라에서 그러니까! 학자금 대출, 결혼자금 대출, 전세금 대출, 다자란 애새끼 등록금 대출. 졸업해서 빚 갚고, 결혼해서 빚 갚고, 애 낳아서 빚 갚고. 그런 식으로 평생 허덕거리면서 살 텐데 왜 평범하게 사는 게 낭만일까? 그럼 우리는 대체 언제 행복해질까?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지만 딱히 내게도 뾰족한 수가 없다. 엄마가 서울로 올 때 보증금 6,000만원으로 집을 해줬다. 내가 한 달에 200만원을 번다고 치면, 20만원씩 세금을 떼고 생활비를 빼고 저축할 수 있는 돈 만을 계산해봤더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00만원을 갚기까지 10년이 걸린다. 난 여기에다가 학자금 대출에 결혼 자금까지 있다고 한다. 도무지 부모님께 손을 안 벌리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존엄인 의식주는 예전처럼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인 것이다. 커다란 어른이 되기가 싫은데, 이런 걸 계산해볼 때마다 숫자놀음을 잘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나의 회사 생활 이후의 낭만은, 오지에서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등 뒤에 진 빚을 생각하면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 빚을 갚지 않으면, 빚은 돌고 돌아서 부모님께 갈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 투명 코르셋에 갇혔다

-삼촌이 지난번에 만났을 때 요즘 애들은 낭만이 없다고 하셨죠? 그 얘기 듣고 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낭만 좀 찾으려고 휴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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