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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Jan 13. 2019

틀린 사람을 미워하게 하는 교육

지역아동센터에 정기적으로 봉사를 다닌다. 체육 수업을 보조하던 중의 일이다. 키가 쑥쑥 크게 도와주는 줄넘기 수업이었다. 한 아이가 줄넘기를 잘 못했다. 단체로 열을 맞춰 하는 줄넘기에서 오탈자는 크게 눈에 띄기 마련이다.      


체육 선생님은 아이에게 이렇게도 알려주고, 저렇게도 알려주면서 줄넘기에 적응하도록 도왔다. 하지만, 줄넘기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가 줄넘기를 하기 싫어하는 티를 내자 선생님은 극단의 방법을 쓴다.      


너네 얘 때문에 줄넘기 계속해야 하는 거야.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를 째려보기 시작한다. 바로바로 원성이 터져나온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그 아이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줄넘기를 열심히 해보려고 하지만, 부담감에 줄넘기는 더욱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원성은 터져 나온다. 수업하는 내내 이 과정이 반복됐다.      


그 아이는 수업끝나고 내게 귓속말을 했다.     

줄넘기 못하는 게 그렇게 잘못이에요?    


수업, 수련회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기합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체력 약하거나 타이밍 못 맞추는 애들이 한두명 실패하면 선생님이 걔네 욕하며 너네 때문에 다른 애들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윽박지른다. 틀린 아이는 계속해서 주눅이 든다.     


이런 방식은 크면서도 반복된다. 군대와 회사같은 단체생활을 요하는 곳에서도 약자를 미워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렇게 되면 못하는 게 잘못이 된다. 내가 못해서 단체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싹트는 것이다.      


‘너 때문에’라는 말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줄넘기 못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못하는 아이를 인질 삼아 말을 듣게 하려는 방식이 문제다. 약자를 미워하게끔 유도하는 교육방식은 약자를 배제하는 사회로 나아가게 한다. 약자를 이해하지 않고 배제하려할 때 혐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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