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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Jan 06. 2019

충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충(蟲)’을 소리 내어 말해보자. 먼저 이가 앙 다물어지고, 입술이 닭똥집처럼 모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있는 힘을 다해 입 안을 공기로 채워서 발사하듯 내보내면 우렁찬 소리가 나온다. 충!! 웅과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웅은 보통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같지만, 충은 최고 속도로 달리는 차와 같다. 비하할 때 ‘충’을 붙이는 이유는 발음이 거센소리와 된소리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거센소리와 된소리는 현대인들이 혐오를 말할 때 감정 표현에 활용됐다. 새끼, 얼꽝, 싸가지의 다음이 충이다. ‘~충’에 으레 따라붙는 표현은 ‘극혐’이다. 얼꽝이나 싸가지처럼 단순히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내는 감정이 담겨 있다. 혐오 표현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헬조선’, ‘지옥불반도’로 표현되는 팍팍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나날이 심해지는 경쟁과 소득격차가 심해지면서 내가 밟고 올라갈 수 있는 계층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대통령충’이나 ‘재벌충’과 같은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약자라고 여기는 대상을 중심으로 비하와 혐오의 정서가 표출된다.     


한 때 ‘막말’이 가장 심한 표현일 때가 있었다. 2017년 ‘막말’은 상대적으로 고상한 표현이다. 날이 갈수록 언어가 거칠어지고 있고, 아이 어른 할 거 없이 점점 더 커다란 자극과 발음을 가진 언어를 말하려고 한다. 커뮤니티부터 태극기 집회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들은 충격적일 정도다. ‘충’이 질리면 더 자극적인 언어가 생길 수도 있다.      


거칠고 자극적인 언어는 사회적 소통에 장애를 불러일으킨다. 솔직하게 ‘너는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든지, ‘죄송한데 아이가 너무 시끄럽다’든지 말하는 것과 ‘학식충, 맘충’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르다. 대화 내용에 오해가 생기면서 사람들 사이에 고립이 생긴다. 이러한 고립은 사회 병리 현상을 일으켜 건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거센소리보다 예사소리를 즐겨 발음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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