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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Aug 02. 2017

글을 써서 먹고사는 게 만만치 않겠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게 만만치 않겠다는 건 국문과를 가겠다고 하는 날 보고 고개를 흔들던 어른들의 시선을 보고서부터 어렴풋이 느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고, 교육부의 취업 사관 대학교 정책 아래에서 국문과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중이다. 글 중에서도 소설을 쓴다는 것은 수많은 국문과 졸업생들 중에 10%안에 들어야하며, 이 중에서 등단하는 일은 1%이다. 등단을 해도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작가는 0.01%인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이 ‘소설가’ 라는 존재들은 대단한 존재들인 것이다.


 나는 그저 10% 안에 드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계는 다른 곳에서 해결해 볼 테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다. ‘소설학 개론’ 시간에 교수님은 뛰어난 단편소설 10편을 던져주셨다. 그리고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10가지 방법’ 으로 시작하는 책은 절대 읽지 말라고 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많이 읽고/많이 생각하고/많이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필사‘ 에 대해 알려주셨다. 덧붙여서 소설가 신경숙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을 10번이나 필사한 작가라고 했다. 필사가 소설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삶의 증인인 것이다.


 그 이후, 닮고 싶은 소설가를 만나면 노트에 부지런히 필사했다. 쉼표 하나까지도 따라쓰면서 ‘나도 이런 표현을 쓰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내가 제일 필사를 많이 한 작가는 신경숙이었다. 그녀의 솔직함과 귓속말을 하는듯한 문체는 마음을 울렸다. 꿈의 도시 서울을 관찰하는 모습과 자취방, 자신의 꿈에 대한 이기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녀의 글은 읽으면서 힘이 됐다. 신파. 한국드라마의 신파에 대한 감성이 그대로 묻어난, 가장 한국적인 작가라고 생각했다.


 ‘소설학 개론’ 에서는 끊임없이 단편소설 10편에 대한 필사과제를 하고, 구조를 분석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기말고사 대신에 단편소설을 제출해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교수님은 단편소설을 많이 읽고 메모하면 답이 보인다고 하실 뿐이었다. 낮에는 도서관에 가고, 밤이면 밤마다 하이얀 노트북창을 보면서 밤을 새웠다.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할 소설이었다.


 좀 더 쉬운 수준의 단편소설을 찾기 위해, 작년 등단 소설작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내가 쓰려는 소재와 비슷한 단편을 찾았다. 그 단편을 편집해서 내가 생각했던 인물과 구조로 바꿔보았다. 완성된 소설은 등단작과는 분명히 다른 소설이었지만,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이 모든 과정에 대해 이실직고했다. “교수님, 제가 소설쓰기가 너무 막막한 나머지, 표절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물어보셨다. 등단작에서 한 문장이라도 그대로 쓴 게 있느냐? 스토리 구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으냐? 대답은 다행히 ‘아니오’ 였고, 교수님은 ‘그럼 됐다’ 며 앞으로도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그래도 찝찝했던 나는 교수님과의 상담내용까지 합쳐서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의논을 청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있는 어느 것도 0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여주었다. 나는 그렇게 찝찝한 소설쓰기를 끝마쳤고, 그 소설로 A+라는 기염을 토했다. 덧붙여 앞으로 소설을 계속 써보라는 말을 들은 국문과내의 1%가 되었다.


 그렇게 소설을 쭉 써오고 있던 내가 흔들리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던 신경숙이 표절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일본의 우익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에서 한 문단을 통째로 썼기 때문이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문단에서의 표현이나 구조가 같다. 군복은 흙먼지로, 주인공의 이름은 신경숙식으로 교체됐다. 두 소설을 크게보면 주제가 전혀 다르지만, 그 안에서 저 문단은 똑같은 것이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왜 나와 다를까라고 생각해보았다. 습작생과 유명작가의 처지가 그렇게 다른 것일까. 신경숙이 표절이라면 나의 첫 소설도 표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등단한 소설 전체를 참고해서 썼으니까 말이다.

 이에 대해 문단계는 마치 아마겟돈 운석을 맞은 것만 같다. 한 시인의 인터뷰는 그의 멘탈붕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제보를 그냥 넘기기에는 잇따른 제보의혹과ㆍ 제보자 이응준의 패기있는 준비성이다. 그는 변호사까지 선임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이면서도 무려 5년 동안이나 문단에 나가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우리 문학계가 부끄러워질 거 같아서 직접 행동한다는 그의 포부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 고인 물인 문단계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학은 이미 죽은 지 오래이다. 베스트셀러에는 한국문학이 있을까 말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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